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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イエスの責任分担摂理期間
13 예수의 책임 분담 섭리 기간

13-1 地上に来られたイエスの存在価値
13-1 지상에 오신 예수의 존재 가치

13-2 神様はイエスを通して全てを統合しようとされた
13-2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서 모든 것을 통합하려고 하셨다

13-3 神様がエリヤを送られた目的
13-3 하나님이 엘리야를 보내신 목적

13-4 イスラエル民族はメシアよりもエリヤを待ち望んでいた
13-4 이스라엘 민족은 메시아보다도 엘리야를 고대하고 있었다

13-5 当時イエスはメシアだと思われていなかった
13-5 당시 예수는 메시아라고 생각되어 있지 않았다

13-6 洗礼ヨハネはエリヤとして送られた
13-6 세례 요한은 엘리야로서 보내졌다

13-7 洗礼ヨハネはイエスをメシアだと認め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13-7 세례 요한은 예수를 메시아로서 인정할 수 없었다

13-8 洗礼ヨハネの失敗によってイエスは荒野路程へ
13-8 세례 요한의 실패로 인해 예수는 광야 노정으로 가게 되었다

13-9 洗礼ヨハネはイエスを人間的に見ていた
13-9 세례 요한은 예수를 인간적으로 보고 있었다

13-10 洗礼ヨハネの失敗は聖書に示されている
13-10 세례 요한의 실패는 성경에 나와 있다

13-11 イエスの先祖となった女性たち
13-11 예수의 조상이 된 여성들

13-12 イエスの母マリアはみ旨に従うことができなかった
13-12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뜻을 따를 수 없었다

13-13 イエスの荒野40日路程と三大試練の意義
13-13 예수의 광야 40일 노정과 3대 시련의 의의

13-14 イエスは弟子を通して割礼の条件を立てようとされた
13-14 예수는 제자를 통해서 할례의 조건을 세우려고 하셨다

13-15 イスカリオテのユダの裏切り
13-15 가룟 유다의 배신

13-16 律法学者やパリサイ人たちに対する七つのわざわいのみ言
13-16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대한 일곱 가지 화(禍)의 말씀

13-17 十字架以降の路程
13-17 십자가 이후의 노정

13-18 イエスと聖霊のはたらき
13-18 예수와 성령의 역할

13-19 イエスの死と復活の意義
13-19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의의

13-20 イエスが信義の信仰を立てられた意義
13-20 예수가 신의(信義)의 신앙을 세우신 의의

13-21 十字架による勝利の意義と信仰者の路程
13-21 십자가에 의한 승리의 의의와 신앙자의 노정

13-22 誰よりもイエスを愛さなければならない
13-22 누구보다도 예수를 사랑해야 한다

13-23 イエスの地獄伝道の意義
13-23 예수의 지옥 전도(傳道)의 의의

13-24 イエスの使命は人々を堕落前の段階に引き上げること
13-24 예수의 사명은 사람들을 타락 전의 단계까지 끌어 올리는 것이다

13-25 義人たちの血が悪の血を清めてきた
13-25 의인들의 피가 악의 피를 맑게 해 왔다

13-26 子羊の婚宴
13-26 어린 양의 혼인 잔치

13-27 準備された者は再臨主を迎えなければならない
13-27 준비된 자는 재림주를 맞이해야 한다


13-1 地上に来られたイエスの存在価値
13-1 지상에 오신 예수의 존재 가치

旧約時代は、神殿を建てるための路程であり、行義(ぎょうぎ)(律法に従うこと)を中心としていた。
구약 시대는 성전을 세우기 위한 노정이며 행의(行義:율법을 따르는 것)를 중심으로 하고 있었다.

もし、そこから脱線すれば不義となり、それは死亡すること(神様から離れること)を意味していた。
만약 거기서 탈선하면 불의(不義)가 되지만 그것은 사망하는 것(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この旧約時代の目的は、イエスの降臨であり、その後の摂理もイエスが中心であった。
이 구약 시대의 목적은 예수의 강림이며 그 후의 섭리도 예수가 중심이었다.

イエスの存在価値は、神殿とイスラエル民族を合わせた価値よりも高かった。
예수의 존재 가치는 성전과 이스라엘 민족을 합친 가치보다도 높았다.

何故なら、イエスは、4千年の歴史を通した摂理の結実そのものであり、また、神様が創造された全ての存在を合わせた価値を持っていたのであり、さらに、神様の全ての目的を取り戻すことのできる価値を持っていたからである。
왜냐하면 예수는 4천년의 역사를 통한 섭리의 결실 그 자체며, 또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존재를 합친 가치를 가지고 있었고, 게다가 하나님의 모든 목적을 되찾을 수 있는 가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それゆえ、イエスは、神様にとって、何よりも貴い存在であった。
그러므로 예수는 하나님께 있어서 무엇 보다도 귀한 존재였다.

イエスによって、神様のみ旨が成就していくということは、説明するまでもない。
예수에 의해 하나님의 뜻이 성취해 간다는 것은 설명할 것도 없다.

このような、中心的な存在が、地上のイエスであった。
이러한 중심적인 존재가 지상의 예수였다.

天宙の中心であるイエスが地上に来られたのは、地上でアダムとエバが堕落したため、その地上を復帰して、神様の創造理想を原理通りに完成させる条件を立てるためである。
천주(天宙)의 중심인 예수가 지상에 오신 것은 지상에서 아담과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에 그 지상을 복귀하고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원리대로 완성시키는 조건을 세우기 위해서다.

従って、地が無ければ、天は完成しないのであり、地上でのみ旨が成就してこそ、神様のみ旨が完全に成就するのである。
따라서 땅이 없으면 하늘은 완성되지 않고 지상에서의 뜻이 성취되어야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성취되는 것이다.

このように、天と地は、一つの体のような関係になっているため、それらを切り離して考えることはできない。
이와 같이 하늘과 땅은 하나의 몸과 같은 관계가 되어 있으므로 그것들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


13-2 神様はイエスを通して全てを統合しようとされた
13-2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서 모든 것을 통합하려고 하셨다

イスラエル民族が、み旨を信奉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神様は、彼らを直接導き、育成してこられた。
이스라엘 민족이 뜻을 신봉할 수 있게 하나님은 그들을 직접 인도하고 육성해 오셨다.

さらに、世界の人々も、み旨を信奉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歴史的な聖人たちを通して、東西洋の摂理を展開し、それらを統合するための工作をされた。
더 나아가 세계의 사람들도 뜻을 신봉할 수 있게 역사적인 성인(聖人)들을 통해서 동서양의 섭리를 전개하고 그것들을 통합하기 위한 공작을 하셨다.

このような使命を持った代表的な人物が、孔子や釈迦であった。
이러한 사명을 가진 대표적인 인물이 공자(孔子)나 석가(釋迦)였다.

また、哲学者ソクラテスなどが、善を基準として教示していたことにも、み旨を中心とする意義があったのである。
또한 철학자 소크라테스 등이 선(善)을 기준으로서 교시하고 있었던 것에도 뜻을 중심으로 하는 의의가 있었던 것이다.

また、どのような宗教でも、善なる神様を基準としているのは、神様の摂理の目的が根本となっているからである。
또한 어떤 종교라도 선한 하나님을 기준으로 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의 목적이 근본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こうして、神様のみ旨が成就すれば、各宗教の教えも統合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
이리하여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면 각 종교의 가르침도 통합되어야 한다.

イエスは、神様の理想を全て実現させることのできる存在であった。
예수는 하나님의 이상을 모두 실현시킬 수 있는 존재였다.

つまり、イエスがみ旨を成就すれば、全天宙が動き、宗教、経済、科学は、神様の理想を中心とするようになっていた。
즉 예수가 뜻을 성취하면 전천주(全天宙)가 움직이고 종교, 경제, 과학은 하나님의 이상을 중심으로 하게 되어 있었다.

