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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神様の責任分担摂理期間
12 하나님의 책임 분담 섭리 기간

12-1 ノアの家族は神様とサタンの間にあった
12-1 노아의 가족은 하나님과 사탄의 사이에 있었다

12-2 ノアの家族と同様に我々も原理を知らなかった
12-2 노아의 가족과 같이 우리도 원리를 몰랐다

12-3 ノアの家族に対する摂理はハムによって失敗した
12-3 노아의 가족에 대한 섭리는 함으로 인해 실패했다

12-4 人々がサタンに協力したため言語を混乱させた
12-4 사람들이 사탄에게 협조했기 때문에 언어를 혼란시켰다

12-5 神様は偶像商の息子であるアブラハムを選ばれた
12-5 하나님은 우상상(偶像商)의 아들인 아브라함을 택하셨다

12-6 アブラハムは神様から祝福されハランを出発した
12-6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고 하란을 출발했다

12-7 神様は改めてアブラハムに約束された
12-7 하나님은 다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다

12-8 アブラハムの供え物は失敗した
12-8 아브라함의 제물은 실패했다

12-9 イサクの燔祭は供え物の失敗によるもの
12-9 이삭의 번제는 제물의 실패로 인한 것이다

12-10 三種の供え物の意味
12-10 세 가지 제물의 의미

12-11 イサクに双子の息子エサウとヤコブが生まれた理由
12-11 이삭에게 쌍동이 아들 에서와 야곱이 태어난 이유

12-12 エジプトからカナンまでの復帰路程は神様の責任分担
12-12 애굽에서 가나안까지의 복귀 노정은 하나님의 책임 분담이었다

12-13 神様がモーセを立てられた理由
12-13 하나님이 모세를 세우신 이유

12-14 モーセに奇跡のしるしとアロンを与えられた理由
12-14 모세에게 이적(異跡)과 아론을 주신 이유

12-15 モーセの妻子による割礼の意義
12-15 모세의 처자(妻子)에 의한 할례의 의의

12-16 モーセの路程はイエスの手本
12-16 모세의 노정은 예수의 본보기다

12-17 摂理における3日路程の意味
12-17 섭리에 있어서의 3일 노정의 의미

12-18 堕落の根本的な責任は神様にある
12-18 타락의 근본적인 책임은 하나님께 있다

12-19 神様とイエスで責任を分担した
12-19 하나님과 예수가 책임을 분담했다

12-20 イスラエル民族は神様が父であることを知らなかった
12-20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아버지인 것을 몰랐다

12-21 神様はモーセを通してパロを屈服させた
12-21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바로를 굴복시켰다

12-22 紅海の奇跡
12-22 홍해의 기적

12-23 アマレクとの戦い
12-23 아말렉과의 싸움

12-24 神様が望まれるのは祭司の国と聖なる民
12-24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다

12-25 石板と幕屋の意味
12-25 석판(石板)과 성막(聖幕)의 의미

12-26 メリバの水の出来事
12-26 므리바 물 사건

12-27 青銅のヘビ
12-27 놋뱀

12-28 モーセの代わりにヨシュアがみ旨を立てた
12-28 모세 대신에 여호수아가 뜻을 세웠다

12-29 イスラエルの三大王によって摂理の全てが表されていた
12-29 이스라엘 3대왕에 의해 섭리의 모두가 나타내지고 있었다

12-30 神殿のみ旨の目的はイエス
12-30 성전의 뜻의 목적은 예수였다


12-1 ノアの家族は神様とサタンの間にあった
12-1 노아의 가족은 하나님과 사탄의 사이에 있었다

洪水審判の後、ノアの8人家族は、第二次として、神様のみ旨の路程を出発した。
홍수 심판 후 노아의 8명 가족은 제2차로서 하나님의 뜻의 노정을 출발했다.

それゆえ、ノアの家族は、従順な立場を取って、神様のみ旨を果たさ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그러므로 노아의 가족은 순종한 입장에 서서 하나님의 뜻을 다해야 했다.

サタンは、洪水審判によって、自分を崇拝していた全ての人々を失ったため、自分の思いを果たすことのできる対象がいなくなってしまった。
사탄은 홍수 심판으로 인해 자기를 숭배했던 모든 사람들을 잃었기 때문에 자기의 생각을 다할 수 있는 대상이 없어져 버렸다.

しかし、神様のみ旨から外れた人がいれば、サタンは、その人を取ろうとしていたのである。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사람이 있으면 사탄은 그 사람을 취하려고 했던 것이다.

それゆえ、サタンは、神様に逆らうことを断念せず、ノアの8人家族に未練を持ち、その中に、自分が取ることのできる人がいるのか、つまり、神様のみ意に反する行動をとる人がいるのか、ということに注目していたのである。
그러므로 사탄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을 단념하지 않고 노아의 8명 가족에게 미련을 가지고 그 중에 자기가 취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즉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취하는 사람이 있는지 주목하고 있었던 것이다.

このような立場に立っていたのが、ノアの8人家族であった。
이러한 입장에 서 있었던 사람들이 노아의 8명 가족이었다.

この家族は、神様とサタンの間にあっても、み旨を果たす方向に進ま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이 가족은 하나님과 사탄의 사이에 있어도 뜻을 다하는 방향으로 가야 했다.

しかし、神様側に行こうとすればサタンが伴い、サタンに従えば神様が離れるという原理を知っていたのではなかった。
그러나 하나님 측에 가려고 하면 사탄이 따르고 사탄을 따르면 하나님이 떠난다는 원리를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そのため、どの方向に進み、如何なる結果をもたらすかは、人に許された自由行動によって左右される問題であった。
그렇기 때문에 어느 방향에 가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사람에게 허락된 자유행동에 의해 좌우되는 문제였다.

それゆえ、この家族は、天の全てが期待する希望の存在でありながらも、サタンに狙われている存在でもあった。
그러므로 이 가족은 하늘의 모두가 기대하는 희망의 존재면서도 사탄에게 노려져 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12-2 ノアの家族と同様に我々も原理を知らなかった
12-2 노아의 가족과 같이 우리도 원리를 몰랐다

このような摂理の実状を知るときに、人は、どれほど神様を尊んでこなかったのかと嘆息(たんそく)せざるを得ないのである。
이러한 섭리의 실상을 알게 될 때, "사람은 얼마나 하나님을 존중해 오지 않았는가"라고 탄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しかし、これまでに述べた原理を知れば、我々は今、緊迫した状況に置かれているということが理解できる。
그러나 여기까지 논한 원리를 알면 우리는 지금 긴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また、我々は今まで、このような原理を知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ために、自分たちの存在価値や神様に関すること、また、サタンに関することなどは根本的に分からず、ただ歴史を通して、その結果を知ることによって、神様とサタンとの関係が正反対であるということを知っていただけなのである。
또한 우리는 지금까지 이러한 원리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자기들의 존재 가치나 하나님에 관한 것, 또한 사탄에 관한 것 등은 근본적으로 모르고, 단지 역사를 통해서 그 결과를 알아서 하나님과 사탄과의 관계가 정반대인 것을 알고 있었을 뿐이다.

従って、このような原理を知ることのできる恵まれた時代に生まれ合わせたことは、この上もない幸福であると言える。
그러므로 이러한 원리를 알 수 있는 은혜스러운 시대에 태어난 것은 지극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12-3 ノアの家族に対する摂理はハムによって失敗した
12-3 노아의 가족에 대한 섭리는 함으로 인해 실패했다

ノアの家族が、み旨を果たすことができれば、ノアの子孫は、神様の子孫となっていた。
노아의 가족이 뜻을 다할 수 있었으면 노아의 자손은 하나님의 자손이 되어 있었다.

このように、ノアの家族の行動は、人がサタンに取られるかどうかを決定する重要なものであった。
이와 같이 노아의 가족의 행동은 사람이 사탄에게 빼앗길 것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것이었다.

その時、ノアの8人家族には、罪という考えさえもあってはならず、神様の義だけが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그때 노아의 8명 가족에게는 죄(罪)라는 생각마저도 있어서는 안 되었고 하나님의 의(義) 만이 있어야 했다.

つまり、神様の好まれない行動があってはならなかったのである。
즉 하나님이 좋아하시지 않는 행동이 있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聖書には、次のような物語が記されている。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적혀 있다.

洪水審判の後、ノアは農夫となり、ぶどう畑で農作業をしていた。
홍수 심판 후 노아는 농부가 되어 포도밭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ある時、ノアが、ぶどう酒を飲んで酔い、天幕の中で裸で寝ていた。
어느 때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장막 안에서 알몸으로 잠자고 있었다.

それを見たノアの息子ハムが、裸で寝ている父親の姿を恥ずかしく思い、兄弟たちのところに行って、その事を告げた。
그것을 본 노아의 아들 함이 알몸으로 잠자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형제들에게 가서 그 것을 알렸다.

すると、セムとヤペテは、衣を持って、父親の裸を見ないように、後ろ向きで入っていき、父親の裸をその衣で覆ったのである。
그러자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아버지의 알몸을 보지 않도록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버지의 알몸을 그 옷으로 덮은 것이다.

神様は、何故、このようなハムの行動を好まれなかったのか。
하나님은 왜 이러한 함의 행동을 좋아하시지 않았는가?

それは、今日まで未解決の問題であった。
그것은 오늘날까지 미해결인 문제였다.

しかし、原理を知れば、その問題は解決されるのである。
그러나 원리를 알면 그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다.

この行動は、何を象徴していたのかと言えば、アダムとエバの裸に対する羞恥を再現したものであった。
이 행동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었는가 하면 아담과 해와의 알몸에 대한 수치(羞恥)를 재현한 것이었다.

それゆえ、ハムの行動は、神様にとって、この上もなく見苦しい行動だったのであり、サタンにとっては、ハムが自分の側であることを示す行動だったのである。
그러므로 함의 행동은 하나님께 있어서 지극히 보기 흉한 행동이었던 것이고, 사탄에게 있어서는 함이 자기 측인 것을 나타내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つまり、ハムの行動は、堕落性の継承を現したことになり、サタンにとっては、ハムが自分のものであることを神様に主張できる根拠となったのである。
즉 함의 행동은 타락성의 계승을 드러낸 것으로 되고, 사탄에게 있어서는 함이 자기의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께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된 것이다.

このように、ハムの行動は、人が堕落した時の羞恥そのものであり、それが、アダムの種によるものであるという事実を暴露するものであった。
이와 같이 함의 행동은 사람이 타락했을 때의 수치 그대로였고, 그것이 아담의 씨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폭로하는 것이었다.

神様が審判をされたのは、人が堕落したからであったが、その審判の後で、このような事実が露呈したため、神様は痛憤せざるを得なかった。
하나님이 심판을 하신 것은 사람이 타락했기 때문이었지만 그 심판 후에 이러한 사실이 노정(露呈)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통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この事実は、人が堕落した直後に、サタンの性質が人に継承されたという証拠であり、また、神様が審判をされても、まだ未完成な要素が潜んでいるということを表すものであった。
이 사실은 사람이 타락한 직후에 사탄의 성품이 사람에게 계승되었다는 증거며, 또한 하나님이 심판을 하셔도 아직 미완성인 요소가 숨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つまり、ハムの行動は、サタンの再起を見せる行動だったのである。
즉 함의 행동은 사탄의 재기를 보이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このようにして、サタンは、ハムの行動の根拠をつかんだのである。
이리하여 사탄은 함의 행동의 근거를 잡은 것이다.

神様は、その根拠を否定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하나님은 그 근거를 부정할 수 없었다.

こうして、サタン側の繁殖が始まったのである。
이리하여 사탄 측의 번식이 시작된 것이다.

その原因を作ったハムが、サタン側の存在となったため、ノアは、ハムがカナンの祖先となって、神様の怨讐になることを予言したのである(創世記9章24節から27節参照)。
그 원인을 만든 함이 사탄 측의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노아는 함이 가나안의 선조가 되어 하나님의 원수(怨讐)가 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창세기 9장 24절부터 27절 참조)


12-4 人々がサタンに協力したため言語を混乱させた
12-4 사람들이 사탄에게 협조했기 때문에 언어를 혼란시켰다

こうして、神様とサタンは、再び対立するようになった。
이리하여 하나님과 사탄은 다시 대립하게 되었다.

サタン側は、子孫を繁殖したが、やはり、その子孫も神様の好まない行動をとるようになり、ノア以前のように、人々は神様から離れ、サタンの意を広めることに協力していたのである。
사탄 측은 자손을 번식했지만 역시 그 자손도 하나님이 좋아하시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되고, 노아 이전과 같이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고 사탄의 뜻을 널리 퍼뜨리는 일에 협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神様は、人々をみ旨の中に置こうとされた。
하나님은 사람들을 뜻 속에 두려고 하셨다.

しかし、再び、サタンが人々を奪うようになっていったのである。
그러나 다시 사탄이 사람들을 빼앗게 되어 간 것이다.

従って、人々が、できるだけサタン側に属さないよう、神様は対策を立て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따라서 될 수 있는한 사람들이 사탄 측에 속하지 않도록 하나님은 대책을 세워야 했다.

人々は、神様の好まない方向へと流れていくばかりであった。
사람들은 하나님이 좋아하시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 갈 뿐이었다.

それは、サタンが喜ぶことであった。
그것은 사탄이 기뻐하는 것이었다.

従って、神様は、それを放置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따라서 하나님은 그것을 방치할 수 없었다.

その時、人々の言語が一つであったため、全ての人々は意思が通じ、全体的に一つの方向へ動くようになっていた。
그때 사람들의 언어가 하나였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의사가 통해서 전체적으로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었다.

これは、神様にとって、み旨を成就するための助けにはならなかった。
이것은 하나님께 있어서 뜻을 성취하기 위한 도움이 되지 않았다.

このような言語は、むしろ、バベルの塔を立てるというサタンの意に協力する行動の助けとなった。
이러한 언어는 오히려 바벨탑을 세운다는 사탄의 생각에 협조하는 행동에 도움이 되었다.

神様が言葉を通じなくされたのは、言語がみ旨に反する行動の助けとなったからであり、それによって、全ての人々が、一つの方向へと流れていったからである。
하나님이 말을 안 통하게 하신 것은 언어가 뜻에 반하는 행동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며 그것으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방향으로 흘러 갔기 때문이다.

こうして、神様は、人々がサタンに協力するのを防ごうとされた。
이리하여 하나님은 사람들이 사탄에게 협조하는 것을 막으려고 하셨다.

これが、人々の言語を混乱させた根本的な理由であった。
이것이 사람들의 언어를 혼란시킨 근본적인 이유였다.