神様は、このような目的で、イエスを送られたのであり、また、イエスを通して、全てを統合しようとされたのである。
하나님은 이러한 목적으로 예수를 보내신 것이고, 또한 예수를 통해서 모든 것을 통합하려고 하신 것이다.

このような重大な使命を持ったイエスが来られたため、福音が全天宙に伝えられたのである。
이러한 중대한 사명을 가진 예수가 오셨으므로 복음이 전천주(全天宙)에 전해진 것이다.


13-3 神様がエリヤを送られた目的
13-3 하나님이 엘리야를 보내신 목적

神様は、イエスを送る前に、エリヤを送ると言われた。
하나님은 예수를 보내기 전에 엘리야를 보낸다고 하셨다.

それは、イエスをサタンから守るためであり、イエスがイスラエル民族から大歓迎を受けるようにするためであり、イエスの栄光が彼らの誇りとなるようにするためであった。
그것은 예수를 사탄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며 예수가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 대환영을 받게 하기 위해서며 예수의 영광이 그들의 자랑이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また、イスラエル民族には、イエスを信じ、仕え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使命があったため、それを果たすための条件を整えておくために、エリヤが必要だったのである。
또한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예수를 믿고 모셔야 한다는 사명이 있었으므로 그것을 다하기 위한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 엘리야가 필요했던 것이다.

天では、イエスによって、み旨が成就されることを望んでいた。
하늘에서는 예수에 의해 뜻이 성취되는 것을 바라고 있었다.

イエスだけが、全ての生命の根本であり、全てを開放することのできる存在であった。
예수 만이 모든 생명의 근본이며 모두를 개방할 수 있는 존재였다.

また、イエスは、サタンを中心とする非原理世界を、神様を中心とする原理世界に変える使命があった。
또한 예수는 사탄을 중심으로 하는 비원리 세계를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원리 세계로 바꾸는 사명이 있었다.

それを果たすためには、イエスが来られる前に、イスラエル民族が、来たるべきエリヤと心を合わせて、一つになら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그것을 다하기 위해서는 예수가 오시기 전에 이스라엘 민족이 앞으로 와야 할 엘리야와 마음을 합쳐서 하나가 되어야 했다.


13-4 イスラエル民族はメシアよりもエリヤを待ち望んでいた
13-4 이스라엘 민족은 메시아보다도 엘리야를 고대하고 있었다

イスラエル民族には、メシアが来られる前に、エリヤが来ると伝えられていたため、当時、彼らが待ち望んでいた存在は、メシアよりも、むしろエリヤであった。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온다고 전해져 있었기 때문에 당시 그들이 고대하고 있었던 존재는 메시아보다도 오히려 엘리야였다.

エリヤは、その当時、イスラエル民族に良く知られていたが、既に昇天した人物であった。
엘리야는 그 당시 이스라엘 민족에게 잘 알려져 있었지만 이미 승천한 인물이었다.

しかし、エリヤは間違いなく来ると信じていたため、昇天したエリヤが、いつ天から降りてくるのかと、天に向かって待ち望むようになった。
그러나 엘리야는 틀림 없이 온다고 믿고 있었으므로 승천한 엘리야가 언제 하늘에서 내려오느냐고 하늘을 향해 고대하게 되었다.

ところで、今でもエリヤが天から降りてくると待ち望んでいる者は、イエスをメシアだと認めていないユダヤ教の信者などである。
그런데 아직도 엘리야가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고대하고 있는 자는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의 신자 등이다.

イエスがメシアとして来られたということは、今では確固たる事実として世界的に知られている。
예수가 메시아로서 오셨다는 것은 이미 확고한 사실로서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13-5 当時イエスはメシアだと思われていなかった
13-5 당시 예수는 메시아라고 생각되어 있지 않았다

律法学者やパリサイ人たちは、「イエスがメシアなら、何故エリヤは来ていないのか。エリヤが来たのなら、何処に来たのか」と考えていた。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메시아라면 왜 엘리야는 안 왔는가? 엘리야가 왔다면 어디에 왔는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つまり、イエスはメシアだと思われていなかったのである。
즉 예수는 메시아라고 생각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それは、自分たちが歴史的に待ち望んでいた事と符合していなかったからである。
그것은 자기들이 역사적으로 고대하고 있었던 것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そのような事を表している内容が、聖書の中に多く見られる。
그러한 것을 나타내고 있는 내용이 성경 속에 많이 보여진다.

当時は、イエスを信じることが本当に難しかったのである。
당시는 예수를 믿는 것이 정말로 어려웠던 것이다.

メシアだと言っているその存在は、彼らがよく知っているヨセフの子であり、それまで、大工として知られていたのである。(マルコによる福音書6章3節参照)
메시아라고 하는 그 존재는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요셉의 아들이며 그때까지 목수로서 알려져 있었다. (마가복음 6장 3절 참조)

彼らは、このような内幕をよく知っていたのであり、イエスの生活を見ても、自分たちと何ら変わるところが無かった。
그들은 이러한 내막을 잘 알고 있었고 예수의 생활을 보아도 자기들과 아무런 차이도 없었다.

そのようなイエスが、どうして自分たちの待ち望んでいた存在なのか。
그러한 예수가 어째서 자기들이 고대하고 있었던 존재인가?

どう考えても、それとは遠い存在に見えたのである。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과는 먼 존재로 보인 것이다.

彼らが望んでいたメシアは、千年以上も待ち望んだ希望の存在であった。
그들이 바라고 있었던 메시아는 천년 이상도 고대했던 희망의 존재였다.

それがイエスだとは思ってもいなかった。
그 존재가 예수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それゆえ、イスラエル民族には、イエスが非常に難儀な存在に見えたのである。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예수가 번거로운 존재로 보인 것이다.

メシアはベツレヘムで生まれると思われていたため、自分たちのメシアが来られたと聞けば、当分の食べ物や衣服などを準備してベツレヘムに向かい、何か新しい知らせはないかと尋ねたであろう。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고 생각되어 있었으므로 자기들의 메시아가 오셨다고 들으면 당분간의 음식물이나 의복 등을 준비해서 베들레헴을 향하고 무엇인가 새로운 소식이 없는지 물었을 것이다.

もし、そのように待ち望んでいた者がいたならば、人々はメシアの誕生を知ったであろう。
만약 그렇게 고대했던 자가 있었으면 사람들은 메시아의 탄생을 알았을 것이다.

しかし、そのような者さえもいなかったのである。
그러나 그러한 자 마저도 없었던 것이다.

彼らは自分たちのためにメシアを待ち望んでいたのであり、メシアの力によって、より豊かになることを期待していた。
그들은 자기들을 위해서 메시아를 고대했던 것이고 메시아의 힘에 의해 보다 풍부해지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各自が自分の理想とするメシアを待ち望んでいた時に、イエスという存在が現れた。
각자가 자기의 이상으로 하는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었을 때에 예수라는 존재가 나타났다.

たとえ、イエスが、自分がメシアだと宣言しても、それは彼らの理屈に合わないことであり、あまりにも腹立たしいことであった。
가령 예수가 자신이 메시아라고 선언해도 그것은 그들의 이치에 안 맞는 것이며 너무나 화나게 하는 것이었다.

イエスは、肉身をもって来られたため、自分たちと同じような生活をしていたのであり、また、公生涯においても変らない様子であったため、彼らがイエスに対して疑いを持ったのは、仕方のないことであった。
예수는 육신으로 오셨으므로 자기들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고, 또한 공생애(公生涯)에 있어서도 변하지 않는 모습이었으므로 그들이 예수에 대하여 의혹을 가진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このようなイエスに対して、さらに疑いを深めた問題は、エリヤが現れていないということであった。
이러한 예수에 대하여 더욱 의혹을 깊게 한 문제는 엘리야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もし、エリヤが来ていれば、つじつまが合っていたのであるが、エリヤが来る前に、メシアが来られたのである。
만약 엘리야가 와 있었으면 앞뒤가 맞았을 것이지만 엘리야가 오기 전에 메시아가 오신 것이다.