もし、み旨の中で、人々がこのような塔を立てて、み旨が成就するのであれば、言語を混乱させる必要などなかったのである。
만약 뜻 가운데서 사람들이 이러한 탑을 세우고 뜻이 성취하는 것이라면 언어를 혼란시킬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神様が言語を混乱させたことによって、サタンに全ての人々を奪われることはなかった。
하나님이 언어를 혼란시켰음으로써 사탄에게 모든 사람들을 빼앗길 일은 없었다.

これは、幸いな事であった。
이것은 다행인 것이었다.

しかし、これほど思うようにならない人々の罪を、誰が解決するのだろうか。
그러나 이렇게 생각대로 되지 않는 사람들의 죄를 누가 해결하는가?

このようにしても、人々は依然として、み旨から遠いところにいたのである。
이렇게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뜻에서 먼 곳에 있었던 것이다.

それに対し、精誠を尽くして、み旨を支える者たちは、とても少なかった。
그 반면 정성을 다하여 뜻을 받치는 자들은 매우 적었다.


12-5 神様は偶像商の息子であるアブラハムを選ばれた
12-5 하나님은 우상상(偶像商)의 아들인 아브라함을 택하셨다

神様は、サタンに奪われたノアの子孫を、サタンから取り戻さ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하나님은 사탄에게 빼앗긴 노아의 자손을 사탄으로부터 되찾아야 했다.

そのために、神様は、サタンの愛する偶像商のテラから、その息子であるアブラハムを奪い取ったのである。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탄이 사랑하는 우상 장수의 데라로부터 그 아들인 아브라함을 빼앗은 것이다.

神様がそのようにされたのは、ご自身の子孫を奪ったサタンに対して、同様の方法で報復するため、つまり、反対の経路で取り戻すためであった。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은 자신의 자손을 빼앗은 사탄에 대하여 같은 방법으로 보복하기 위해서, 즉 반대의 경로로 되찾기 위해서였다.

アブラハムは、サタンの懐から抜け出した立場として、二度とサタンのもとに帰ることはなかった。
아브라함은 사탄의 품에서 빠져 나온 입장으로서 두 번 다시 사탄 밑에 돌아갈 일은 없었다.

アブラハムの行動は、多くの人々の手本となるものである。
아브라함의 행동은 많은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는 것이다.

神様がアブラハムに要求されたことは、慣れ親しんだハランを離れることであった。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신 것은 친숙한 하란을 떠나는 것이었다.

そして、神様は、そこを離れたアブラハムを帰らせないようにするため、み旨を立てようとする他の地域へと導かれたのである。
그리고 하나님은 거기를 떠난 아브라함을 돌아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뜻을 세우려고 하는 다른 지역으로 인도하신 것이다.

アブラハムが、神様のみ旨に従ったため、天にとっては喜びの存在となり、サタンにとっては悲しみの存在となった。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을 따랐으므로 하늘에 있어서는 기쁨의 존재가 되고 사탄에게 있어서는 슬픔의 존재가 되었다.

つまり、アブラハムは、分岐点からの進路を決める重要な存在であった。
즉 아브라함은 분기점으로부터의 진로를 결정하는 중요한 존재였다.

このようなアブラハムに未練を持っていたサタンは、アブラハムの後を付いて行ったのである。
이러한 아브라함에게 미련을 가지고 있었던 사탄은 아브라함의 뒤를 따라 간 것이다.


12-6 アブラハムは神様から祝福されハランを出発した
12-6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고 하란을 출발했다

アブラハムにとって、国を出て、親族と別れ、父の家を離れるのは、非常につらい事であった。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본토,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는 것은 대단히 괴로운 일이었다.

このような情は、天の情とは反対であるため、み旨の路程を出発しようとするときに、その行動を躊躇させるのである。
이러한 정(情)은 하늘의 정(情)과는 반대이므로 뜻의 노정을 출발하려고 할 때에 그 행동을 망설이게 하는 것이다.

しかし、アブラハムは、このような情を乗り越えて、ハランを出発した。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러한 정을 극복하고 하란을 출발했다.

これは、褒めたたえるべき行動である。
이것은 칭찬해야 할 행동이다.

この行動は、サタンに対する復讐となり、また、み旨の路程を出発し、それを成就させるための基礎となった。
이 행동은 사탄에 대한 복수가 되고, 또한 뜻의 노정을 출발하여 그것을 성취시키기 위한 기초가 되었다.

神様は、基本となるみ旨を、アブラハムの時から本格的に始めようとされた。
하나님은 기본이 되는 뜻을 아브라함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하셨다.

そのため、アブラハムに、大家族を成すであろうと祝福されたのである。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대가족을 이룰 것이라고 축복을 하신 것이다.

アブラハムは、神様のみ意を受け入れ、ハランを出発した。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하란을 출발했다.

アブラハムが、このように出発したということは、神様の代わりに、み旨を成就させるための行動を始めたということである。
아브라함이 이렇게 출발했다는 것은 하나님 대신에 뜻을 성취시키기 위한 행동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しかし、サタンは、そのみ旨を成就させないようにするため、アブラハムを取り戻そうとしていた。
그러나 사탄은 그 뜻을 성취시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되찾으려고 하고 있었다.


12-7 神様は改めてアブラハムに約束された
12-7 하나님은 다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다

アブラハムの甥ロトが、エラムの王と、その連合の王たちに捕らえられてしまった。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엘람왕과 그 연합의 왕들에게 붙잡혀 버렸다.

そのため、アブラハムは、王たちと対立したが、ロトを無事に取り戻すことができた。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왕들과 대립했지만 롯을 무사히 되찾을 수 있었다.

神様が、このように、アブラハムと王たちを対立させたのは、み旨を立てることのできる確固たる基盤を固めるためであった。
하나님이 이와 같이 아브라함과 왕들을 대립시킨 것은 뜻을 세울 수 있는 확고한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였다.

アブラハムが王たちに勝利した後、神様は、改めてアブラハムに約束された。
아브라함이 왕들에게 승리한 후, 하나님은 다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다.

それは、アブラハムに子孫ができ、その子孫が、神様のみ旨を立てることのできる民族となり、その民族によって、国家を建設するというものであった。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자손이 생기고 그 자손이 하나님의 뜻을 세울 수 있는 민족이 되고 그 민족에 의해 국가를 건설한다는 것이었다.

この全ての約束の中に、世界を復帰しようとする目的が含まれていたのである。
이 모든 약속 속에 세계를 복귀하려고 하는 목적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それゆえ、創世記15章1節から11節には、次のように記されている。
그러므로 창세기 15장 1절부터 11절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ただし、聖句中のアブラムは、後のアブラハムを表している。
단 성구 중의 아브람은 그 후의 아브라함을 표하고 있다.

主の言葉が(まぼろし)のうちにアブラムに(のぞ)んだ。「アブラムよ恐れてはならない。わたしはあなたの(たて)である。あなたの受ける報いは、はなはだ大きいであろう。」アブラムは言った。「主なる神よ、わたしには子がなく、わたしの家を継ぐ者はダマスコのエリエゼルであるのに、あなたはわたしに何をくださろうとするのですか。」アブラムはまた言った。「あなたはわたしに子を(たまわ)らないので、わたしの家に生まれたしもべが、あとつぎとなるでしょう。」この時、主の言葉が彼に臨んだ。「この者はあなたのあとつぎとなるべきではありません。あなたの身から出る者があとつぎとなるべきです。」そして、主は彼を外に連れ出して言われた。「天を仰いで、星を数えることができるなら、数えてみなさい。」また、彼に言われた。「あなたの子孫はあのようになるでしょう。」アブラムは主を信じた。主はこれを彼の義と認められた。また主は彼に言われた。「わたしはこの地をあなたに与えて、これを継がせようと、あなたをカルデアのウルから導き出した主です。」彼は言った。「主なる神よ、わたしがこれを継ぐのをどうして知ることができますか。」主は彼に言われた。「三歳の雌牛(めうし)と、三歳の()やぎと、三歳の雄羊(おひつじ)と、山バトと、家バトのひなとをわたしの所に連れてきなさい。」彼はこれらをみな連れてきて、二つに裂き、裂いたものを互いに向かい合わせて置いた。ただし、鳥は裂かなかった。荒い鳥が死体の上に降りるとき、アブラムはこれを追い払った。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로라 그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년 된 암소와 삼년 된 암염소와 삼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찌니라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しかし、次の12節から13節には、次のように記されている。
그러나 다음 12절부터 13절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日の()るころ、アブラムが深い眠りにおそわれた時、大きな恐ろしい暗やみが彼に臨んだ。時に主はアブラムに言われた。「あなたはよく心にとめておきなさい。あなたの子孫は他の国に旅びととなって、その人々に仕え、その人々は彼らを400年の間、悩ますでしょう。」
"해질 때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このように、神様は、アブラハムに憤慨されたのである。
이와 같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분개하신 것이다.

それは何故だろうか。
그것은 왜일까?


12-8 アブラハムの供え物は失敗した
12-8 아브라함의 제물은 실패했다

アブラハムと神様との約束の供え物は、アブラハムの子孫を表すものであった。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약속의 제물은 아브라함의 자손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つまり、この供え物は、神様のみ意にかなう民族を立て、全人類を取り戻そうとされる神様の目的を、象徴的に表すものであった。
즉 이 제물은 하나님의 뜻에 적합한 민족을 세워서 전인류를 되찾으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었다.

このようにして、神様は、アブラハム一人によって、み旨を立てようとされたのであり、サタンは、そのみ旨が成就しないことを望みながら、アブラハムの行動の結果だけを見ていたのである。
이리하여 하나님은 아브라함 한 사람에 의해 뜻을 세우려고 하셨고, 사탄은 그 뜻이 성취하지 않는 것을 바라면서 아브라함의 행동의 결과 만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もし、アブラハムが、供え物をみ意の通りに捧げることができなければ、サタンに対して、アブラハムの子孫に侵入することを許さざるを得ないという重要な供え物だったのである。
만약 아브라함이 제물을 뜻대로 바칠 수 없으면 사탄에 대하여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다는 중요한 제물이었던 것이다.

しかし、この供え物の上に、荒い鳥が降りたということは、アブラハムが供え物に失敗したということを意味している。
그러나 이 제물 위에 솔개가 내려왔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제물에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その失敗とは、ハトを裂かなかったことである。
그 실패란 비둘기를 쪼개지 않았다는 것이다.

供え物を二つに裂くということは、神様が人々を神様側とサタン側に分けて摂理されるということを表していた。
제물을 둘로 쪼갠다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들을 하나님 측과 사탄 측으로 나누어서 섭리하신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それゆえ、ハトを裂かなかったということは、アブラハムの子孫に対する摂理が不完全なものになるということを意味していた。
그러므로 비둘기를 쪼개지 않았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에 대한 섭리가 불완전한 것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던 것이다.

こうして、サタンは、アブラハムの子孫に侵入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
이리하여 사탄은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荒い鳥が供え物の上に降りたのは、それがサタンのものであるということを示すためであった。
솔개가 제물 위에 내려온 것은 그것이 사탄의 것이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였다.

では、三種の供え物は、何を表していたのか。
그러면 세 가지 제물은 무엇을 나타내고 있었던 것인가?

これは、神様のみ旨が三段階であるということ、即ち、ハトは蘇生、羊は長成、牛は完成を表していた。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3단계가 되어 있다는 것, 즉 비둘기는 소생, 양은 장성, 소는 완성을 나타내고 있었다.

もし、この供え物が、み意の通りに捧げられていたならば、イスラエル民族のエジプトにおける400年間の苦役は無かったのである。
만약 이 제물이 뜻대로 바쳐져 있었으면 이스라엘 민족의 애굽에 있어서의 400년간의 고역은 없었을 것이다.

この苦役は、アブラハムの供え物が、いかに重要であったのかを告げるものである。
이 고역은 아브라함의 제물이 얼마나 중요했던 것인지를 알리는 것이다.

この400年の意義は、後で論じることにする。
이 400년의 의의는 나중에 논하기로 한다.

こうして、供え物は、サタンに奪われてしまった。
이리하여 제물은 사탄에게 빼앗겨 버렸다.

結局、アブラハムが、サタンの願いを果たす結果となった。
결국 아브라함이 사탄의 소원을 다한 결과가 되었다.

つまり、アブラハムは、サタンに供え物を捧げてしまったため、その供え物をサタンが所有するという根拠を示した立場となり、供え物の目的が果たせなくなったのである。
즉 아브라함은 사탄에게 제물을 바쳐 버렸기 때문에 그 제물을 사탄이 소유한다는 근거를 제시하는 입장이 되어 제물의 목적을 다할 수 없게 된 것이다.


12-9 イサクの燔祭は供え物の失敗によるもの
12-9 이삭의 번제는 제물의 실패로 인한 것이다

しかし、実体の子孫は、まだ、サタンに奪われていなかった。
그러나 실체의 자손은 아직 사탄에게 빼앗기지 않았다.

それゆえ、神様は、その子孫を奪われないように、何としても、その子孫にサタンが侵入するのを防が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자손을 빼앗기지 않도록 어떻게 하더라도 그 자손에게 사탄이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했다.

そのため、神様は、その子孫の始まりであるアブラハムの息子イサクを守ろうとされたが、サタンは、既にイサクを取ることのできる供え物を所有していたため、その供え物の実体であるイサクを求めていたのである。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자손의 시작인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지키려고 하셨지만 사탄은 이미 이삭을 취할 수 있는 제물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제물의 실체인 이삭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神様は、アブラハムが再び従順になれば、その子孫に、み旨を継承させようとされた。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다시 순종하면 그 자손에게 뜻을 계승시키려고 하셨다.

これが、アブラハムに対して、イサクを供え物として捧げよと言われた根本的な意義である。
이것이 아브라함에 대하여 이삭을 제물로서 바치라고 하신 근본적인 의의다.

このような命令に従うことは、容易なことではなかったが、アブラハムは、供え物の失敗によって、自分の子孫が400年間苦しむことを知っていたため、今度失敗すれば、言葉では言い表すことができないほどの大きな問題が起きると思い、全面的に神様の命令に従ったのである。
이러한 명령을 따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아브라함은 제물의 실패로 인해 자기의 자손이 400년간 괴로워하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다음에 실패하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큰 문제가 일어난다고 생각하여 전면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른 것이다.

こうして、アブラハムが、み意の通りに、供え物として息子を捧げるという確固たる立場に立ったため、サタンはイサクから退いていった。
이리하여 아브라함이 뜻대로 제물로서 아들을 바친다는 확고한 입장에 섰으므로 사탄은 이삭으로부터 떠나 갔다.