これをどうして受け入れることができただろうか。
이것을 어째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13-6 洗礼ヨハネはエリヤとして送られた
13-6 세례 요한은 엘리야로서 보내졌다

今、我々は、逆の立場で考えてみる必要がある。
지금 우리는 반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それは、以前から、イスラエル民族を悪く言っていたからである。
그것은 이전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나쁘게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今では、イエスが万民の救い主、メシアであり、イスラエル民族が待ち望んでいた存在であったことは、歴史的にも認識されている。
이제는 예수가 만민의 구세주, 메시아며 이스라엘 민족이 고대하고 있었던 존재인 것은 역사적으로도 인식되어 있다.

それゆえ、この世の信徒たちは、イエスがメシアであり、預言された方であることを知っている。
그러므로 이 세상의 신도들은 예수가 메시아며 예언되어 있었던 분인 것을 알고 있다.

また、聖書を見れば、洗礼ヨハネがエリヤであったと知ることもできる。
또한 성경을 보면 세례 요한이 엘리야였다는 것을 알 수도 있다.

マタイによる福音書11章14節には、「もしあなたがたが受けいれることを望めば、この人こそは、きたるべきエリヤなのである」と記されている。
마태복음 11장 14절에는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찐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라고 적혀 있다.

イエスは、洗礼ヨハネのことを、このように語られたのである。
예수는 세례 요한을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しかし、今の信徒たちが、当時のイスラエル民族の立場であれば、イエスをメシアだと信じる者が、はたして何人いるだろうか。
그러나 지금의 신도들이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의 입장이면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자가 과연 몇 명 있을까?

今の信徒たちの多くは、パリサイ人の信仰にも及ばないのである。
지금의 신도들의 대부분은 바리새인의 신앙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これは、懸念すべき重大な問題である。
이것은 우려해야 할 중대한 문제다.

では、神様の摂理において、洗礼ヨハネをエリヤとして送られたことには、どのような意味があるのか。
그러면 하나님의 섭리에 있어서 세례 요한을 엘리야로서 보내신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これを明らか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が、それができない今の神学界が、神様の摂理を信奉することができるだろうか。
이것을 밝혀야 하지만 그것을 못하는 지금의 신학계가 하나님의 섭리를 신봉할 수 있을까?

今は、終末だといわれている。
지금은 종말이라고 말해지고 있다.

この時に、聖書の知られざる事実が明らかにされてこそ、聖書はその目的を終え、再臨主を迎え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るのである。
이때에 성경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 밝혀져야 성경은 그 목적을 끝내고 재림주를 맞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それでは、その重大な事実を明らかにしよう。
그러면 그 중대한 사실을 밝히자.

神様が、み旨を成就されようとするときに、何が一番問題になるのかと言えば、神様の他にサタンが存在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ある。
하나님이 뜻을 성취하려고 할 때에 무엇이 가장 문제가 되느냐고 하면 하나님 이외에 사탄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このサタンが、今まで敵として現れ、神様のみ旨を破壊してきたのである。
이 사탄이 지금까지 적으로서 나타나고 하나님의 뜻을 파괴해 온 것이다.

もし、サタンがいなければ、み旨を成就することは困難ではなかった。
가령 사탄이 없으면 뜻을 성취하는 것은 어렵지는 않았다.

サタンは、人々を自分の所有圏内から逃さないようにするため、執拗に神様のみ旨を妨害してきた。
사탄은 사람들을 자기의 소유 권내에서 놓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집요하게 하나님의 뜻을 방해해 왔다.

それによって、神様のみ旨成就は、歴史的に延長を重ねてきたのである。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 성취는 역사적으로 연장을 거듭해 온 것이다.

従って、神様は、サタンを全面的に屈服させ、み旨を妨害できないように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따라서 하나님은 사탄을 전면적으로 굴복시켜 뜻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しかし、そのためには、イエスを送る前に、イエスの路程にサタンが現れないようにするための工作が必要であった。
그러나 그것을 위해서는 예수를 보내기 전에 예수의 노정에 사탄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공작이 필요했다.

その工作の責任者として送られたのが、エリヤであった。
그 공작의 책임자로서 보내진 존재가 엘리야였다.

エリヤは、よく知られているように、神様の前で、一人でサタン側の大勢の預言者と戦った最も勝勢のある者であった。
엘리야는 잘 알려진 대로 하나님 앞에서 혼자 사탄 측의 많은 선지자들과 싸운 가장 승세를 타는 자였다.

当時、エリヤの目的は、サタン側の存在を全滅させ、サタンに神様のみ旨を妨害させないようにすることであった。
당시 엘리야의 목적은 사탄 측의 존재를 전멸시켜 사탄이 하나님의 뜻을 방해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そのために、エリヤは、サタン側であるバアルの預言者450人とアシラの預言者400人を滅ぼしたのである。
그러므로 엘리야는 사탄 측인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을 멸한 것이다.

このように、エリヤは、み旨成就の路程において、サタンに対抗することのできる重要な存在であった。
이와 같이 엘리야는 뜻 성취의 노정에 있어서 사탄에게 대항할 수 있는 중요한 존재였다.

しかし、その当時、エリヤは、サタンに対する目的を完全に果たすことができなかった。
그러나 그 당시 엘리야는 사탄에 대한 목적을 완전히는 다할 수 없었다.

何故なら、再びサタンが侵入したからである。
왜냐하면 다시 사탄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そのため、イエスにまでサタンが侵入する心配があった。
그렇기 때문에 예수에게까지 사탄이 들어가는 우려가 있었다.

それゆえ、神様は、イエスを送る前に、サタンの痕跡を残さないよう、エリヤの目的を完全に果たすための代理人として、洗礼ヨハネを送られた。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를 보내기 전에 사탄의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엘리야의 목적을 완전히 다하기 위한 대리인으로서 세례 요한을 보내셨다.

これが、洗礼ヨハネがエリヤであるという意味である。
이것이 세례 요한이 엘리야이라는 의미다.

このように、洗礼ヨハネは、エリヤの目的を果たすべき使命を持っていた。
이와 같이 세례 요한은 엘리야의 목적을 다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洗礼ヨハネが、その使命を果たせば、神様のみ旨は完全に成就し、み旨の路程からサタンを消すことができたのである。
세례 요한이 그 사명을 다하면 하나님의 뜻은 완전히 성취되어 뜻의 노정으로부터 사탄을 없앨 수 있었을 것이다.

マラキ書4章5節から6節には、エリヤについて、次のように記されている。
말라기 4장 5절부터 6절에는 엘리야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主の大いなる恐るべき日が来る前に、わたしは預言者エリヤをあなたがたにつかわす。彼は父の心をその子供たちに向けさせ、子供たちの心をその父に向けさせる。これはわたしが来て、のろいをもってこの国を撃つことのないようにするためである。」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また、ルカによる福音書1章16節から17節には、洗礼ヨハネについて、次のように記されている。
또한 누가복음 1장 16절부터 17절에는 세례 요한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イスラエルの多くの子らを、主なる彼らの神に立ち帰らせるであろう。彼はエリヤの霊と力とをもって、みまえに先立って行き、父の心を子に向けさせ、逆らう者に義人の思いを持たせて、整えられた民を主に備えるであろう。」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これらの聖句から分かるように、イエスは父の立場、イスラエル民族は子の立場であった。
이러한 성구로부터 알 수 있듯이 예수는 아버지의 입장, 이스라엘 민족은 자녀의 입장이었다.

従って、エリヤとして送られた洗礼ヨハネは、イスラエル民族に、イエスが父であることを伝えて、み旨を成就させるための基盤を固め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である。
따라서 엘리야로서 보내진 세례 요한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예수가 아버지인 것을 전하고 뜻을 성취시키기 위한 기반을 다져야 했던 것이다.