このように、イサクの燔祭(はんさい)は、アブラハムの供え物の失敗によるものだったのである。
이와 같이 이삭의 번제는 아브라함의 제물의 실패로 인한 것이었다.

今の人々は、イサクの燔祭に、このような意味があったことを、まだ知らずにいる。
지금의 사람들은 이삭의 번제에 이러한 의미가 있었던 것을 아직 모르고 있다.

しかし、これに関することは、創世記22章9節から12節に、次のように記されているのである。
그러나 이것에 관한 것은 창세기 22장 9절부터 12절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彼らが神の示された場所にきたとき、アブラハムはそこに祭壇を築き、たきぎを並べ、その子イサクを縛って祭壇のたきぎの上に載せた。そしてアブラハムが手を差し伸べ、刃物を執ってその子を殺そうとした時、主の使(つかい)が天から彼を呼んで言った。「アブラハムよ、アブラハムよ。」彼は答えた。「はい、ここにおります。」み使(つかい)が言った。「わらべを手にかけてはならない。また何も彼にしてはならない。あなたの子、あなたのひとり子をさえ、わたしのために惜しまないので、あなたが神を恐れる者であることをわたしは今知った。」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この聖句の最後にある「今知った」という言葉は、前回の供え物の失敗を告げていると同時に、み旨がアブラハムの子孫に継承されることを告げているのである。
이 성구의 마지막 쪽에 있는 "이제야 아노라"라는 말은 지난번의 제물의 실패를 알리고 있는 동시에 뜻이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계승될 것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神様が言われた通り、供え物の失敗によって、アブラハムの子孫は、400年の間、怨讐のもとで苦役をした。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제물의 실패로 인해 아브라함의 자손은 400년 동안 원수 밑에서 고역을 했다.

つまり、イスラエル民族のエジプトにおける400年間の苦役は、必然的な過程だったのである。
즉 이스라엘 민족의 애굽에 있어서의 400년간의 고역은 필연적인 과정이었던 것이다.

それを乗り越えて、次の路程に入ることができた。
그것을 극복하고 다음 노정에 들어갈 수 있었다.


12-10 三種の供え物の意味
12-10 세 가지 제물의 의미

前述のように、原理的な過程には、蘇生、長成、完成の三段階があり、神様は、それを表すために、三種の供え物として、ハト、羊、牛を求められた。
전술과 같이 원리적인 과정에는 소생, 장성, 완성의 3단계가 있고, 하나님은 그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세 가지 제물로서 비둘기, 양, 소를 요구하셨다.

その内のハトは、蘇生段階を表していた。
그 중의 비둘기는 소생 단계를 나타내고 있었다.

しかし、その蘇生段階において、み旨に従順に従うことができなければ、サタンを分立することによって、長成、完成へと展開するということを、神様は示されたのである。
그러나 그 소생 단계에 있어서 뜻에 순종하게 따를 수 없으면 사탄을 분립함으로써 장성, 완성으로 전개한다는 것을 하나님은 보여 주신 것이다.

三種の供え物には、一度でみ旨を成就させようとされた神様のみ意があった。
세 가지 제물에는 한 번에 뜻을 성취시키려고 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

しかし、結果的に、蘇生段階は、神様の責任分担として、次の長成段階のために、基礎を固める期間となった。
그러나 결과적으로 소생 단계는 하나님의 책임 분담으로서 다음 장성 단계를 위해서 기초를 다지는 기간이 되었다.

その長成段階では、イエスが来られ、エバを取り戻さ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り、その次の完成段階では、全人類がイエスを中心として一つになり、神様の全ての創造目的を果たさなければならない。
그 장성 단계에서는 예수가 오셔서 해와를 되찾아야 하고, 그 다음 완성 단계에서는 전인류가 예수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모든 창조목적을 다해야 한다.

ところで、牛は完成を意味するが、それは再臨を意味するものとなった。
그런데 소는 완성을 의미하지만 그것은 재림을 의미하는 것이 되었다.

この再臨という問題が生じたのは、人の不信仰と不従順によって、イエスが十字架にかけられたため、再臨して、長成と完成を共に成さなければならないからである。
이 재림이라는 문제가 생긴 것은 사람의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인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에 재림하여 장성과 완성을 함께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しかし、何故、雌牛(めうし)だったのか。
그러나 왜 암소였던 것인가?

それは、み旨が完成に至るためには、エバという存在が問題の中心となるため、そのエバを雌牛として表していたのである。
그것은 뜻이 완성에 이르기 위해서는 해와라는 존재가 문제의 중심이 되므로 그 해와를 암소로서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士師記14章18節の最後に、「わたしの若い雌牛で耕さなかったなら、わたしのなぞは解けなかった」と記されている。
사사기 14장 18절의 마지막에 "내 암송아지로 밭갈지 아니하였더면 나의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라고 적혀 있다.

このように、サムソンは、ペリシテ人に対して、妻を雌牛と表していた。
이와 같이 삼손은 블레셋 사람에 대하여 아내를 암소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このような例からも、雌牛はエバを表していたということが分かる。
이러한 예에서도 암소는 해와를 의미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2-11 イサクに双子の息子エサウとヤコブが生まれた理由
12-11 이삭에게 쌍동이 아들 에서와 야곱이 태어난 이유

サタンは、イサクを通しては、自分の思いを果たすことができなくなった。
사탄은 이삭을 통해서는 자기의 생각을 다할 수 없게 되었다.

しかし、アブラハムの供え物を全て自分のものにしたことは事実であるため、イサクの子孫を取ることができるのではないかと考えていた。
그러나 아브라함의 제물을 모두 자기가 소유한 것은 사실이므로 이삭의 자손을 취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고 있었다.

それゆえ、サタンは、以前と同じように、神様と対立する立場を取るようになったのである。
그러므로 사탄은 이전과 같이 하나님과 대립하는 입장을 취하게 된 것이다.

イサクに双子の息子、エサウとヤコブが生まれた。
이삭에게 쌍동이 아들 에서와 야곱이 태어났다.

この双子は、何を意味するのか。
이 쌍동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アブラハムの失敗によって、供え物をサタンに取られたため、実体の息子であるイサクが問題となった。
아브라함의 실패로 인해 제물을 사탄에게 빼앗겼기 때문에 실체 아들인 이삭이 문제가 되었다.

結局、イサクはサタンに取られなかったが、イサクの息子をサタンに譲るという結果になったのである。
결국 이삭은 사탄에게 빼앗기지 않았지만 이삭의 아들을 사탄에게 물려준다는 결과가 된 것이다.

この双子の息子は、サタン側の存在と神様側の存在が、一つの胎中にいたことを表している。
이 쌍동이 아들은 사탄 측의 존재와 하나님 측의 존재가 하나의 태중(胎中)에 있었던 것을 나타내고 있다.

エサウとヤコブが、胎中にいた時から争っていたのは、根本的に背反する存在だったからである。
에서와 야곱이 태중에 있었을 때부터 싸우고 있었던 것은 근본적으로 배반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それゆえ、神様は、リベカに次のように言われた。
그러므로 하나님은 리브가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二つの国民があなたの胎内にあり、二つの民があなたの腹から別れて出る。一つの民は他の民よりも強く、兄は弟に仕えるであろう。」(創世記25章23節)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창세기 25장 23절)

この双子の息子のうち、兄のエサウはサタン側であり、弟のヤコブは神様側であった。
이 쌍동이의 아들 중 형인 에서는 사탄 측이고 남동생인 야곱은 하나님 측이었다.

つまり、エサウは、アブラハムが供え物に失敗した結果であり、弟のヤコブは、イサクからみ旨を継承し、供え物の失敗を取り戻すべき立場であった。
즉 에서는 아브라함이 제물에 실패한 결과며 남동생인 야곱은 이삭으로부터 뜻을 계승하고 제물의 실패를 되찾아야 할 입장이었다.

神様がヤコブを通してみ旨を立てようとされたのは、原理通りにサタン側から奪うことによって、み旨が成就するようになっていたからである。
하나님이 야곱을 통해 뜻을 세우려고 하신 것은 원리대로 사탄 측에서 빼앗음으로써 뜻이 성취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これが、エサウの祝福をヤコブが奪った根本的な意義である。
이것이 에서의 축복을 야곱이 빼앗은 근본적인 의의다.

もし、供え物の失敗が無かったならば、イサクには、神様が好まれないエサウのような息子は存在しなかった。
만약 제물의 실패가 없었으면 이삭에게는 하나님이 좋아하시지 않는 에서와 같은 아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しかし、神様が、そのような息子を存在させたのは、サタンがアブラハムの子孫に未練を残さないようにするためであった。
그러나 하나님이 그러한 아들을 존재시킨 것은 사탄이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미련을 남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また、ヤコブが、母リベカの協力を得て、エサウから嗣業(しぎょう)を奪ったのは、将来、イエスが来られ、サタンの血を受け継いだ人々を、全て取り戻すということを予告したのである。
또한 야곱이 어머니인 리브가의 협조를 받아 에서로부터 장자의 직분(職分)을 빼앗은 것은 장래 예수가 오셔서 사탄의 피를 받은 사람들을 모두 되찾는다는 것을 예고한 것이다.

神様がアブラハムに約束されたことは、神様の目的を表していた。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나타내고 있었다.

そのような意味で、イサクが、分岐となる存在だったのであり、ヤコブが、サタン側のエサウから嗣業を奪ったのである。
그러한 의미로 이삭이 분기가 되는 존재였던 것이고, 야곱이 사탄 측의 에서로부터 장자의 직분을 빼앗은 것이다.


12-12 エジプトからカナンまでの復帰路程は神様の責任分担
12-12 애굽에서 가나안까지의 복귀 노정은 하나님의 책임 분담이었다

ヤコブの息子たちは、イスラエル12支族の祖となった。
야곱의 아들들은 이스라엘 12지파의 시조(始祖)가 되었다.

つまり、み旨成就のための民族は、ヤコブの子孫なのである。
즉 뜻을 성취하기 위한 민족은 야곱의 자손이다.

では何故、イサクからではなかったのか。
그러면 왜 이삭으로부터가 아니었는가?

それは、前述したことからも分かるように、イサクがアダムと同様に、神様にもサタンにも対応することのできる立場だったからである。
그것은 전술한 것으로부터도 알 수 있지만 이삭이 아담과 같이 하나님께도 사탄에게도 대응할 수 있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それゆえ、イサクではなく、ヤコブの時に、エジプトに向かったのであり、それが、み旨成就への出発となったのである。
그러므로 이삭이 아니고 야곱 때에 애굽을 향한 것이고, 그것이 뜻을 성취하기 위한 출발이 된 것이다.

このような理由で、アブラハムの神、イサクの神、ヤコブの神と呼ばれるようになった。
이러한 이유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今まで、信徒たちは、これを良い意味で捉えていたが、それは大きな誤解である。
지금까지 신도들은 이것을 좋은 의미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큰 오해다.

以上のように、ヤコブが神様側として、サタンから分立されたため、神様の責任分担として、復帰の摂理が始まったのである。
상술과 같이 야곱이 하나님 측으로서 사탄으로부터 분립되어졌으므로 하나님의 책임 분담으로서 복귀의 섭리가 시작된 것이다.

まず、神様は、基礎を作られた。
우선 하나님은 기초를 만드셨다.

それが、供え物で示された蘇生の過程、即ち、エジプトからカナンまでの復帰路程であった。
그것이 제물로서 보여 주신 소생의 과정, 즉 애굽에서 가나안까지의 복귀 노정이었다.

この路程が、長成の使命分担責任者であるイエスのための手本とならなければ、神様が蘇生の責任を果たしたとは言えなかった。
이 노정이 장성의 사명 분담 책임자인 예수를 위한 본보기가 안 되면 하나님이 소생의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없었다.

このように、イスラエル民族がエジプトでの苦役を経て、ソロモンが王になるまでの路程は、将来、イエスが果たさなければならない事を予告していたのである。
이와 같이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의 고역을 거치고 솔로몬이 왕이 될때 까지의 노정은 장래 예수가 다해야 할 것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つまり、神様が、イスラエル民族をエジプトからカナン福地に導かれたように、イエスは、人々を理想の福地へと導いていか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である。
즉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가나안 복지(福地)까지 인도하신 것과 같이 예수는 사람들을 이상적인 복지에 인도해야 했던 것이다.

このようなイエスの使命を表すように、蘇生の過程が展開されたということを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
이러한 예수의 사명을 나타내게 소생의 과정이 전개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12-13 神様がモーセを立てられた理由
12-13 하나님이 모세를 세우신 이유

神様は、イスラエル民族をエジプトから導き出すために、ご自身の代わりとして、モーセを立てられた。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인도하기 위해서 자신의 대신으로서 모세를 세우셨다.

では何故、モーセが選ばれたのか。
그러면 왜 모세가 택하여졌는가?

怨讐のエジプト人が、イスラエル民族を極度に虐待していたため、苦役中のイスラエル人が、そのエジプト人と戦っていた。
원수인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민족을 극도로 학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역중인 이스라엘 사람이 그 애굽 사람과 싸우고 있었다.

それをモーセが見て、そのエジプト人を殺したのである。
그것을 모세가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죽인 것이다.

モーセは、本来、エジプト宮中で育ったが、エジプト人を怨讐のように見ていた。
모세는 본래 애굽 궁중에서 자랐지만 애굽 사람을 원수와 같이 보고 있었다.

それは、モーセに、自分がイスラエルの子孫であるという確固たる思いがあったからである。
그것은 모세에게는 자기가 이스라엘의 자손이라는 확고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それゆえ、モーセは、神様に愛されていた。
그러므로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있었다.

つまり、エジプト宮中で育ったが、エジプト人ではなく、天の民族そのものだったのである。
즉 애굽 궁중에서 자랐지만 애굽 사람이 아니고 하늘의 민족 그 자체였던 것이다.

モーセは、エジプト人の一番嫌いなイスラエル民族ではあったが、エジプト宮中では愛されて育った。
모세는 애굽 사람이 가장 싫어하는 이스라엘 민족이었지만 애굽 궁중에서는 사랑받고 자랐다.

しかし、モーセは、エジプト宮中を出てから、二度とエジプトとは結託しなかった。
그러나 모세는 애굽 궁중을 나가고 나서 두 번 다시 애굽과는 결탁하지 않았다.