それゆえ、洗礼ヨハネは、外的にはサタンに備えながら、内的にはイスラエル民族に子としての道理、即ち、父に仕えることを教え、イスラエル民族が父から愛されるように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외적으로는 사탄에 대비하면서, 내적으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자녀로서의 도리, 즉 아버지를 모시는 것을 가르치고 이스라엘 민족이 아버지로부터 사랑받도록 해야 했다.

つまり、洗礼ヨハネの使命は、メシアを迎えるための準備をすることであった。
즉 세례 요한의 사명은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彼の荒野生活の全ての目的が、その使命を果たすことによって、完成するようになっていたのである。
그의 광야 생활의 모든 목적이 그 사명을 다함으로써 완성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13-7 洗礼ヨハネはイエスをメシアだと認め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13-7 세례 요한은 예수를 메시아로서 인정할 수 없었다

洗礼ヨハネは、イエスより6ヶ月前に、ザカリアの家庭で生まれた。
세례 요한은 예수보다 6개월 전에 사가랴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彼は、神様に期待されていた存在であったため、サタンが最も嫌う存在であった。
그는 하나님이 기대하고 있던 존재였으므로 사탄이 가장 싫어하는 존재였다.

また、その時代の代表的な人物であり、彼の30余年の生涯の全ては、メシア一人のためにあったのである。
또한 그 시대의 대표적인 인물이며 그의 30여년의 모든 생애는 메시아 한 사람을 위해 있었던 것이다.

それゆえ、洗礼ヨハネは、メシアを迎える日の喜びと栄光を待ち望んでいた。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메시아를 맞이하는 날의 기쁨과 영광을 고대하고 있었다.

マタイによる福音書3章11節を見ると、洗礼ヨハネは、メシアについて、次のように証言していた。
마태복음 3장 11절을 보면 세례 요한은 메시아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었다.

「わたしは悔い改めのために、水でおまえたちにバプテスマを授けている。しかし、わたしのあとから来る人はわたしよりも力のあるかたで、わたしはそのくつをぬがせてあげる値うちもない。このかたは、聖霊と火とによっておまえたちにバプテスマをお授けになるであろう。」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このように、大衆の前で、自分とメシアに格段の違いがあることを告白したのである。
이와 같이 대중 앞에서 자기와 메시아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을 고백한 것이다.

当時、洗礼(バプテスマ)は、イスラエル民族にとって、新しい儀式ではあったが、彼らが洗礼ヨハネを天が送ってくださった預言者だと信じていたため、洗礼ヨハネから洗礼を受けていたのである。
당시 세례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새로운 의식이었지만 그들이 세례 요한을 하늘이 보내 주신 선지자라고 믿고 있었으므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洗礼ヨハネが、ヨルダン川で洗礼を与えていた時に、ちょうどイエスが、ガリラヤからヨルダン川に着き、洗礼ヨハネから洗礼を受けようとしていた。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을 때에 마침 예수가 갈릴리에서 요단강에 도착하고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려고 하고 있었다.

しかし、洗礼ヨハネは、それを断ろうとして、「わたしこそあなたからバプテスマを受けるはずですのに、あなたがわたしのところにおいでになるのですか」と言った。
그러나 세례 요한은 그것을 거절하려고 하여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라고 했다.

するとイエスは、「今は受けさせてもらいたい。このように、すべての正しいことを成就するのは、われわれにふさわしいことである」と言われたため、洗礼ヨハネは、イエスに洗礼を与えたのである。(マタイによる福音書3章14節から15節参照)
그러자 예수는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세례 요한은 예수에게 세례를 준 것이다. (마태복음 3장 14절부터 15절 참조)

つまり、洗礼ヨハネがイエスに洗礼を与えたのは、自分の思いからではなく、イエスの望みを受け入れたからである。
즉 세례 요한이 예수에게 세례를 준 것은 자기의 생각에서가 아니고 예수의 희망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その洗礼は、み旨を成就することのできる資格を、イエスに与えるための儀式であった。
그 세례는 뜻을 성취할 수 있는 자격을 예수에게 주기 위한 의식이었다.

こうして、洗礼を受けたイエスが、水から上がってこられると、天が(ひら)け、神様の霊がハトのように降りて、イエスの上に臨在された。
이리하여 세례를 받은 예수가 물에서 올라오셨더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영이 비둘기 같이 내려 예수 위에 임하셨다.

そして、天から声が聞こえた。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다.

「これはわたしの愛する子、わたしの心にかなう者である。」(マタイによる福音書3章17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마태복음 3장 17절)

この時、人々が皆、その声を聞いたかどうかは分からないが、洗礼ヨハネは、その声を聞いて、イエスが神様のみ意にかなった存在であることを知ったのである。
이때 사람들 모두가 그 소리를 들었는지 어떤지 모르지만 세례 요한은 그 소리를 듣고 예수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존재인 것을 알게 된 것이다.

洗礼ヨハネが、その声の意味を理解して、それをイスラエル民族に伝えていれば、み旨を成就することができたのである。
세례 요한이 그 소리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것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알리고 있었으면 뜻을 성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しかし、神様は、イエスがメシアであるということまでは明確に教示されなかった。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가 메시아라는 것까지는 명확히 교시하지 않으셨다.

つまり、洗礼ヨハネは、それを自分で悟ら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である。
즉 세례 요한은 그것을 스스로 깨달아야 했던 것이다.

もし、その時、イエスがメシアであると分かったならば、洗礼ヨハネにとって、それ以上の喜びは無く、大衆に対して、「イエスは神様が送って下さると言われたメシアである」と積極的に宣布し、自ら代表的な立場に立って、イエスを支援すべきであった。
만약 그때 예수가 메시아라고 알았으면 세례 요한에게 있어서 그 이상의 기쁨은 없었고 대중에 대하여 "예수는 하나님이 보내주신다고 하신 메시아다"라고 적극적으로 선포하고 스스로 대표적인 입장에 서서 예수를 지원해야 했다.

洗礼ヨハネは、大衆に大きな影響を与えることのできる立場だったのである。
세례 요한은 대중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結局、洗礼ヨハネは、イエスがメシアであると大衆の前で宣布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결국 세례 요한은 예수가 메시아라고 대중 앞에서 선포할 수 없었다.

そして、それまで通りに、自分の始めた洗礼を大衆に与えていたのである。
그리고 그때까지 하던 대로 자기가 시작한 세례를 대중에게 주고 있었던 것이다.

それゆえ、大衆は、イエスをメシアだと見ていたのではなく、洗礼ヨハネの知り合い程度に見ていたのである。
그러므로 대중은 예수를 메시아로서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세례 요한이 아는 사람 정도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洗礼ヨハネに与えられた歴史的な使命とは、ただ洗礼を与えることだったのか。
세례 요한에게 주어진 역사적인 사명이라는 것은 단지 세례를 주는 것이었는가?

それは、あまりにも価値の無い行動であった。
그것은 너무나 가치가 없는 행동이었다.

メシアを迎えるべき存在が、ただ好き勝手に、四方をまわりながら、洗礼だけを与えていたことに対して、我々は嘆かわしく思わざるを得ないのである。
메시아를 맞이해야 할 존재가 단지 멋대로 사방을 돌면서 세례 만을 주고 있었던 것에 대하여 우리는 한심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洗礼ヨハネは、自分がエリヤの代わりであることを知っていたのであろうか。
세례 요한은 자기가 엘리야의 대신인 것을 알고 있었는가?

ヨハネによる福音書1章21節を見ると、「あなたはエリヤですか」という質問に対して、洗礼ヨハネは、「いや、そうではない」と答えていた。
요한복음 1장 21절을 보면 "네가 엘리야냐"라는 질문에 대하여 세례 요한은 "나는 아니라"라고 대답하고 있었다.

このように、自分の使命を明確には理解していなかったのである。
이와 같이 자기의 사명을 명확히는 이해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彼自身が、それを理解していたならば、大衆の前で自分の立場を明確にし、イスラエル民族が抱いていたメシアに関する疑問を解いていたはずである。
그 자신이 그것을 이해하고 있었으면 대중 앞에서 자기의 입장을 명확히 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안고 있던 메시아에 관한 의문을 풀고 있었을 것이다.