それは、エジプト人に対して、憎悪の念を抱いていたからである。
그것은 애굽 사람에 대하여 증오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モーセが、このような存在であったため、神様に選ばれたのである。
모세가 이러한 존재였으므로 하나님으로부터 택하여진 것이다.


12-14 モーセに奇跡のしるしとアロンを与えられた理由
12-14 모세에게 이적(異跡)과 아론을 주신 이유

神様は、モーセに、エジプト王のパロのところに行くよう命じられた。
하나님은 모세에게 애굽 왕 바로에게 가도록 명하셨다.

それは、パロに、アブラハム、イサク、ヤコブの神様を知らせ、イスラエル民族を解放するように伝えるためである。
그것은 바로에게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을 알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하도록 전하기 위해서다.

出エジプト記4章を見れば、その時、モーセは、エジプト人に自分を信じさせることのできる証拠となるものを神様に求めていた。
출애굽기 4장을 보면 그때 모세는 애굽 사람들에게 자기를 믿게 할 수 있는 증거가 되는 것을 하나님께 요구하고 있었다.

それゆえ、神様は、杖がヘビになるという最初の奇跡を見せられたのである。
그러므로 하나님은 지팡이가 뱀이 되는 첫째 이적(異跡)을 보여 주신 것이다.

続いて、神様が、「あなたの手を(ふところ)に入れなさい」と言われたため、モーセが手を懐に入れると、その手が、らい病にかかっていた。
이어서 하나님이 "네 손을 품에 넣으라"라고 하셨으므로 모세가 손을 품에 넣었더니 그 손이 문둥병에 걸려 있었다.

そして、「手を懐にもどしなさい」と言われたため、その手を再び懐に入れ、出して見ると、その手は元通りに回復していた。
그리고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라고 하셨으므로 그 손을 다시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 손이 그전대로 회복되어 있었다.

さらに、神様は言われた。
하나님은 더 말씀하셨다.

「彼らがもしこの二つのしるしをも信ぜず、あなたの声に聞き従わないならば、あなたはナイル川の水を取って、かわいた地に注ぎなさい。あなたがナイル川から取った水は、かわいた地で血となるであろう。」
"그들이 이 두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하수를 조금 취하여다가 육지에 부으라 네가 취한 하수가 육지에서 피가 되리라"

次に、モーセは、「わたしは口も重く、舌も重いのです」と言って、神様に言葉を求めた。
그 다음에 모세는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라고 하여 하나님께 말을 요구했다.

神様は、アロンを同行させるようにし、「彼はあなたに代わって民に語るであろう」と言われた。
하나님은 아론을 동행시키도록 하여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라고 하셨다.

このように、モーセの要求に対して、神様が応えられた内容は、将来、イエスが果たさなければならない全ての目的を象徴するものであった。
이와 같이 모세의 요구에 대하여 하나님이 응하신 내용은 장래 예수가 다해야 할 모든 목적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まず、最初の杖は、保護者を表していた。
우선 첫째 지팡이는 보호자를 나타내고 있었다.

つまり、その杖は、み旨を果たすべき者を保護し、行くべき道を案内し、また、適切でない者を打つものである。
즉 그 지팡이는 뜻을 다해야 할 자를 보호하고 가야 할 길을 안내하고, 또한 적절하지 않는 자를 치는 것이다.

これは、イエスが、我々の生命の保護者になるということを意味していた。
이것은 예수가 우리 생명의 보호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また、その杖をヘビに変えられたのは、将来、イエスが、天のヘビのように現れ、ヘビに象徴されたサタンの手中からエバを取り戻し、勝利するということを予告されたのである。
또한 그 지팡이를 뱀으로 바꾸신 것은 장래 예수가 하늘의 뱀과 같이 나타나 뱀에 상징된 사탄의 수중으로부터 해와를 되찾고 승리한다는 것을 예고하신 것이다.

次に、モーセが手を懐に入れると、らい病にかかったというのは、サタンに誘惑されたエバが、アダムを堕落に導いたということである。
그 다음에 모세가 손을 품에 넣었더니 문둥병에 걸렸다는 것은 사탄에게 유혹된 해와가 아담을 타락에 인도했다는 것이다.

そして、再び手を懐に入れると回復したというのは、イエスが来られて、エバを取り戻せば、堕落した死の状態から蘇生するということである。
그리고 다시 손을 품에 넣었더니 회복되었다는 것은 예수가 오셔서 해와를 되찾으면 타락한 죽음의 상태로부터 소생된다는 것이다.

つまり、最初の懐は死を表していたが、次の懐は生命と永生を表していた。
즉 첫째 품은 죽음을 나타내고 있었지만 다음 품은 생명과 영생을 나타내고 있었다.

その次に、川の水が血になったというのは、イエスが来られたならば、死の状態にあった存在に、生命が注入され始めるということを表していた。
그 다음에 하수가 피가 되었다는 것은 예수가 오시면 죽음의 상태에 있었던 존재에 생명의 주입이 시작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また、神様が、言葉を求めたモーセに、言葉に優れたアロンを与えられたのは、み言で創造されたものがサタンに奪われたため、イエスが来られたならば、それらをサタンから取り戻し、み言に相応する理想的な実体とすることで、創造目的が成就するということを表していた。
또한 하나님이 말을 요구한 모세에게 말을 잘하는 아론을 주신 것은 말씀으로 창조된 것이 사탄에게 빼앗겼기 때문에 예수가 오시면 그것들을 사탄으로부터 되찾고 말씀에 상응하는 이상적인 실체로 함으로써 창조목적이 성취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12-15 モーセの妻子による割礼の意義
12-15 모세의 처자(妻子)에 의한 할례의 의의

神様は、モーセが求めたものを全て与えられた。
하나님은 모세가 요구한 것을 모두 주셨다.

そして、モーセに言われた。
그리고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エジプトに帰って行きなさい。あなたの命を求めた人々はみな死んだ。」(出エジプト記4章19節)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생명을 찾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 (출애굽기 4장 19절)

こうして、モーセは、妻子を連れて、エジプトに向かったのである。
이리하여 모세는 처자(妻子)를 데리고 애굽을 향한 것이다.

また、神様は、次のことをパロに伝えるようモーセに言われた。
또한 하나님은 다음 내용을 바로에게 전하도록 모세에게 지시하셨다.

「主はこう仰せられる。イスラエルはわたしの子、わたしの長子である。わたしはあなたに言う。わたしの子を去らせて、わたしに仕えさせなさい。もし彼を去らせるのを拒むならば、わたしはあなたの子、あなたの長子を殺すであろう。」(出エジプト記4章22節から23節)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놓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출애굽기 4장 22절부터 23절)

ところが、途中の宿所で、神様が現れ、モーセを殺そうとされた。
그런데 가는 도중 숙소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다.

その時、モーセの妻チッポラは、息子の陽皮を切り取り、それをモーセの足につけて言った。
그때 모세의 아내인 십보라는 아들의 양피(陽皮)를 잘라내고 그것을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말했다.

「あなたはまことに、わたしにとって血の花婿です。」(出エジプト記4章25節)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출애굽기 4장 25절)

こうして、モーセは死を免れた。
이리하여 모세는 죽음을 모면했다.

それは、割礼のゆえである。
그것은 할례에 의해서다.

もし、この時、チッポラと息子が一つになれず、割礼を行うことができなければ、モーセは死んでいたのである。
만일 이때 십보라와 아들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할례를 행할 수 없었으면 모세는 죽었을 것이다.

つまり、リベカとヤコブが一つになって、み旨が成就したように、チッポラと息子が一つになったため、割礼を行うことができたのであり、それによってモーセが生かされ、イスラエル民族が神様の長子の立場に立つことができ、み旨を成就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のである。
즉 리브가와 야곱이 하나가 되어서 뜻이 성취된 것 같이 십보라와 아들이 하나가 되었으므로 할례를 행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것에 의해 모세가 살게 되어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장자의 입장에 설 수 있었고 뜻을 성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それは、将来、イスラエル民族によって、カナンを復帰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ということである。
그것은 장래 이스라엘 민족에 의해 가나안을 복귀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このように、モーセは、イスラエル民族の将来を左右する存在であった。
이와 같이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장래를 좌우하는 존재였다.

こうして、神様は、イエスも母親と一つになれば、み旨を成就す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ことを示されたのである。
이리하여 하나님은 예수도 어머니와 하나가 되면 뜻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これは、もし母親と一つになることができなければ、み旨を成就することができず、イエスは十字架の道を行かざるを得ないということでもあった。
이것은 만약 어머니와 하나가 되지 못하면 뜻을 성취할 수 없고, 예수는 십자가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기도 했다.

このように、イエスは、生死をかけた重要な責任を果たさ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である。
이와 같이 예수는 생사를 건 중요한 책임을 다해야 했던 것이다.

しかし、結局、イエスは母親と一つにな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그러나 결국 예수는 어머니와 하나가 될 수 없었다.

それは、母親がみ意に従うことができなかったからである。
그것은 어머니가 뜻을 따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そのため、イエスは、ガリラヤのカナで奇跡を見せている時に、ご自身の母親に対して、「婦人よ、あなたは、わたしと、なんの係わりがありますか」(ヨハネによる福音書2章4節)と言われたのである。
그러므로 예수는 갈릴리 가나에서 기적을 보여 주고 있을 때에 자신의 어머니에 대하여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요한복음 2장 4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このように言われたのは、母親がイエスの第一次のみ旨に失敗をもたらしたからである。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은 어머니가 예수의 제1차의 뜻에 실패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つまり、イエスは、十字架の道を避けられなくなった。
즉 예수는 십자가의 길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これは、モーセが神様のみ旨を成就できず、使命を果たすことができなかった事と同様である。
이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수 없어서 사명을 다할 수 없었던 것과 같다.

このような路程に隠された原理的事実を、誰が知り得るだろうか。
이러한 노정에 숨겨진 원리적 사실을 누가 알 수 있을 것인가?

ここで、割礼について述べることにする。
여기서 할례에 관해서 논하려고 한다.

割礼という風習が生じたのは、エバがサタンの血を受け入れ、アダムまでが堕落したからである。
할례라는 풍습이 생긴 것은 해와가 사탄의 피를 받아들여서 아담까지가 타락했기 때문이다.

もし、アダムが、エバを主管していたならば、堕落は防げたはずであったが、逆に、エバに主管されたため、堕落したのである。
만약 아담이 해와를 주관하고 있었으면 타락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지만 반대로 해와의 주관을 받았기 때문에 타락한 것이다.

従って、堕落の責任は、エバよりもアダムにあった。
따라서 타락의 책임은 해와보다도 아담에게 있었다.

こうして、エバに主管されたアダムは、神様の前に立つことのできない立場となった。
이리하여 해와의 주관을 받은 아담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입장이 되었다.

このように、男性の陽部が、サタンの血を受け入れ、堕落に至ったため、割礼によって、その血を抜いたということを示したのである。
이와 같이 남성의 양부가 사탄의 피를 받아들여서 타락에 이르렀기 때문에 할례에 의해 그 피를 뺐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割礼は、アブラハムと神様との永遠の契約であった。(創世記17章9節から14節参照)
할례는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영원한 계약이었다. (창세기 17장 9절부터 14절 참조)

そのため、アブラハムの子孫は、割礼を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자손은 할례를 해야 했다.

そうしてこそ、神様に属することができ、また、主管性を復帰した男性としての資格が与えられたのである。
그렇게 해야 하나님께 속할 수 있고, 또한 주관성을 복귀한 남성으로서의 자격이 주어진 것이다.

割礼には、心の割礼(申命記10章16節参照)があり、肉身の割礼(創世記17章10節参照)があり、万物の割礼(レビ記19章23節参照)がある。
할례에는 마음의 할례(신명기 10장 16절 참조)가 있고 육신의 할례(창세기 17장 10절 참조)가 있고 만물의 할례(레위기 19장 23절 참조)가 있다.

また、割礼には、以下のような重要な意味がある。
또한 할례에는 아래와 같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1) 死の血を抜くということ
(1) 죽음의 피를 뺀다는 것

(2) 主管性を取り戻すということ
(2) 주관성을 되찾는다는 것

(3) み旨の道を行くという約束をすること
(3) 뜻 길을 간다는 약속을 하는 것

人々は、このような割礼の意味を、今まで知らなかったのであり、また、それを知ってはならなかったのである。
사람들은 이러한 할례의 의미를 지금까지 몰랐고, 또한 그것을 알아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12-16 モーセの路程はイエスの手本
12-16 모세의 노정은 예수의 본보기다

イスラエル民族が、み旨を全て成就できるかどうかは、モーセの行動にかかっていた。
이스라엘 민족이 뜻을 모두 성취할 수 있는지 어떤지는 모세의 행동에 걸리고 있었다.

また、モーセの路程は、イエスの手本となるべきものであった。
또한 모세의 노정은 예수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それは、原理によって、知ることができる。
그것은 원리에 의해 알 수 있다.

つまり、神様の責任分担摂理は、イエスの路程に相対するように進められたのである。
즉 하나님의 책임 분담 섭리는 예수의 노정에 상대하게 진행된 것이다.

モーセに同行したアロンは、イスラエルの祭司となった。
모세와 동행한 아론은 이스라엘의 제사(祭司)가 되었다.

また、アロンは、モーセの補佐役でもあった。
또한 아론은 모세의 보좌역이기도 했다.

こうして、神様は、民族の贖罪に対して、アロンが責任を果たすようにされたのである。
이리하여 하나님은 민족의 속죄에 대하여 아론이 책임을 다하도록 하신 것이다.

これは、エバの聖霊が、イエスに従い、人々の贖罪に対して、責任を果たさ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を表していた。
이것은 해와의 성령이 예수를 따르고 사람들의 속죄에 대하여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つまり、モーセとアロンが一つになっていたように、イエスと聖霊も一つにな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を表していたのである。
즉 모세와 아론이 하나가 된 것 같이 예수와 성령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また、神様がモーセにアロンを与えられたのは、モーセが単に協力者を求めたのではなく、み言の代弁者を求めたからである。
또한 하나님이 모세에게 아론을 주신 것은 모세가 단지 협조자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말씀의 대변자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このように、神様がモーセにみ言の代弁者を与えられたということは、神様のみ言に背いたのはエバであったが、イエスがエバの聖霊を取り戻して、み言を成就させ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を表していた。
이와 같이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의 대변자를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신한 사람은 해와였지만 예수가 해와의 성령을 되찾고 말씀을 성취시켜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このように、アロンは、エバの役割を果たさ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이와 같이 아론은 해와의 역할을 다해야 했다.

そのため、アロンは、モーセの補佐役として、み旨に協力したのである。
그러므로 아론은 모세의 보좌역으로서 뜻에 협조한 것이다.

これは、聖霊がイエスに協力することによって、み旨が成就されるということを表していた。
이것은 성령이 예수에게 협조함으로써 뜻이 성취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12-17 摂理における3日路程の意味
12-17 섭리에 있어서의 3일 노정의 의미

モーセは、アロンと共に、パロのところに行き、イスラエル民族を解放するよう要求した。
모세는 아론과 함께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하도록 요구했다.

しかし、パロは、モーセの要求を受け入れなかった。
그러나 바로는 모세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それに対して、神様は、むしろパロの心をかたくなにされ、一層イスラエル民族を憎むようにされた。
그것에 대하여 하나님은 오히려 바로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더욱더 이스라엘 민족을 미워하게 하셨다.

モーセとアロンは、さらに言った。
모세와 아론은 더 말했다.

「どうか、わたしたちを3日の道のりほど荒野に行かせ、わたしたちの神、主に犠牲をささげさせてください。」(出エジプト記5章3節)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에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하오니 가기를 허락하소서" (출애굽기 5장 3절)

イスラエル民族が、み旨の路程を出発できるかどうかは、この3日路程にかかっていた。
이스라엘 민족이 뜻의 노정을 출발할 수 있는지 어떤지는 이 3일 노정에 걸리고 있었다.

つまり、この3日間をパロが承諾しなければ、イスラエル民族は、み旨の路程を出発することさえできないという問題だったのである。
즉 이 3일간을 바로가 승낙하지 않으면 이스라엘 민족은 뜻의 노정을 출발하는 것마저 할 수 없다는 문제였던 것이다.

モーセのときに、このような3日路程があったように、イエスのときにも、3日路程が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모세 때에 이러한 3일 노정이 있었던 것 같이 예수 때에도 3일 노정이 있어야 했다.

そのためには、イエスにも、アロンのような存在が必要であった。
그것을 위해서는 예수에게도 아론과 같은 존재가 필요했다.

イエスは、荒野の試練を通して、サタンに勝利し、モーセの立場に立つことのできる条件を得たが、アロンのような、エバの役割を果たすことのできる存在を得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예수는 광야의 시련을 통해서 사탄에게 승리하여 모세의 입장에 설 수 있는 조건을 얻었지만 아론과 같은 해와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존재를 얻을 수 없었다.

そのため、3日路程が思い通りにはならず、それが原因となって、十字架の死から3日間が始まったのである。
그러므로 3일 노정이 생각대로는 안 되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십자가의 죽음으로부터 3일간이 시작된 것이다.

もし、イエスと母親が一つになり、アロンのような存在がイエスを補佐し、人々がみ旨に従っていたならば、イエスの十字架路程は無くなり、サタンに対する対策を積極的に立てることができたのである。
만약 예수와 어머니가 하나가 되어 아론과 같은 존재가 예수를 보좌하여 사람들이 뜻을 따르고 있었으면 예수의 십자가 노정은 없어지고 사탄에 대한 대책을 적극적으로 세울 수 있었을 것이다.


イエスには、その対策を、どのようにしてでも立てなければならない責任があった。
예수에게는 그 대책을 어떻게 하더라도 세워야 하는 책임이 있었다.

そのため、死んでも、3日間を送ら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である。
그렇기 때문에 죽어도 3일간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12-18 堕落の根本的な責任は神様にある
12-18 타락의 근본적인 책임은 하나님께 있다

創世記6章6節に記されているように、神様は人を創造されたことを後悔された。
창세기 6장 6절에 적혀 있는 대로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셨다.

また、士師記2章18節には、神様が人を哀れに思われたという聖句がある。
또한 사사기 2장 18절에는 하나님이 사람을 불쌍히 여기셨다는 성구가 있다.

このように、神様が嘆かれたのは、人が神様ご自身の体となっているからである。
이와 같이 하나님이 한탄하신 것은 사람이 하나님 자신의 몸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つまり、人を失うということは、神様ご自身の体を失うも同然であった。
즉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몸을 잃는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それゆえ、神様は、洪水審判の後に嘆かれ、二度とこのような審判をしないと宣布されたのである。
그러므로 하나님은 홍수 심판 후에 한탄하시고 두 번 다시 이러한 심판을 안 한다고 선포하신 것이다.

しかし、人を堕落に導いたサタンは、神様が創造された存在から生まれたものである。
그러나 사람을 타락으로 인도한 사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존재로부터 생긴 것이다.

従って、堕落の根本的な責任は、創造主である神様にある。
따라서 타락의 근본적인 책임은 창조주인 하나님께 있다.

その次は、堕落を防ぐことのできなかったアダムに責任があり、その次は、サタンに誘惑されたエバに責任がある。
그 다음은 타락을 막을 수 없었던 아담에게 책임이 있고, 그 다음은 사탄에게 유혹된 해와에게 책임이 있다.

最高責任者である神様は、ノアを立て、根本から始められた。
최고책임자인 하나님은 노아를 세워서 근본으로부터 시작하셨다.

それは、アダムとエバを復帰するためである。
그것은 아담과 해와를 복귀하기 위해서다.

その基礎を固めるために、アブラハムとモーセを通して、摂理を展開されたのである。
그 기초를 다지기 위해서 아브라함과 모세를 통해서 섭리를 전개하신 것이다.


12-19 神様とイエスで責任を分担した
12-19 하나님과 예수가 책임을 분담했다

前述のように、この摂理は、第二アダムであるイエスの行くべき路程を示すものであった。
전술과 같이 이 섭리는 제2 아담인 예수가 가야 할 노정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従って、イエスは、神様が教示されたこの路程を手本として、サタンに勝利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である。
따라서 예수는 하나님이 교시하신 이 노정을 본보기로 삼고 사탄에게 승리해야 했던 것이다.

これに関連して、ヨハネによる福音書5章19節から20節には、次のように記されている。
이에 관련하여 요한복음 5장 19절부터 20절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さて、イエスは彼らに答えて言われた。「よくよくあなたがたに言っておく。子は父のなさることを見てする以外に、自分からは何事もすることができない。父のなさることであればすべて、子もそのとおりにするのである。なぜなら、父は子を愛して、みずからなさることは、すべて子にお示しになるからである。そして、それよりもなお大きなわざを、お示しになるであろう。あなたがたが、それによって不思議に思うためである。」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神様の責任分担摂理の場合と同様に、イエスも、サタンを完全に分立してこそ、路程を出発することができた。
하나님의 책임 분담 섭리의 경우와 같이 예수도 사탄을 완전히 분립해야 노정을 출발할 수 있었다.

そして、神様が、ご自身の責任分担としてモーセを立て、イスラエル民族を怨讐の懐から連れ出したように、イエスも、全ての人々をサタンから取り戻さ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의 책임 분담으로서 모세를 세워 이스라엘 민족을 원수의 품에서 나가게 하신 것과 같이 예수도 모든 사람들을 사탄으로부터 되찾아야 했다.

人の堕落によって、このように、神様とイエスが分担して責任を果たさざるを得なくなったということは、その事情を知る我々としては、心苦しいことである。
사람의 타락으로 인해 이와 같이 하나님과 예수가 분담하여 책임을 다할 수밖에 없어졌다는 것은 그 사정을 아는 우리로서는 마음이 괴로운 것이다.

以上のような原理(堕落原理と復帰原理)の全てが、サタンによって生じたということが理解できれば、そのサタンを総攻撃して、早急に人々を復帰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が分かるのである。
상술과 같은 원리(타락원리와 복귀원리)의 모두가 사탄으로 인해 생겼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으면 그 사탄을 총공격하여 재빠르게 사람들을 복귀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我々は、既に、人が堕落したという事実を知ったのであり、また、神様がどのような方であるのかを知ったのである。
우리는 이미 사람이 타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これから、み旨の道を出発するのであるが、我々は何をもって神様に報いるのか。
이제부터 뜻 길을 출발할 것인데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께 보답을 할 것인가?

それは、既に分かっているように、神様に仕えるということである。
그것은 이미 알고 있는 대로 하나님을 모신다는 것이다.


12-20 イスラエル民族は神様が父であることを知らなかった
12-20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아버지인 것을 몰랐다

神様が子を失ったのは、6千年前である。
하나님이 자녀를 잃은 것은 6천년 전이다.

神様は、その失った子を取り戻すために、6千年間休むことができなかった。
하나님은 그 잃어 버린 자녀를 되찾기 위해서 6천년간 쉬지 못 하셨다.

この事実を広く宣べ伝える者は、この世のどこにいるだろうか。
이 사실을 널리 전하는 자는 이 세상의 어디에 있을까?

神様が子を探し求めておられるその姿を知る者は、果たして何人いるだろうか。
하나님이 자녀를 찾고 계시는 그 모습을 아는 자는 과연 몇 명 있을까?

子が父である神様を知らないという現実を、神様は無念に思いながら、長く堪えてこられたのである。
자녀가 아버지인 하나님을 모른다는 현실을 하나님은 무념으로 생각하면서 오래 견뎌 오신 것이다.

このような神様の心情に同情する孝子が、世界のどこにいるだろうか。
이러한 하나님의 심정에 동정하는 효자가 세계의 어디에 있을까?

人々に、その心情を知らしめるため、儒教を通して、孝子の道、忠臣の道、師弟の道を、この世に伝えられたのであるが、今、人々が、それ自体をよく知らずにいるということは、実に嘆かわしいことである。
사람들에게 그 심정을 알리기 위해 유교를 통해서 효자(孝子)의 길, 충신(忠臣)의 길, 사제(師弟)의 길을 이 세상에 전하셨지만 지금의 사람들이 그 자체를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실로 한심스러운 일이다.

その道を知る者は、直接、父と向かい合い、孝子となることができ、たとえ父と距離を置いても、父を王として、或いは師として、教示を受けながら、それを理解することで、み旨を立てることができるのである。
그 길을 아는 자는 직접 아버지와 마주 보고 효자가 될 수 있고, 가령 아버지와 거리를 두어도 아버지를 왕으로서 혹은 스승으로서 교시를 받으면서 그것을 이해함으로써 뜻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イスラエル民族は、このような儒教の教えを知らなかったため、その教えのように、神様に仕え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이스라엘 민족은 이러한 유교의 가르침을 몰랐기 때문에 그 가르침처럼 하나님을 모실 수 없었다.

神様は、その教えを、最初の理想として教示しようとされたが、人が堕落したために、教示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のである。
하나님은 그 가르침을 최초의 이상으로서 교시하려고 하셨지만 사람이 타락했기 때문에 교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このように、イスラエル民族は、神様が父であることを知らず、また、神様を王としても、師としても、知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이와 같이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아버지인 것을 모르고, 또한 하나님을 왕으로서도 스승으로서도 알 수 없었다.

このような民族が、怨讐のもとで苦役を強いられていたことに対し、神様は、どれほど痛ましく思われていただろうか。
이러한 민족이 원수 밑에서 고역을 강요당하고 있었던 것에 대하여 하나님은 얼마나 애처롭게 생각하셨던 것일까?

それゆえ、神様は、その民族を取り戻して、ご自身の子女とするために、モーセを立て、パロと対立するようにされたのである。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민족을 되찾고 자신의 자녀로 하기 위해서 모세를 세워 바로와 대립하도록 하신 것이다.


12-21 神様はモーセを通してパロを屈服させた
12-21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바로를 굴복시켰다

モーセは、神様のみ言に従い、怨讐サタンの代弁人であるパロに向かっていった。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원수 사탄의 대변인인 바로를 향해 갔다.

それは、歴史的にとても大きな希望であった。
그것은 역사적으로 매우 큰 희망이었다.

モーセがパロの前で、三大奇跡と十災禍(じっさいか)を見せることによって、神様はパロを完全に屈服させようとされた。
모세가 바로 앞에서 3대 기적(三大奇蹟)과 10재앙(十災殃)을 보여 줌으로써 하나님은 바로를 완전히 굴복시키려고 하셨다.

そして、エジプトに(ひょう)を降らせた時、パロは、自分が罪を犯したことを認めた。(出エジプト記9章27節参照)
그리고 애굽에 우박을 내리게 했을 때, 바로는 자기가 죄를 범한 것을 인정했다. (출애굽기 9장 27절 참조)

しかし、パロは、雹がやむのを見て、また心をかたくなにし、イスラエル民族を解放しなかった。
그러나 바로는 우박이 그치는 것을 보고, 또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하지 않았다.

このように、神様がパロの心をかたくなにされた事には、どのような目的があったのか。
이와 같이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신 것에는 어떤 목적이 있었던 것인가?

(1) パロ(サタン)がイスラエル民族のことを二度と考えないようにするため
(1) 바로(사탄)가 이스라엘 민족을 두 번 다시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2) パロ(サタン)に力が無いことを認めさせ、神様に従わ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を自覚させるため
(2) 바로(사탄)에게 힘이 없다는 것을 인정시켜 하나님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자각시키기 위해서

(3) 怨讐の全てのものに害を与えるため
(3) 원수의 모든 것에 해를 주기 위해서

(4) 神様に反する者は滅びるということを自覚させるため
(4) 하나님께 반하는 자는 멸망한다는 것을 자각시키기 위해서

(5) 長子の血を受け継いだ者を討って、怨讐の血を滅ぼすため
(5) 장자의 피를 받은 자를 치고 원수의 피를 멸하기 위해서

では、神様は、パロの心をかたくなにすることによって、イスラエル民族に、何を悟らせようとされたのか。
그러면 하나님은 바로의 마음을 완고하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려고 하셨는가?

(1) パロ(サタン)に対して憎悪の念を抱くようにするため
(1) 바로(사탄)에 대하여 증오의 생각을 품도록 하기 위해서

(2) パロ側が神様の怨讐であることを知らしめるため
(2) 바로 측이 하나님의 원수인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3) 我々の側には、絶大な能力を持つ神様が共に居られるということを教えるため
(3) 우리 측에는 절대(絕大)한 능력을 가진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4) イスラエル民族のエジプトに対する未練を完全に断ち切るため
(4) 이스라엘 민족의 애굽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서

(5) イスラエル民族と情の通じるエジプト人が、一人もいなくなるようにするため
(5) 이스라엘 민족과 정이 통하는 애굽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6) 神様がパロを憎むほど、イスラエル民族の立場が高くなるようにするため
(6) 하나님이 바로를 증오할 만큼 이스라엘 민족의 입장이 높아지도록 하기 위해서

(7) 神様のみ旨に対して、一貫した行動をとるようにするため
(7)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일관된 행동을 취하도록 하기 위해서

(8) 神様はどのような難関でも打開するということを見せるため
(8) 하나님은 어떤 난관도 타개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9) 神様に対立し反対する者は、誰でも永遠の怨讐になるということを教えるため
(9) 하나님께 대립하여 반대하는 자는 누구나 영원한 원수가 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10) その後の路程における勝利的要素を育てるため
(10) 그 후의 노정에 있어서의 승리적 요소를 키우기 위해서

(11) 性急にならず、永遠に信じ、従順に従うようにするため
(11) 성급하게 하지 않고 영원히 믿고 순종하도록 하기 위해서

神様は、以上のような事をイスラエル民族に悟らせ、彼らをより連帯させたのである。
하나님은 상기와 같은 것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깨닫게 하여 그들을 보다 연대시킨 것이다.