そして、エリヤとしての責任を果たすために努力し、イエスに仕える中心的な存在となり、イエスの全ての使命に協力する者として、イエスから最も愛される弟子になることもできたのである。
그리고 엘리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예수를 모시는 중심적인 존재가 되고 예수의 모든 사명에 협조하는 자로서 예수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제자가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これより大きな目的が、他にあっただろうか。
이것보다 큰 목적이 따로 있었는가?

それにもかかわらず、洗礼ヨハネは、イエスと別々に行動し、神様に対して重大な責任を果たすことができなかったのである。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 요한은 예수와 따로따로 행동하고 하나님에 대하여 중대한 책임을 다할 수 없었던 것이다.

マタイによる福音書11章3節に記されているように、獄中にいた洗礼ヨハネが、弟子たちをイエスのところに送り、「きたるべきかたはあなたなのですか。それとも、ほかにだれかを待つべきでしょうか」と尋ねさせたということは、洗礼ヨハネ自身も、イエスがメシアであるかどうかという問題を解決できていなかったということである。
마태복음 11장 3절에 적혀 있는 대로 옥중에 있던 세례 요한이 제자들을 예수에게 보내고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이를 기다리오리이까"라고 묻게 했다는 것은 세례 요한 자신도 예수가 메시아인가 어떤가 하는 문제를 해결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このように、み旨を信奉(しんぽう)すべき者でさえ、イエスをメシアと認め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이와 같이 뜻을 신봉해야 하는 자마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할 수 없었다.

この状況で、イエスに、期待と希望はあっただろうか。
이 상황에서 예수에게 기대와 희망이 있었는가?

果たして、痛恨の思いを抱かずにいられただろうか。
과연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고 있을 수 있었는가?

そして、このようなイエスの心情を知る者がいただろうか。
그리고 이러한 예수의 심정을 아는 자가 있었는가?

こうして、洗礼ヨハネは、神様とイエスに対し、大きな罪を犯してしまった。
이리하여 세례 요한은 하나님과 예수에 대하여 큰 죄를 범해 버렸다.

私は、現在のキリスト教会に、それを知る者がいないということに憤慨しているのである。
나는 현재의 기독교회에 그것을 아는 자가 없다는 것에 분개하고 있는 것이다.


13-8 洗礼ヨハネの失敗によってイエスは荒野路程へ
13-8 세례 요한의 실패로 인해 예수는 광야 노정으로 가게 되었다

洗礼ヨハネを貴い人物として讃えることは、許されるべきことではない。
세례 요한을 귀한 인물로서 찬양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自分の責任を果たさず、自分の思いのままに行動した洗礼ヨハネは、神様にとって、貴い人物ではなかったことを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
자기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자기의 생각대로 행동한 세례 요한은 하나님께 있어서 귀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イエスの為に来た者が、その使命から離れて行動したのである。
예수를 위해서 온 자가 그 사명에서 벗어나서 행동한 것이다.

その本人である洗礼ヨハネはもちろん、彼に従う者までが、神様に憎まれる者となった。
그 본인인 세례 요한은 물론 그를 따르는 자까지가 하나님께 미움받는 자가 되었다.

神様としては、彼らを最後まで善と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하나님으로서는 그들을 끝까지 선(善)으로 삼을 수 없었다.

以上のような事が原因となって、イエスは、荒野生活という苦難の路程を断行せざるを得なくなったのである。
상기와 같은 것이 원인이 되어 예수는 광야 생활이라는 고난의 노정을 단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荒野までイエスに仕えた人は、一人もいなかった。
광야까지 예수를 모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その時、イエスをメシアとして仕えた人がいたならば、その人は、神様から一番大きな賞をもらったに違いない。
그때 예수를 메시아로서 모신 사람이 있었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큰 상을 받았을 것이다.

イエスは、自分の使命を果たせるかどうかという暗路に入ったのである。
예수는 자신의 사명을 다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떤가 하는 암로(暗路)에 들어간 것이다.

これを知っていたのは、神様とイエスだけであった。
이것은 하나님과 예수 만이 알고 있었다.

イエスにとって、その荒野での寂しさは、大きな失望を感じさせるものであった。
예수에게 있어서 그 광야에서의 외로움은 큰 실망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考えてみれば、東方の博士は、どこに行ったのか。
생각해 보면 동방박사(東方博士)는 어디에 갔는가?

羊飼いたちは、どこにいるのか。
목자들은 어디에 있는가?

母親や洗礼ヨハネは、何をしているのか。
어머니나 세례 요한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彼らの事を思うと、イエスの悲しみは、さらに深まるのであった。
그들을 생각하면 예수의 슬픔은 더 깊어지는 것이었다.

この荒野での孤独な心中を察して同情する者は、この世に何人いただろうか。
이 광야에서의 고독한 마음 속을 알고 동정하는 자는 이 세상에 몇 명 있었을까?

しかし、その荒野路程の期間で、失望から立ち直り、再出発を決意せざるを得なかった。
그러나 그 광야 노정 기간에 실망으로부터 다시 일어서서 재출발을 결의해야 했다.

そして、怨讐サタンの試練を乗り越え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그리고 원수 사탄의 시련을 극복해야 했다.

サタンは、既に、み旨を成就するための基盤に侵入していた。
사탄은 이미 뜻을 성취하기 위한 기반에 들어가고 있었다.

そして、洗礼ヨハネは、み旨を信奉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그리고 세례 요한은 뜻을 신봉할 수 없었다.

これらの条件から、サタンは、イエスに試練を与えることができたのである。
이들의 조건으로 사탄은 예수에게 시련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これは、原理的な行動であった。
이것은 원리적인 행동이었다.

このように、サタンの自由行動によって、イエスに試練が与えられたということを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
이와 같이 사탄의 자유행동에 의해 예수에게 시련이 주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13-9 洗礼ヨハネはイエスを人間的に見ていた
13-9 세례 요한은 예수를 인간적으로 보고 있었다

洗礼ヨハネの行動が、どうして許されるだろうか。
세례 요한의 행동이 어째서 용서받을 수 있는가?

考えてみれば、恐ろしい行動であった。
생각해 보면 무서운 행동이었다.

洗礼ヨハネは、イエスがメシアであると分かったならば、自分の弟子たちまでも連れてきて、共にイエスの弟子となり、イエスに仕えなければならない立場であった。
세례 요한은 예수가 메시아라고 알았으면 자기의 제자들까지도 데려와서 함께 예수의 제자가 되어 예수를 모셔야 하는 입장이었다.

しかし、人間的な見方をして、誤った行動をとったのである。
그러나 인간적인 견해에 의해 잘못된 행동을 취한 것이다.

洗礼ヨハネが、み旨の視点からイエスを見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のは、何か理由があったのだろうか。
세례 요한이 뜻의 시점(視點)에서 예수를 볼 수 없었던 것은 무엇인가 이유가 있었던 것인가?

彼には、メシアであるイエスが高貴な人物には見えなかったのである。
그에게는 메시아인 예수가 고귀한 인물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何故なら、イエスは、容貌が特別だったのではなく、自分たちの希望を叶えてくれそうな存在でもなかったため、メシアとは程遠い存在に見えたからである。
왜냐하면 예수는 용모가 특별했던 것이 아니고 자기들의 희망을 이루어 줄 것 같은 존재도 아니었으므로 메시아와는 먼 존재로 보였기 때문이다.

つまり、洗礼ヨハネは、その時のイスラエル民族と同じ視点で、人間的にイエスを見ていたのである。
즉 세례 요한은 그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시점(視點)에서 인간적으로 예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これが、失敗の原因であった。
이것이 실패의 원인이었다.

もし、洗礼ヨハネが、自分の弟子たちと共にイエスの弟子となれば、それまでの先生という立場から、皆と同じように、弟子という立場に変わってしまう。
만약 세례 요한이 자기의 제자들과 함께 예수의 제자가 되면 그때까지의 선생님이라는 입장에서 다들과 같이 제자라는 입장으로 변해 버린다.