パロとの決戦が終局を迎えるところで、神様がエジプトの長子を討ったのは、何を意味していたのか。
바로와의 결전이 종국을 맞이하면서 하나님이 애굽의 장자를 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長子というのは、サタンの血を先に受け継いだ立場である。
장자라는 것은 사탄의 피를 먼저 받은 입장이다.

そのため、サタン側であるエジプトの長子は、皆討たれたのである。
그러므로 사탄 측인 애굽의 장자는 모두 쳐진 것이다.

一方、イスラエル民族の長子を、羊の血によって代贖(だいしょく)したのは、この災いを避けるためであった。
한편 이스라엘 민족의 장자를 양의 피로 대속(代贖)한 것은 이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これには、どのような意味があったのか。
이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었는가?

イエスは、ヘビの血を受け継いだ民族を討つために来られた。
예수는 뱀의 피를 받은 민족을 치기 위해서 오셨다.

しかし、イエスに属する者は、代わりの血、即ち、イエスの生命を受けることによって、生き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ことを示されたのである。
그러나 예수에게 속하는 자는 대신의 피, 즉 예수의 생명을 받음으로써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最終的に、モーセは、パロを屈服させ、イスラエル民族は、希望のカナン福地へと出発することになった。
최종적으로 모세는 바로를 굴복시켜 이스라엘 민족은 희망의 가나안 복지(福地)로 출발하게 되었다.

この路程は、今日の信仰生活の路程を表すものであるということを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
이 노정은 오늘날의 신앙생활 노정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12-22 紅海の奇跡
12-22 홍해의 기적

イスラエル民族は、エジプト人の財物を奪い取り、それを持って、モーセを中心として出発した。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 사람들의 재물을 빼앗고 그것을 가지고 모세를 중심으로 하여 출발했다.

こうして、神様と共に生活する路程に入っていった。
이리하여 하나님과 함께 생활하는 노정에 들어갔다.

イスラエル民族を皆送り出してしまったパロは、あまりにも悔しく思い、戦車に乗って、イスラエル民族の後を追っていった。
이스라엘 민족을 모두 보내 버린 바로는 매우 분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전차(戰車)를 타고 이스라엘 민족의 뒤를 쫓아 갔다.

イスラエル民族は、後ろからエジプトの戦車が追ってくるのを見て騒ぎ出した。
이스라엘 민족은 뒤에서 애굽의 전차가 쫓아 오는 것을 보고 떠들기 시작했다.

前方は紅海でさえぎられていたのである。
전방은 홍해로 가로막혀 있었던 것이다.

なす術もなく死んでしまうのかと、皆が騒いでいた。
아무 방법도 없이 죽어 버릴 거라고 모두가 떠들고 있었다.

その時、神様はモーセに言われた。
그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あなたは杖を上げ、手を海の上にさし伸べてそれを分け、イスラエルの人々に海の中のかわいた地を行かせなさい。」(出エジプト記14章16節)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출애굽기 14장 16절)

モーセがそのようにすると、紅海が分かれ、陸地のように渡ることができた。
모세가 그렇게 했더니 홍해가 갈라지고 육지와 같이 건널 수 있었다.

これは、人々が、サタンの主管下から、イエスの懐に入ろうとするとき、サタンはパロのように、人々を追撃してくるということを表している。
이것은 사람들이 사탄의 주관 하에서 예수의 품에 들어가려고 할 때, 사탄은 바로와 같이 사람들을 추격해 온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しかし、イエスに従っていけば、モーセが杖で紅海を分けたように、イエスがこの世の苦海を分けられ、人々は生きることができるのである。
그러나 예수를 따라가면 모세가 지팡이로 홍해를 가른 것과 같이 예수가 이 세상의 고해(苦海)를 가르시고 사람들은 살 수 있는 것이다.

イスラエル民族が紅海を渡った後、神様は、マナとウズラと水を与えられ、彼らを空腹から救われた。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를 건넌 후, 하나님은 만나와 메추라기와 물을 주시고 그들을 공복으로부터 구하셨다.

これは、イエスが来られ、我々に生命蘇生要素を無条件に与えてくださるということを示されたのである。
이것은 예수가 오셔서 우리에게 생명 소생 요소를 무조건 주신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12-23 アマレクとの戦い
12-23 아말렉과의 싸움

路程の途中で、アマレク人が現れ、彼らから攻撃を受けた時、モーセは、ヨシュアに、アマレク人と戦うように命じた。
노정 도중에서 아말렉 사람들이 나타나서 그들로부터 공격을 당했을 때,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아말렉 사람들과 싸우도록 명했다.

そして、モーセは、神様の杖を持ち、丘の頂に立った。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섰다.

そこで、モーセが手を上げれば、イスラエル民族が優勢となり、手を下ろせば、アマレク人が優勢となった。
거기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 민족이 우세했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 사람들이 우세했다.

そのため、アロンとホルは、石を持ってきて、モーセを座らせ、日没までモーセの手を二人で両側から支えた。
그러므로 아론과 훌은 돌을 가져오고 모세를 앉히고 일몰까지 모세의 손을 둘이서 양쪽에서 떠받쳤다.

こうして、イスラエル民族は、アマレク人に勝ったのである。
이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아말렉 사람들에게 이긴 것이다.

その時、神様はモーセに言われた。
그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これを書物にしるして記念とし、それをヨシュアの耳に入れなさい。わたしは(あめ)が下からアマレクの記憶を完全に消し去るであろう。」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モーセは祭壇を築いて、その名を「主はわが旗」と呼んだ。
모세는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닛시(승리)'라고 칭했다.

そして、モーセは言った。
그리고 모세는 말했다.

「主の旗にむかって手を上げる、主は世々アマレクと戦われる。」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このように、神様は、イスラエル民族を無条件に保護されたのである。(出エジプト記17章8節から16節参照)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무조건 보호하신 것이다. (출애굽기 17장 8절부터 16절 참조)

この事は、我々がイエスから無条件に愛されているということを表している。
이것은 우리가 예수로부터 무조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イエスの生命を受けた者を、怨讐サタンと対立させ、再び怨讐と一つにならないようにするのである。
예수의 생명을 받은 자를 원수 사탄과 대립시켜 다시 원수와 하나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それゆえ、信仰の路程は、いつも平坦ではない。
그러므로 신앙의 노정은 언제나 평탄하지 않다.

一人で生き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保護される時期もあれば、怨讐に対して、勝利しなければならない時期もある。
혼자 살 수 있게 보호받는 시기도 있고, 원수에 대하여 승리해야 하는 시기도 있다.

では、モーセが手を上げていることには、どのような意味があったのか。
그러면 모세가 손을 들고 있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었는가?

それは、神様が共に居られるということを意味していた。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つまり、アロンとホルは、神様が共に居られるように協力したのである。
즉 아론과 훌은 하나님이 함께 계시도록 협조했던 것이다.

それゆえ、勝利するためには、モーセの手を支えたアロンとホルのような存在が必要である。
그러므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모세의 손을 떠받친 아론과 훌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

ヨシュアは、中心的な信仰者を表していたのであり、神様と共にあれば、アマレク人など問題ではないことを見せたのである。
여호수아는 중심적인 신앙자를 나타내고 있었고,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 아말렉 사람 따위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それは、我々のとるべき姿勢を示している。
그것은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를 보이고 있다.

モーセと杖は、神様を表し、石は、神様の宝座を表していた。
모세와 지팡이는 하나님을 나타내고, 돌은 하나님의 보좌(寶座)를 나타내고 있었다.

また、アロンとホルは、イエスとエバ(聖霊)を表していた。
또한 아론과 훌은 예수와 해와(성령)를 나타내고 있었다.

つまり、後にイエスに仕え、聖霊を迎え、神様を尊ぶ者になってこそ、勝利するということを見せたのである。
즉 나중에 예수를 모시고 성령을 맞이하고 하나님을 존중하는 자가 되어야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そして、モーセが、「主は世々アマレクと戦われる」と言ったのは、アロンとホルが石を積み、モーセを座らせたからである。
그리고 모세가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라고 한 것은 아론과 훌이 돌을 쌓고 모세를 앉혔기 때문이다.

これは、アロンとホルが信仰を立てなければならない立場でありながら、難しいという個人的な考えを持っていては、み旨が成就する時まで、サタンと敵対し続けるということである。
이것은 아론과 훌이 신앙을 세워야 하는 입장이면서 어렵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는 뜻이 성취될 때까지 사탄과 계속 적대한다는 것이다.

つまり、聖徒は、サタンと向き合うことになるため、神様に属する立場を確固たるものにしなければならず、また、アマレク人のような怨讐と最後まで戦って、勝利しなければならない。
즉 성도는 사탄과 마주 대하게 되므로 하나님께 속하는 입장을 확고히 해야 하고, 또한 아말렉 사람과 같은 원수와 끝까지 싸우고 승리해야 한다.

このように、聖徒とサタンを戦わせる理由は、聖徒がサタンを主管することのできる資格者とならなければならないからである。
이와 같이 성도와 사탄을 싸우게 하는 이유는 성도가 사탄을 주관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12-24 神様が望まれるのは祭司の国と聖なる民
12-24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다

イスラエル民族は、シナイの荒野に入り、シナイ山の前で宿営することになった。
이스라엘 민족은 시내 광야에 들어가고 시내산 앞에서 숙영하게 되었다.

そこで、モーセが山に登ると、神様は次の事をイスラエル民族に告げるように言われた。
거기서 모세가 산에 올라갔더니 하나님은 다음 내용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알리라고 하셨다.

「もしあなたがたが、まことにわたしの声に聞き従い、わたしの契約を守るならば、あなたがたはすべての民にまさって、わたしの宝となるであろう。全地はわたしの所有だからである。あなたがたはわたしに対して祭司の国となり、また聖なる民となるであろう。」(出エジプト記19章5節から6節)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출애굽기 19장 5절부터 6절)

これは、イスラエル民族が、み旨に従うならば、イエスが来られて大祭司長となり、全世界を統治されるということを、神様が約束されたのである。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뜻을 따르면 예수가 오셔서 대제사장이 되어 전세계를 통치하신다는 것을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다.

これが、神様の理想であった。
이것이 하나님의 이상이었다.

サタンは、神様の愛を受けていたイスラエル民族の後を追って、荒野にまで付いて行き、不信仰な者、不従順な者を探し出そうとしていたのである。
사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의 뒤를 쫓아 광야까지 따라가서 불신앙한 자, 불순종한 자를 찾아내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そのような事を知らないイスラエル民族は、不信仰と不従順がもたらす結果を、切実には捉えていなかった。
그러한 것을 모르는 이스라엘 민족은 불신앙과 불순종이 초래하는 결과를 절실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12-25 石板と幕屋の意味
12-25 석판(石板)과 성막(聖幕)의 의미

出エジプト記24章15節から18節には、次のように記されている。
출애굽기 24장 15절부터 18절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こうしてモーセは山に登ったが、雲は山をおおっていた。主の栄光がシナイ(ざん)の上にとどまり、雲は6日のあいだ、山をおおっていたが、7日目に主は雲の中からモーセを呼ばれた。主の栄光は山の頂で、燃える火のようにイスラエルの人々の目に見えたが、モーセは雲の中にはいって、山に登った。そしてモーセは40日40夜、山にいた。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육일 동안 산을 가리더니 제 칠일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사십일 사십야를 산에 있으니라"

そこで、神様が、幕屋(移動式の神殿)の作り方について語り終えられた時、モーセに十戒(じっかい)の石板を授けられたのである。
거기서 하나님이 성막(이동식 성전)을 만드는 방법에 관한 말씀을 다 하시고 모세에게 십계의 석판을 주신 것이다.

この期間は、イスラエル民族にとって、最も重要な期間でありながら、最も退屈な期間でもあったが、モーセが山から下りてくれば、幕屋は、すぐに作り始められるはずであった。
이 기간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간이면서 가장 지루한 기간이기도 했지만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면 성막은 곧 만들기 시작될 것이었다.

神様がモーセに教示された幕屋は、次のようなものであった。
하나님이 모세에게 교시하신 성막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幕屋には、至聖所(しせいじょ)と聖所がある。
성막에는 지성소(至聖所)와 성소(聖所)가 있다.

即ち、至聖所の手前に聖所があり、それらは区別されている。
즉 지성소 앞에 성소가 있고 그것들은 구별되어 있다.

至聖所には契約の箱があり、その上には二つのケルビムがあり、その間には贖罪所(しょくざいしょ)がある。
지성소에는 법궤(法櫃)가 있고 그 위에는 두 그룹이 있고 그 사이에는 속죄소가 있다.

この幕屋の構造は、イエスを表している。
이 성막의 구조는 예수를 나타내고 있다.

つまり、至聖所は天の世界を象徴するもので、イエスの中に神様が居られるということを表し、聖所は地上世界を象徴するもので、イエスの肉身を表している。
즉 지성소는 하늘의 세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예수 속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나타내고, 성소는 지상 세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예수의 육신을 나타내고 있다.

これは、イエスご自身が、完成した天と地を表す存在で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を示しているのである。
이것은 예수 자신이 완성된 하늘과 땅을 나타내는 존재이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では、至聖所にある契約の箱、その上にある二つのケルビム、その間にある贖罪所は、それぞれ何を表していたのか。
그러면 지성소에 있는 법궤, 그 위에 있는 두 그룹, 그 사이에 있는 속죄소는 각각 무엇을 나타내고 있었는가?

契約の箱には、十戒の刻まれた石板が収められていた。
법궤에는 십계가 새겨진 석판이 넣어져 있었다.

それは、人の堕落によって失われたみ言である。
그것은 사람의 타락으로 인해 잃어 버린 말씀이다.

つまり、み言の理想実体である神様の体、即ち、アダムとエバが堕落したということを表していたと同時に、二人の代わりにイエスと聖霊が来られるということを表していたのである。
다시 말하면 뜻의 이상 실체인 하나님의 몸, 즉 아담과 해와가 타락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고, 그 동시에 두 사람 대신에 예수와 성령이 오신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アダムとエバが堕落した後、神様は二人をエデンの園から追放され、ケルビムと、回る炎のつるぎとを置いて、命の木の道を守らせられた。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후, 하나님은 두 사람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시고,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다.

しかし、イエスが来られたことによって、命の木の道が取り戻され、命の木の実を得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のである。
그러나 예수가 오셨음으로써 생명나무의 길을 되찾아 생명과(生命果)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神様がケルビムの間、即ち、贖罪所に顕現されるというのは、贖罪したところに神様が居られ、ケルビムの間を通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されるということであった。
하나님이 그룹 사이, 즉 속죄소에 나타나신다는 것은 속죄한 곳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룹 사이를 통과할 수 있게 하신다는 것이었다.

神様は、イエスと聖霊を通して、人の罪を贖われた後、人の心に居られようとされた。
하나님은 예수와 성령을 통해서 사람을 속죄하신 후, 사람 마음에 계시려고 하셨다.

イエスは、この基盤を固めるために来られたのであり、聖所のようなイエスに抱かれるならば、その人も神様に仕え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されたのである。
예수는 이 기반을 다지기 위해 오셨고, 성소와 같은 예수 품에 안기게 되면 그 사람도 하나님을 모실 수 있게 하신 것이다.

ヨハネによる福音書2章21節には、「イエスは自分のからだである神殿のことを言われたのである」と記されている。
요한복음 2장 21절에는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라고 적혀 있다.

このように、幕屋(移動式の神殿)は、イエスを象徴していたため、イエスが来られてからは、幕屋が不必要になった。
이와 같이 성막(이동식 성전)은 예수를 상징하고 있었으므로 예수가 오시고 나서는 성막이 불필요해졌다.

つまり、旧約時代の幕屋の理想が完成したのである。
즉 구약 시대의 성막의 이상이 완성된 것이다.

イエスが、ご自身を神殿に例えられた意義はここにある。
예수가 자신을 성전에 비유하신 의의는 여기에 있다.

イエスによって、ケルビムでさえぎられていた命の木の道が開かれたため、イエスを信じる者たちが、アマレクのような怨讐に勝利すれば、イエスと一つになり、命の木の実を得ることによって、第二の神殿(イエス)になることができるのである。
그룹으로 가로막혀 있었던 생명나무의 길이 예수에 의해 열렸으므로 예수를 믿는 자들이 아말렉과 같은 원수에게 승리하면 예수와 하나가 되어 생명과(生命果)를 받음으로써 제2의 성전(예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これが、神様が人々に望まれている最高の目的である。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원하시는 최고의 목적이다.

この目的のために、イスラエル民族がアマレクに勝利した後で、幕屋が作られたということを、よく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
이 목적을 위해 이스라엘 민족이 아말렉에게 승리한 후에 성막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つまり、誰もが、神様と直接向かい合い、一体になれるという基本原理を立てようとされたのである。
즉 누구든지 하나님과 직접 마주 보고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기본원리를 세우려고 하신 것이다.

それゆえ、人は、どれ程貴く、希望的な存在であろうか。
그러므로 사람은 얼마나 귀하고 희망적인 존재인가.

このような幕屋を作るために、モーセは山の頂で40日40夜を過ごしたのであり、そこから、神様は、人々と父子の関係を取り戻すためのみ旨を始められたのである。
이러한 성막을 만들기 위해 모세는 산꼭대기에서 40일 40야를 보낸 것이고, 거기서부터 하나님은 사람들과 부자(父子)의 관계를 되찾기 위한 뜻을 시작하신 것이다.

しかし、そのような中で、イスラエル民族は、アロンに金の子牛、即ち、偶像を作らせ、それを拝んでいた。
그러나 그러한 기간에 이스라엘 민족은 아론에게 금송아지, 즉 우상을 만들게 하여 그것을 숭배하고 있었다.

つまり、この時、イスラエル民族は、サタン側の基盤を立てる行動をとっていたのである。
다시 말하면 이때 이스라엘 민족은 사탄 측의 기반을 세우는 행동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神様は、それに激怒され、モーセに言われた。
하나님은 그것에 격노하시고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急いで(くだ)りなさい。あなたがエジプトの国から導きのぼったあなたの民は悪いことをした。」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さらにモーセに言われた。
모세에게 더 말씀하셨다.

「わたしの怒りは彼らにむかって燃え、彼らを滅ぼしつくすであろう。しかし、わたしはあなたを大いなる国民とするであろう。」(出エジプト記32章7節から10節参照)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출애굽기 32장 7절부터 10절 참조)

モーセは、神様をなだめて山を下ったが、イスラエル民族が偶像を自分たちの神として拝み、歌い踊っているのを見て、今度はモーセ自身が激怒し、手に持っていた2枚の石板を投げて壊してしまった。
모세는 하나님을 달래서 산을 내려갔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우상을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섬기고 노래를 부르며 춤추고 있는 것을 보고 이번에는 모세 자신이 격노하여 손에 들고 있던 두 장의 석판을 던져서 깨 버렸다.

この行動は、サタンにとっては喜ばしいことであったが、神様にとっては非常に重大なことであった。
이 행동은 사탄에게 있어서는 기쁜 일이었지만 하나님께 있어서는 대단히 중대한 일이었다.

何故なら、その2枚の石板は、神様の体、即ち、アダムとエバを表していたからである。
왜냐하면 그 두 장의 석판은 하나님의 몸, 즉 아담과 해와를 나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モーセは、神様が言われた通り、2枚の石板を作り、また山に登った。
모세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두 장의 석판을 만들고 또 다시 산에 올랐다.

そして、神様と共に過ごしながら、40日40夜断食し、神様のみ言を石板に記録した。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보내면서 40일 40야 단식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석판에 기록했다.

すると、モーセの顔は、光を放つようになった。(出エジプト記34章参照)
그러자 모세의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게 되었다. (출애굽기 34장 참조)

こうして、モーセは、再びみ意に従うことになったのである。
이리하여 모세는 다시 뜻을 따르게 된 것이다.

しかし、サタンは、イスラエル民族に不信仰が見られたら、再び侵入しようと、その機会をうかがっていた。
그러나 사탄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불신앙이 보여지면 다시 들어가려고 그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イスラエル民族は、そのような事を知らずにいたのである。
이스라엘 민족은 그러한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12-26 メリバの水の出来事
12-26 므리바 물 사건

イスラエル民族は、カデシに留まった。
이스라엘 민족은 가데스에 머물렀다.

そこで、飲む水がないと言って、モーセに反抗し、エジプトから出てきたことを嘆いていた。
거기서 마시는 물이 없다고 모세에게 반항하고 애굽에서 나온 것을 한탄하고 있었다.

その後の出来事は、民数記20章6節から13節に、次のように記されている。
그 후의 사건은 민수기 20장 6절부터 13절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そこでモーセとアロンは会衆の前を去り、会見の幕屋の入口へ行ってひれ伏した。すると主の栄光が彼らに現れ、主はモーセに言われた。「あなたは、つえをとり、あなたの兄弟アロンと共に会衆を集め、その目の前で岩に命じて水を出させなさい。こうしてあなたは彼らのために岩から水を出して、会衆とその家畜に飲ませなさい。」モーセは命じられたように主の前にあるつえを取った。モーセはアロンと共に会衆を岩の前に集めて彼らに言った。「そむく人たちよ、聞きなさい。われわれがあなたがたのためにこの岩から水を出さ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ろうか。」モーセは手をあげ、つえで岩を二度打つと、水がたくさんわき出たので、会衆とその家畜はともに飲んだ。そのとき主はモーセとアロンに言われた。「あなたがたはわたしを信じないで、イスラエルの人々の前にわたしの聖なることを現さなかったから、この会衆をわたしが彼らに与えた地に導き入れることができないであろう。」これがメリバの水であって、イスラエルの人々はここで主と争ったが、主は自分の聖なることを彼らのうちに現された。
"모세와 아론이 총회 앞을 떠나 회막 문에 이르러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며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울찌니라 모세가 그 명대로 여호와의 앞에서 지팡이를 취하니라 모세와 아론이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このように、メリバの水の出来事は、神様を信じ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ために起こったのである。
이와 같이 므리바 물 사건은 하나님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この事によって、モーセとアロンも、カナンの地に入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이 일로 인해 모세와 아론도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었다.

神様は、岩を一度打つことは許されたが、二度打つことは許されなかった。
하나님은 반석을 한 번 치는 것은 용서하셨지만 두 번 치는 것은 용서하지 않으셨다.

では、岩を打つことには、どのような意味があったのか。
그러면 반석을 치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었는가?

岩は、神様の体を表していた。
반석은 하나님의 몸을 나타내고 있었다.

コリント人への第一の手紙10章4節には、「この岩はキリストにほかならない」と記されている。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는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라고 적혀 있다.

これを見ても、岩は神様の体であり、キリストを意味していたことが分かる。
이것을 보아도 반석은 하나님의 몸이며 크리스트를 의미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ところで、岩を一度打つことを許されたのは、アダムが堕落したことを表すためであった。
그런데 반석을 한 번 치는 것을 용서하신 것은 아담이 타락한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しかし、意外にも、二度打ってしまった。
그러나 뜻밖에 두 번 쳐 버렸다.

それは、サタンが、第二アダムであるイエスまでも打つということを表す行動となった。
그것은 사탄이 제2 아담인 예수까지도 친다는 것을 나타내는 행동이 되었다.

このように、さらにもう一度、岩を打ったのは、モーセが行なったことではあるが、サタンが打ったことと同じ結果になってしまったのである。
이와 같이 한 번 더 반석을 친 것은 모세가 행한 것이지만 사탄이 친 것과 같은 결과가 되어 버린 것이다.

つまり、初めの2枚の石板は、アダムとエバを表し、後の2枚の石板は、イエスと聖霊を表していたため、岩を二度打つという行動は、後の石板を壊すという行動と同様であった。
즉 처음의 두 장의 석판은 아담과 해와를 나타내고, 그 후의 두 장의 석판은 예수와 성령을 나타내고 있었으므로 반석을 두 번 치는 행동은 후의 석판을 깨는 행동과 마찬가지였다.

また、岩は石板のもとであるため、より根本的な神様の体を表していた。
또한 반석은 석판의 근원이므로 보다 근본적인 하나님의 몸을 나타내고 있었다.

それゆえ、さらにもう一度打ったということは、後に来られるイエスを打つ行動となっただけではなく、根本である神様をも打つ行動となり、これが、サタンが勝利することのできる基盤となったのである。
그러므로 한 번 더 쳤다는 것은 나중에 오시는 예수를 치는 행동이 된 뿐만 아니라 근본인 하나님도 치는 행동이 되어 이것이 사탄이 승리할 수 있는 기반이 된 것이다.

このように、モーセとイスラエル民族が、不信仰と不従順によって、神様に対して罪を犯してしまったため、サタンは、イスラエル民族に侵入することのできる基盤を固め、イエスを十字架にかけ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のである。
이와 같이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이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에 대하여 죄를 범해 버렸기 때문에 사탄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들어갈 수 있는 기반을 다지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게 된 것이다.


12-27 青銅のヘビ
12-27 놋뱀

こうして、サタンは、イスラエル民族に侵入し始めたのである。
이리하여 사탄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イスラエル民族がヘビに噛まれたことは、それを表していた。
이스라엘 민족이 뱀에 물린 것은 그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モーセは、青銅のヘビを作って旗ざおの上につけ、それを仰いで見る者は、ヘビに噛まれても治るようにした。
모세는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아 그것을 쳐다보는 자는 뱀에 물려도 낫도록 했다.

このように、イスラエル民族にサタンが侵入したのは、不信仰と不従順の結果であった。
이와 같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사탄이 들어간 것은 불신앙과 불순종의 결과였다.

それゆえ、イエスは、自分の話を受け入れない者に対して、次のように言われたのである。
그러므로 예수는 자신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ちょうどモーセが荒野(あらの)でヘビを上げたように、人の子もまた上げられなければならない。それは彼を信じる者が、すべて永遠の命を得るためである。」(ヨハネによる福音書3章14節から15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장 14절부터 15절)

カナンの地は、信じて従順に従う者だけが、受け継ぐことができたのである。
가나안 땅은 믿고 순종하게 따르는 자 만이 계승할 수 있었던 것이다.

その時、不信仰、不従順であった者たちは、サタン側となり、カナンの地に入ることができず、皆、荒野で死んでしまった。
그때 불신앙, 불순종했던 자들은 사탄 측이 되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고 모두 광야에서 죽어 버렸다.

このように、不信仰な者、不従順な者は、理想の天国には行けないのである。
이와 같이 불신앙한 자, 불순종한 자는 이상의 천국에는 갈 수 없는 것이다.

乳と蜜が流れているというカナンの地は、我々が理想とする天国、即ち、幸福と愛の国を表している。
젖과 꿀이 흐르고 있다는 가나안 땅은 우리가 이상으로 하는 천국, 즉 행복과 사랑의 나라를 나타내고 있다.


12-28 モーセの代わりにヨシュアがみ旨を立てた
12-28 모세 대신에 여호수아가 뜻을 세웠다

結局、モーセは、岩を二度打って失敗したため、カナンに入ることができずに死んでしまった。
결국 모세는 반석을 두 번 쳐서 실패했기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이 죽어 버렸다.

それは、イエスも、同様の結果になるということを表していたのである。
그것은 예수도 같은 결과가 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イスラエル民族がカナンの地に入り、その地を受け継ぐためには、カナンの諸民族を制圧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が、そのみ旨を、モーセの代わりに、ヨシュアが立てることになった。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계승하기 위해서는 가나안의 제민족(諸民族)을 제압해야 되었지만 그 뜻을 모세 대신에 여호수아가 세우게 되었다.

ヨシュアは、神様から見れば、イエスを象徴していたのであり、また、モーセから見れば、第二のモーセとして、み旨を成就した者でもあった。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예수를 상징하고 있었고, 또한 모세가 보기에는 제2의 모세로서 뜻을 성취한 자이기도 했다.


12-29 イスラエルの三大王によって摂理の全てが表されていた
12-29 이스라엘 3대왕에 의해 섭리의 모두가 나타내지고 있었다

以上のことは、神様の責任分担摂理であり、イエスが来られてから勝利するための基礎であった。
상술한 것은 하나님의 책임 분담 섭리며 예수가 오시고 나서 승리하기 위한 기초였다.