彼には、弟子だった者たちと同じ立場になるということが、耐え難いことだったのである。
그에게는 제자였던 자들과 같은 입장이 된다는 것이 참기 어려운 일이었다.

このように、自分を中心とする視点で、天と向き合えば、サタンと一つになる方向に向かい、サタンの望む結果を招くということを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
이와 같이 자기를 중심으로 하는 시점(視點)에서 하늘과 마주 대하면 사탄과 하나가 되는 방향으로 향하여 사탄이 바라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13-10 洗礼ヨハネの失敗は聖書に示されている
13-10 세례 요한의 실패는 성경에 나와 있다

私は、何の根拠も無く、このように論じているのではない。
나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렇게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では、聖書から、洗礼ヨハネの大失敗を解説してみよう。
그러면 성경에서 세례 요한의 대실패를 해설해 보자.

今の神学界では難解とされている聖句、マタイによる福音書11章を見れば、その時の事が如実に示されている。
지금의 신학계에서 난해하다고 하는 성구, 마태복음 11장을 보면 그 당시의 일이 여실히 나와 있다.

その1節から6節には、次のように記されている。
그 1절부터 6절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イエスは12弟子にこのように命じ終えてから、町々で教えまた宣べ伝えるために、そこを立ち去られた。さて、ヨハネは獄中でキリストのみわざについて伝え聞き、自分の弟子たちをつかわして、イエスに言わせた。「きたるべきかたはあなたなのですか。それとも、ほかにだれかを待つべきでしょうか。」イエスは答えて言われた。「行って、あなたがたが見聞きしていることをヨハネに報告しなさい。盲人は見え、足なえは歩き、らい病人はきよまり、耳しいは聞え、死人は生きかえり、貧しい人々は福音を聞かされている。わたしにつまずかない者は、さいわいである。」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명하시기를 마치시고 이에 저희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イエスは、洗礼ヨハネの弟子たちに、「私が誰だとは言わない。あなたがたが自分で考えなさい」という思いで、このように言われたのである。
예수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내가 누구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너희들이 스스로 생각하라"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さらに、7節から19節には、次のように記されている。
이어서 7절부터 19절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彼らが帰ってしまうと、イエスはヨハネのことを群集に語りはじめられた。「あなたがたは、何を見に荒野(あらの)に出てきたのか。風に揺らぐ(あし)であるか。では、何を見に出てきたのか。柔らかい着物をまとった人か。柔らかい着物をまとった人々なら、王の家にいる。では、なんのために出てきたのか。預言者を見るためか。そうだ、あなたがたに言うが、預言者以上の者である。『見よ、わたしは使(つかい)をあなたの先につかわし、あなたの前に、道を整えさせるであろう』と書いてあるのは、この人のことである。あなたがたによく言っておく。女の産んだ者の中で、バプテスマのヨハネより大きい人物は起こらなかった。しかし、天国で最も小さい者も、彼よりは大きい。バプテスマのヨハネの時から今に至るまで、天国は激しく襲われている。そして激しく襲う者たちがそれを奪い取っている。すべての預言者と律法とが預言したのは、ヨハネの時までである。そして、もしあなたがたが受けいれることを望めば、この人こそは、きたるべきエリヤなのである。耳のある者は聞くがよい。今の時代を何に比べようか。それは子供たちが広場にすわって、ほかの子供たちに呼びかけ、『わたしたちが笛を吹いたのに、あなたたちは踊ってくれなかった。弔いの歌を歌ったのに、胸を打ってくれなかった』と言うのに似ている。なぜなら、ヨハネがきて、食べることも、飲むこともしないと、あれは悪霊につかれているのだ、と言い、また人の子がきて、食べたり飲んだりしていると、見よ、あれは食をむさぼる者、大酒を飲む者、また取税人、罪人の仲間だ、と言う。しかし、知恵の正しいことは、その働きが証明する。」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찐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このように、イエスは、洗礼ヨハネがエリヤであることを明かされた。
이와 같이 예수는 세례 요한이 엘리야인 것을 밝히셨다.

では何故、イエスは、自分自身のことを「私がメシアである」と明確に言われなかったのか。
그러면 왜 예수는 자기 자신을 "내가 메시아다"라고 명확히 말하지 않으셨는가?

それは、悟らせるためである。
그것은 깨닫게 하기 위해서다.

その理由はこうである。
그 이유는 이렇다.

もし、メシアであるイエスに会うことができるならば、これ以上の幸いは無いと言えるが、イエスのことを皆に教え、皆を導けば、イエスに会えない者が何処にいるだろうか。
만약 메시아인 예수를 만날 수 있으면 더 이상의 행운은 없다고 말할 수 있지만 예수를 모두에게 가르치고 모두를 인도하면 예수를 만날 수 없는 자가 어디에 있는가?

しかし、イエスが、最後まで自分自身のことを明確にしなければ、人々は、自分たちの知恵によって、神様のみ旨を立ててこそ、イエスに会うことができるのである。
그러나 예수가 끝까지 자기 자신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자기들의 지혜에 의해 하나님의 뜻을 세워야 예수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もちろん、天の導きもあるが、自分の努力によって、イエスに会ってこそ、その努力に見合った栄光を受けることができる。
물론 하늘의 인도도 있지만 자기의 노력으로 예수를 만나야 그 노력에 걸맞은 영광을 받을 수 있다.

これが、最後まで自分自身のことを明確にはせず、悟らせようとされた理由である。
이것이 끝까지 자기 자신을 명확히 하지 않고 깨닫게 하려고 하신 이유다.

例えば、み旨の路程において、100を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場合に、天は95までは教えてくれるが、残りの5は教えてくれない。
예를 들면 뜻의 노정에 있어서 100을 알아야 하는 경우에 하늘은 95까지는 가르쳐 주지만 나머지 5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

何故なら、ある人が100を全て教えられ、自分で努力することをしなかったならば、その人は栄光を受けることができないからである。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100의 모든 가르침을 받고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영광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それゆえ、95までは天が教え、5は自分の知恵で知ることによって、100を満たすようになっている。
그러므로 95까지는 하늘이 가르치고 5는 자기의 지혜로 앎으로써 100을 채우게 되어 있다.

この5を求めることによって成就するということは、それによって100を成就した栄光を受け、その人の権限が決定されるということである。
이 5를 찾음으로써 성취한다는 것은 그것에 의해 100을 성취한 영광을 받고 그 사람의 권한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イエスは、このような意義をもって、洗礼ヨハネに答えたのであり、天も、洗礼ヨハネには、95を教示したのである。
예수는 이러한 의의를 가지고 세례 요한에게 대답한 것이고 하늘도 세례 요한에게는 95를 교시한 것이다.

このように、神様は、知恵によって探し求めることを義とされる。
이와 같이 하나님은 지혜에 의해 찾는 것을 의(義)로 하신다.

つまり、明確に教示しないというのが、神様の愛による摂理なのである。
즉 명확히 교시하지 않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에 의한 섭리인 것이다.

また、イエスは、全ての人々に、ご自身を受け入れることを許されたが、知恵のある者たちが一つになってこそ、怨讐サタンの知恵に勝つことができる。
또한 예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을 허락하셨지만 지혜가 있는 자들이 하나가 되어야 원수 사탄의 지혜를 이길 수 있다.

このような基盤を持つことができるよう、神様は、以上のような摂理をされたのである。
이러한 기반을 가질 수 있도록 하나님은 상기와 같은 섭리를 하신 것이다.

神様は、ある目的を教示した後に試練を与え、その目的に対して疑いを持つようにされることもある。
하나님은 어떤 목적을 교시한 후에 시련을 주고 그 목적에 대하여 의혹을 가지도록 하시는 경우도 있다.