つまり、イエスがこの世に来られても、天国を建設する中においては、怨讐との戦いがあり、それに勝利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즉 예수가 이 세상에 오셔도 천국을 건설하는 가운데 있어서는 원수와의 싸움이 있고 그것에 승리해야 했다.

そのため、ヨシュア以後に士師たちを立て、摂理をされたのである。
그러므로 여호수아 이후에 사사(士師)들을 세워 섭리를 하신 것이다.

士師の後には、王を立てられた。
사사 후에는 왕을 세우셨다.

王によって、摂理を進めることができるからである。
왕에 의해 섭리를 진행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このように、イエスが来られる前から、イエスを王にするための基礎工作があったのである。
이와 같이 예수가 오시기 전부터 예수를 왕으로 하기 위한 기초 공작이 있었던 것이다.

イスラエル王国の最初の王は、サウルであった。
이스라엘 왕국 최초의 왕은 사울이었다.

しかし、サウルは、アダムを表していたため、アダムが失敗したように、サウルも失敗したのである。
그러나 사울은 아담을 나타내고 있었기 때문에 아담이 실패한 것과 같이 사울도 실패한 것이다.

次の王であるダビデは、神様の権勢を表し、その子ソロモンは、栄光の王として神殿を完成させた。
다음 왕인 다윗은 하나님의 권세를 나타내고, 그 아들인 솔로몬은 영광의 왕으로서 성전을 완성시켰다.

これは、イエスが来られて、み旨を成就し、権勢と栄光をもって、本来のみ意である神殿の理想が展開されることを示されたのである。
이것은 예수가 오셔서 뜻을 성취하여 권세와 영광을 가지고 본래의 뜻인 성전의 이상이 전개되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従って、イエスには、この目的を果たさなければならない使命があった。
따라서 예수에게는 이 목적을 다해야 하는 사명이 있었다.

つまり、イエスは、栄光の王として現れることのできる基盤の上で、権勢を表す王としてサタンに勝利し、全ての人々を神様の子女として、また、神様の民族として、復帰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즉 예수는 영광의 왕으로서 나타날 수 있는 기반 위에서 권세를 나타내는 왕으로서 사탄에게 승리하고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로서, 또한 하나님의 민족으로서 복귀해야 했다.

しかし、神様の責任分担摂理にサタンが侵入し、イスラエル民族がイエスを信じず、従順ではなかったため、イエスは十字架へと向かうことになったのである。
그러나 하나님의 책임 분담 섭리에 사탄이 들어가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를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는 십자가로 향하게 된 것이다.

このように、イエスは、天では栄光の存在であったが、地では目的を完全には果たすことができなかったため、再臨するということが、聖書で述べられているのである。(ヨハネの黙示録22章、使徒行伝1章11節参照)
이와 같이 예수는 하늘에서는 영광의 존재였지만 땅에서는 목적을 완전히는 다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재림한다는 것이 성경에 기술되어 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2장, 사도행전 1장 11절 참조)

それでも、イエスは、霊的な基盤を世界に拡大して、堕落した人々を取り戻し、本来の位置にまで霊的に引き上げ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그래도 예수는 영적인 기반을 세계에 확대하고 타락한 사람들을 되찾고 본래의 위치까지 영적으로 끌어 올려야 했다.

そのため、聖霊と一つになって、その使命を果たされ、再臨の時には、実体をもって、目的を完全に果たすことができるよう、基盤を立てられたのである。
그러므로 성령과 하나가 되어 그 사명을 다하시고 재림의 때에는 실체를 가지고 목적을 완전히 다할 수 있도록 기반을 세우신 것이다.

つまり、先に霊として目的を果たしたのであるが、次は肉身として目的を果たさなければならない。
즉 먼저 영으로서 목적을 다했지만 다음은 육신으로서 목적을 다해야 한다.

従って、イエスは、肉身をもって再臨されるのである。
따라서 예수는 육신으로 재림하시는 것이다.

こうして、サタンから権勢を取り戻し、栄光を享受してこそ、目的を果たすことができる。
이리하여 사탄으로부터 권세를 되찾고 영광을 누려야 목적을 다할 수 있다.

これを世界的に成就させることが、神様のみ旨であり、理想なのである。
이것을 세계적으로 성취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이상이다.

それゆえ、イエスを中心とする国家が、世界で権勢を振るい、サタン側に勝利すれば、栄光の王である再臨主が、人として現れるのである。
그러므로 예수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가 세계에서 권세를 발휘하여 사탄 측에 승리하면 영광의 왕인 재림주가 사람으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ところで、既に、イエスを中心とする国家は、サタン側に対して、世界的な大勝利を収めている。
그런데 이미 예수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는 사탄 측에 대하여 세계적인 대승리를 거두고 있다.

それが、世界大戦である。
그것이 세계 대전이다.

つまり、再臨主は、遠くない将来に現れる。
즉 재림주는 멀지 않는 장래에 나타난다.

そして、イエスの目的を完全に果たすのである。
그리고 예수의 목적을 완전히 다하는 것이다.

このように、サウル王は堕落したアダム、ダビデ王はイエス、ソロモン王は再臨主を表す存在となった。
이와 같이 사울 왕은 타락한 아담, 다윗 왕은 예수, 솔로몬 왕은 재림주를 나타내는 존재가 되었다.

つまり、旧約のイスラエルの三大王によって、神様の摂理が全て表されていたのである。
즉 구약의 이스라엘 3대왕에 의해 하나님의 섭리가 모두 나타내지고 있었던 것이다.


12-30 神殿のみ旨の目的はイエス
12-30 성전의 뜻의 목적은 예수였다

神様の責任分担摂理は、第一段階であった。
하나님의 책임 분담 섭리는 제1단계였다.

これによって、神様が顕現されることのできる神殿を建設するという目的は達成された。
이것으로 하나님이 뚜렷이 나타나실 수 있는 성전을 건설한다는 목적은 달성되었다.

しかし、イスラエル民族が、神殿と一つになる必要があった。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성전과 하나가 될 필요가 있었다.

それは、神殿のきまり、即ち、神様が要求される全てのきまりを、イスラエル民族の生活の基本、財産権の基本、国家を成すための基本、理想を完成させるための基本とするためであった。
그것은 성전의 규칙, 즉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모든 규칙을 이스라엘 민족의 생활의 기본, 재산권의 기본, 국가를 이루기 위한 기본, 이상을 완성시키기 위한 기본으로 하기 위해서였다.

ソロモン王以降、イスラエル民族には、このような重要な使命があった。
솔로몬 왕 이후,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이러한 중요한 사명이 있었다.

旧約時代に、その使命が果たされてこそ、イスラエル民族は、神殿として来られるイエスと一つになり、み言を遂行しながら、各自が第二の神殿(イエス)として、神様のみ旨を継承することのできる基盤を固められるようになっていたのである。
구약 시대에 그 사명이 달성되어야 이스라엘 민족은 성전으로서 오시는 예수와 하나가 되어 뜻을 수행하면서 각자가 제2의 성전(예수)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계승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질 수 있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一方、サタンは、如何なる手段を使ってでも、神様の責任分担摂理を破壊しようとしていたため、様々な方法で、不信仰と不従順の種を探し出して、イスラエル民族に侵入しようとしていた。
한편 사탄은 어떤 수단을 써도 하나님의 책임 분담 섭리를 파괴하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가지 방법으로 불신앙과 불순종의 씨를 찾아내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들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そのため、神様は、怨讐サタンに仕えようとする民がいれば、罰してでも悟らせるようにしながら、できる限りの事をして、イスラエル民族を保護してこられたのである。
그러므로 하나님은 원수 사탄을 섬기려고 하는 백성이 있으면 처벌해서라도 깨닫게 하도록 하면서 가진 수단을 다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보호해 오신 것이다.

しかし、そのような神様の心情を知り、切なく思う者は、次第に、その痕跡さえも探し出すことが難しくなってきた。
그러나 그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안타깝게 생각하는 자는 점차 그 뿌리조차도 찾아내기가 어려워졌다.

それまでに、神殿を汚す行動が、何度あっただろうか。
그 동안 성전을 더럽히는 행동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その神殿は、神様のために建てられたのであり、神様は、その神殿によって、み旨成就の基盤が完成したことを示し、み旨を始められたのである。
그 성전은 하나님을 위해 세워진 것이고, 하나님은 그 성전에 의해 뜻 성취의 기반이 완성된 것을 나타내고 뜻을 시작하신 것이다.

しかし、サタンは、気勢をあげて堂々と、神様のみ旨を破壊していった。
그러나 사탄은 기세당당(氣勢堂堂)하게 하나님의 뜻을 파괴해 왔다.

そのような中でも、神様は、イスラエル民族を放棄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그러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포기할 수 없었다.

何故なら、放棄すれば、サタンは勝ち、神様が負けるという、非原理的な結末を迎えることになるからである。
왜냐하면 포기하면 사탄은 이기고 하나님이 패배한다는 비원리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되기 때문이다.

そのようになれば、この天宙の全てが、死の苦しみを覚えることになり、神様は、それを防ぐことができなくなるのである。
그렇게 되면 이 천주(天宙)의 모두가 죽음의 괴로움에 잠기게 될 것이고, 하나님은 그것을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다.

従って、どのようにしてでも、み旨を成就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따라서 어떻게 하더라도 뜻을 성취해야 했다.

それが、神様の責任であるため、神様は、預言者たちを立て、民族が連帯して、み旨を果たすことができるよう、神殿のみ旨を維持してこられたのである。
그것이 하나님의 책임이므로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세워서 민족이 연대하여 뜻을 다할 수 있도록 성전의 뜻을 유지해 오신 것이다.

そのみ旨の目的は、イエスであった。
그 뜻의 목적은 예수였다.

その次は、イスラエル民族が、イエスと一つになることによって、第二のイエスのような存在を繁殖させることが目的であった。
그 다음은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와 하나가 됨으로써 제2의 예수와 같은 존재를 번식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その基盤ができるかどうかは、イスラエル民族の行動にかかっていた。
그 기반이 될지 어떨지는 이스라엘 민족의 행동에 걸려 있었다.

そのような状況の中で、神様は、どれほどもどかしい心情であっただろうか。
그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얼마나 안타까운 심정이었을까?

それゆえ、神様は、神殿を守らせ、活動を継続させながら、メシアを送って、み旨を成就させるという最高の目的を、預言者を通してイスラエル民族に伝え、神様のみ旨を信奉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刺激されたのである。
그러므로 하나님은 성전을 지키게 하여 활동을 계속 시키면서 메시아를 보내고 뜻을 성취시킨다는 최고의 목적을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전하고 하나님의 뜻을 신봉할 수 있게 자극하신 것이다.

このようにして、イスラエル民族に希望を持たせようとされたが、イスラエル民族が積極的にみ旨を支えることができず、メシアを送る時期が千年以上も延長されたのである。
이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희망을 갖게 하려고 하셨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적극적으로 뜻을 받칠 수 없어서 메시아를 보내는 시기가 천년이상 연장된 것이다.

イスラエル民族は、メシアを送るという約束を期待していたが、忍耐することを知らず、また、神様のみ旨を実践することも忘れ、自分の望みだけを考えていた。
이스라엘 민족은 메시아를 보낸다는 약속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인내하는 것을 모르고, 또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도 잊고 자신의 희망 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それ自体が、堕落の血を受け継いだ反逆の民族だと言わざるを得ない。
그 자체가 타락의 피를 받은 반역의 민족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しかし、神様は忍耐され、メシアを送る前に、まず、メシアのみ旨を全て信奉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その準備をするためのエリヤを送ると約束し、彼らに希望を与えられたのである。
그러나 하나님은 인내하시고 메시아를 보내기 전에 우선 메시아의 뜻을 모두 신봉할 수 있게 그 준비를 하기 위한 엘리야를 보낸다고 약속하여 그들에게 희망을 주신 것이다.

こうして、イスラエル民族は、メシアの降臨だけが望みとなった。
이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메시아의 강림 만이 희망이 되었다.

それゆえ、神殿を中心として、メシアを迎える準備をしながら、降臨を待っていたのである。
그러므로 성전을 중심으로 하여 메시아를 맞이하는 준비를 하면서 강림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神様が、イスラエル民族と一つになり、み旨成就の基盤を築いて、メシアをこの世に送り、彼らの望みを叶えたならば、これは、神様ご自身にとっても、目的を果たすことができるという希望になったのである。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가 되어 뜻 성취의 기반을 쌓고 메시아를 이 세상에 보내고 그들의 희망을 이루어 주면 이것은 하나님 자신에게 있어서도 목적을 다할 수 있다는 희망이 되었을 것이다.

それゆえ、神様がメシアを送られたならば、イスラエル民族は、メシアを自分の生命のように貴く思い、メシアの身辺を警護しながら、神殿の理想を実践すべき立場に立っていた。
그러므로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셨으면 이스라엘 민족은 메시아를 자기의 생명과 같이 귀하게 생각하고 메시아의 신변을 경호하면서 성전의 이상을 실천해야 할 입장에 서 있었을 것이다.

しかし、このみ旨を知る者は、何人いただろうか。
그러나 이 뜻을 아는 자는 몇 명 있었을까?

神様は希望を持って、神様の責任分担摂理の基盤の上に、メシアであるイエスを送られた。
하나님은 희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책임 분담 섭리의 기반 위에 메시아인 예수를 보내셨다.

イエスは、神様の責任分担摂理期間を終わらせ、次の摂理の責任を負うために来られたのである。
예수는 하나님의 책임 분담 섭리 기간을 끝내고 다음 섭리의 책임을 지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イエスは、第二アダムである。
예수는 제2 아담이다.

コリント人への第一の手紙15章45節には、「聖書に『最初の人アダムは生きたものとなった』と書いてあるとおりである。しかし最後のアダムは命を与える霊となった」と記されており、また、ローマ人への手紙5章14節には、「アダムは、きたるべき者の型である」と記されている。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는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적혀 있고, 또한 로마서 5장 14절에는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라고 적혀 있다.

これらの聖句を見ても、イエスが第二アダムであるということが分かる。
이러한 성구를 보아도 예수가 제2 아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アダムとエバが堕落したため、原理通りに、第二アダムであるイエスと、エバの聖霊が責任を果たしてこそ、神様のみ旨を成就することができるのである。
아담과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에 원리대로 제2 아담인 예수와 해와의 성령이 책임을 다해야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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