それは、知恵によって、その目的の意味を知り、神様が直接干渉されなくても、サタンに勝つことができるようにするための試練なのである。
그것은 지혜에 의해 그 목적의 의미를 알고 하나님이 직접 간섭하시지 않아도 사탄을 이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시련이다.

霊的に教示を受ける者たちの体験には、このような意義があることを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
영적으로 교시를 받는 자들의 체험에는 이러한 의의가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こうして完成した者となれば、神様に直接頼らなくても、サタンに対抗することができ、自由意志によって、み旨を成就することができる。
이리하여 완성된 자가 되면 하나님께 직접 의지하지 않아도 사탄에게 대항할 수 있고 자유의지에 의해 뜻을 성취할 수 있다.

神様は、我々がそのようになることを望みながら、摂理を展開されているのである。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면서 섭리를 전개하고 계시는 것이다.

知恵によって、み旨を成就する者は、天でも、非常に貴い存在である。
지혜에 의해 뜻을 성취하는 자는 하늘에서도 대단히 귀한 존재다.

また、尊敬される存在になる資格は、知恵によってのみ得られるのであり、尊敬に値する姿勢とは、知恵によって、み旨を成就しようとすることである。
또한 존경받는 존재가 되는 자격은 지혜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고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자세란 지혜에 의해 뜻을 성취하려고 하는 것이다.

ところで、イエスは、「貧しい人々は福音を聞かされている」(マタイによる福音書11章5節)と言われた。
그런데 예수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마태복음 11장 5절)라고 말씀하셨다.

それには大きな意味がある。
그것에는 큰 의미가 있다.

その時、イスラエル民族がメシアを待ち望んでいたのは、自分たちが豊かになれると思っていたからである。
그 당시 이스라엘 민족이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었던 것은 자기들이 풍요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しかし、イエスは、「私は、あなたがたの望みを叶えることはできない。それゆえ、貧しい者たちに対するしかない。あなたがたは、豊かになろうと思っていたため、私と向き合うことができなかった」と、間接的に言われたのである。
그러나 예수는 "나는 너희들의 희망을 이룰 수는 없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을 대할 수밖에 없다. 너희들은 풍부해지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를 마주 대할 수 없었다"라고 간접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つまり、「貧しい人々は福音を聞かされている」というみ言の意味は、サタンが主管するところでは、悪なる者が富み、善なる者は貧しいということである。
즉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라는 말씀의 의미는 사탄이 주관하는 곳에서는 악한 자가 풍부하고 선한 자는 가난하다고 하는 것이다.

次に、イエスは、「わたしにつまずかない者は、さいわいである」(マタイによる福音書11章6節)と言われた。
그 다음에 예수는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마태복음 11장 6절)라고 말씀하셨다.

この聖句にこそ、イエスの本心が現れている。
바로 이 말씀에 예수의 본심이 나타나고 있다.

つまり、このみ言は、「洗礼ヨハネは、私につまずいた」という意味であり、既に洗礼ヨハネが、本来の位置から離れたということを暗示するものであった。
즉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은 나를 인하여 실족했다"라는 의미며 이미 세례 요한이 본래의 위치에서 떨어졌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事実、彼は、イエスの路程に一大難事をもたらした。
사실 그는 예수의 노정에 일대 난사(一大難事)를 초래했다.

そのために、大犯罪者となったことは言うまでもない。
그렇기 때문에 대범죄자가 되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やはり、洗礼ヨハネは、イエスにとって、致命的な存在だったのである。
역시 세례 요한은 예수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次に、「あなたがたは、何を見に荒野に出てきたのか」(マタイによる福音書11章7節)というみ言が記されている。
그 다음에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마태복음 11장 7절)라는 말씀이 적혀 있다.

では、人々が荒野に出てきた目的は、何であったのか。
그러면 사람들이 광야에 나온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その荒野に出てきたのは、イエスを知るためではなかったのか。
그 광야에 나온 것은 예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었는가?

洗礼ヨハネは、イエスを証言したのではなかったのか。
세례 요한은 예수를 증언한 것이 아니었는가?

しかし、イエスが、そのみ言を語っていた時、既に人々は、イエスがメシアであることを知るべき時期を逃していた。
그러나 예수가 그러한 말씀을 하고 계셨을 때 이미 사람들은 예수가 메시아인 것을 알아야 할 시기를 놓치고 있었다.

そのため、イエスは、そのみ言によって、洗礼ヨハネが失敗したことを暗示しながら、人々を叱責されたのである。
그러므로 예수는 그 말씀에 의해 세례 요한이 실패한 것을 암시하면서 사람들을 질책하신 것이다.

しかし、イエスは、「あなたがたによく言っておく。女の産んだ者の中で、バプテスマのヨハネより大きい人物は起こらなかった」(マタイによる福音書11章11節)と言われた。
그러나 예수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마태복음 11장 11절)라고 말씀하셨다.

そのみ言の根本的な意味は何であるのか。
그 말씀의 근본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かつての預言者たちも、その時の洗礼ヨハネも、女から生まれたのは間違いのない事実である。
그전의 선지자들도 그때의 세례 요한도 여자로부터 태어난 것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また、預言者であれば、神様のみ意を預言し、そのみ意を知らせる代弁人であることに間違いはない。
또한 선지자라면 하나님의 뜻을 예언하고 그 뜻을 알리는 대변인인 것에 틀림이 없다.

もちろん、洗礼ヨハネも、神様のみ意を知らせる代弁人という意味では同様の立場であったが、その代弁人たちの立場を考えてみれば、かつての預言者たちは、預言としてイエスを証言したのであり、洗礼ヨハネは、直接イエスを証言したのである。
물론 세례 요한도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대변인이라는 의미에서는 같은 입장이었지만 그 대변인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그전의 선지자들은 예언으로서 예수를 증언한 것이고 세례 요한은 직접 예수를 증언한 것이다.

それゆえ、証言した立場においては、洗礼ヨハネが、女から生まれた者の中で、最も大きい存在だったことは明らかである。
그러므로 증언한 입장에 있어서는 세례 요한이 여자로부터 태어난 자 중에서 가장 큰 존재였던 것은 명확하다.

次に、「しかし、天国で最も小さい者も、彼よりは大きい」(マタイによる福音書11章11節)と言われたが、これには、どのような意味があるのか。
그 다음에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마태복음 11장 11절)라고 말씀하셨지만 이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天国に行った者も、女が生んだ者である。
천국에 간 자도 여자가 낳은 자다.

女が生んだ者の中で、洗礼ヨハネが最も大きい者であれば、天国でも大きい者となるはずである。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세례 요한이 가장 큰 자라면 천국에서도 큰 자가 될 것이다.

しかし、何故、天国では、洗礼ヨハネが最も小さい者となるのか。
그러나 왜 천국에서는 세례 요한이 가장 작은 자가 되는가?

このような疑問を抱かざるを得ない。
이러한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この疑問も、洗礼ヨハネの犯罪的な行動から解くことができる。
이 의문도 세례 요한의 범죄적인 행동으로부터 풀 수 있다.

当時、洗礼ヨハネが、積極的にイエスに仕えていたならば、彼は間違いなく、天において、最も大きい存在となっていたはずである。
당시 세례 요한이 적극적으로 예수를 모시고 있었으면 그는 틀림 없이 하늘에 있어서 가장 큰 존재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しかし、洗礼ヨハネは、イエスを証言しておきながら、積極的にイエスに仕える姿勢をとらず、自分の思いで行動していた。
그러나 세례 요한은 예수를 증언해 놓고 적극적으로 예수를 모시는 자세를 취하지 않고 자기의 생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これは、大きな犯罪だったと言わざるを得ない。
이것은 큰 범죄였다고 할 수밖에 없다.

つまり、天にいる聖徒や天使、また、他のどのような存在でも、イエスがメシアであることを知って、心から仕えているにもかかわらず、イエスをメシアとして仕えるべき存在が、イエスに仕えることができず、むしろ、み旨に反する行動をとったのである。
즉 하늘에 있는 성도나 천사, 또한 다른 어떤 존재라도 예수가 메시아인 것을 알고 진심으로 모시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를 메시아로서 모셔야 할 존재가 예수를 모시지 못하고 오히려 뜻에 반하는 행동을 취한 것이다.

これは、天国において、最も小さい者となる行動であったと言わざるを得ない。
이것은 천국에 있어서 가장 작은 자가 되는 행동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こうして、彼は、天国で最も小さい者よりも、さらに劣る存在となってしまったのである。
이리하여 그는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보다도 더 뒤떨어지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このように、「天国で最も小さい者も、彼よりは大きい」というみ言は、イエスに仕えることのできなかった洗礼ヨハネの犯罪行為を叱責されたものであった。
이와 같이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라는 말씀은 예수를 모실 수 없었던 세례 요한의 범죄 행위를 질책하신 것이었다.

その重大な意味を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
그 중대한 의미를 알아야 한다.

このみ言は、今でも、神学界において未解決となっている。
그 말씀은 아직도 신학계에 있어서 미해결로 남아 있다.

次に、「バプテスマのヨハネの時から今に至るまで、天国は激しく襲われている。そして激しく襲う者たちがそれを奪い取っている」(マタイによる福音書11章12節)と言われたが、これも、洗礼ヨハネの犯罪を指摘されたみ言である。
그 다음에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태복음 11장 12절)라고 말씀하셨지만 이것도 세례 요한의 범죄를 지적하신 말씀이다.

もし、洗礼ヨハネが、み旨を信奉して、イエスに仕えていたならば、彼はイエスの一番弟子になっていた。
만약 세례 요한이 뜻을 신봉하여 예수를 모시고 있었으면 그는 예수의 제일 제자가 되어 있었다.

しかし、イエスに仕え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ため、イエスの一番弟子にな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그러나 예수를 모실 수 없었기 때문에 예수의 제일 제자가 될 수 없었다.

そのため、その位置は、イエスに仕える他の弟子に渡されることになった。
그러므로 그 위치는 예수를 모시는 다른 제자에게 넘겨지게 되었다.

つまり、イエスに仕える他の弟子たちが、洗礼ヨハネに与えられるはずであったその位置を奪い取ることになったのである。
즉 예수를 모시는 다른 제자들이 세례 요한에게 주어질 것이었던 그 위치를 빼앗게 된 것이다.

洗礼ヨハネの失敗によって、イエスの十字架路程が始まったということを明確に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
세례 요한의 실패로 인해 예수의 십자가 노정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正に憤慨すべき事実である。
정말로 분개해야 할 사실이다.

今日まで、洗礼ヨハネを貴い存在だと思っていた信徒たちは、どうして、その無知ゆえの悲しみを避けることができるだろうか。
오늘날까지 세례 요한을 귀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신도들은 어째서 그 무지로 인한 슬픔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

イエスは、み旨を成就するために来られたが、この世の人々は、イエスに少しも応じなかった。
예수는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 오셨지만 이 세상의 사람들은 예수에게 조금도 응하지 않았다.

イエスは、それを指摘して、次のように言われたのである。
예수는 그것을 지적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それは子供たちが広場にすわって、ほかの子供たちに呼びかけ、『わたしたちが笛を吹いたのに、あなたたちは踊ってくれなかった。弔いの歌を歌ったのに、胸を打ってくれなかった』と言うのに似ている。」(マタイによる福音書11章16節から17節)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마태복음 11장 16절부터 17절)

次に、「ヨハネがきて、食べることも、飲むこともしないと、あれは悪霊につかれているのだ、と言い、また人の子がきて、食べたり飲んだりしていると、見よ、あれは食をむさぼる者、大酒を飲む者、また取税人、罪人(つみびと)の仲間だ、と言う。しかし、知恵の正しいことは、その働きが証明する」(マタイによる福音書11章18節から19節)と言われた。
그 다음에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마태복음 11장 18절부터 19절)라고 말씀하셨다.

このみ言は、この世の人々は天のみ旨を知らず、自分の思いで人を評価しているということを指摘されたものである。
이 말씀은 이 세상의 사람들은 하늘의 뜻을 모르고 자기의 생각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신 것이다.

上記の「知恵の正しいことは、その働きが証明する」というみ言が、警告であるということを、今の信徒たちは知っているだろうか。
상기의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라는 말씀이 경고인 것을 지금의 신도들은 알고 있을까?

今、再臨を待ち望んでいる世界の信徒たちが、イエスの時のパリサイ人たちと同じ立場に立つならば、その信徒たちの中で、み旨を信奉できる者が、果たして何人いるだろうか。
지금 재림을 고대하고 있는 세계의 신도들이 예수 때의 바리새인들과 같은 입장에 서면 그 신도들 중에서 뜻을 신봉할 수 있는 자가 과연 몇 명 있을까?

その当時、厳しい状況となったイエスの前に、荒野路程という悲しみの路程が展開された。
그 당시 어려운 상황이 된 예수 앞에 광야 노정이라는 슬픔의 노정이 전개되었다.

それが原理であることは、前述したことから理解することができると思う。
그것이 원리인 것은 전술한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このような原理を明らかにしなければ、今の教会の信徒たちは、み旨に対して積極的に反対するであろう。
이러한 원리를 밝히지 않으면 지금의 교회 신도들은 뜻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반대할 것이다.

しかし、原理を知れば、み旨に反対する行動が、恐ろしいことであると分かるようになるのである。
그러나 원리를 알면 뜻에 반대하는 행동이 무서운 것이라고 알게 되는 것이다.

ここで述べている原理は、終末となり、再臨の時となり、み旨成就の時期となったために、明かされたものである。
여기서 논하고 있는 원리는 종말이 되고 재림의 때가 되고 뜻 성취의 시기가 되었으므로 밝혀진 것이다.

終わりの日に、神様のみ旨を知って信奉する者は、天では最も大きい者とされるであろう。
끝날에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신봉하는 자는 하늘에서는 가장 큰 자로 여겨질 것이다.

以上のように、洗礼ヨハネは、神様が予定された存在ではあったが、その使命を果たすことができなかった。
상기와 같이 세례 요한은 하나님이 예정하신 존재였지만 그 사명을 다할 수 없었다.

このようなとき、神様は、み旨の価値を知って信奉する者に、そのみ旨を継承させる。
이러한 때에 하나님은 뜻의 가치를 알고 신봉하는 자에게 그 뜻을 계승시킨다.

そのために、そのみ旨の摂理を延長されるのである。
그렇기 때문에 그 뜻의 섭리를 연장하시는 것이다.

このように、み旨に対する予定は絶対的であるが、人に対する予定は絶対的ではない。
이와 같이 뜻에 대한 예정은 절대적이지만 사람에 대한 예정은 절대적이지 않다.

それゆえ、人が予め定められているというキリスト教の予定論などは、論外であると言える。
그러므로 사람이 미리 정해져 있다는 기독교의 예정론 등은 논외라고 할 수 있다.


13-11 イエスの先祖となった女性たち
13-11 예수의 조상이 된 여성들

アダムとエバの失敗によって、人は神様から離れ、サタンの主管を受ける存在となってしまった。
아담과 해와의 실패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사탄의 주관을 받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それゆえ、神様は、そのような人々を取り戻そうとされ、歴史の中に摂理路程があることを示してこられたのである。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들을 되찾으려고 하시고 역사 속에 섭리 노정이 있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それは、これまでに述べた通りである。
그것은 이미 논한 바와 같다.

ところで、特にイエスの直系の先祖を知るときに、もし原理を知らなければ、誰もが、その血統に疑いを持ち、汚れた血統だと言うであろう。
그런데 특히 예수의 직계의 조상을 알게 될 때에 만약 원리를 모르면 누구라도 그 혈통에 의심을 가지고 더럽혀진 혈통이라고 할 것이다.

その血統は、み旨のための血統である。
그 혈통은 뜻을 위한 혈통이다.

そして、その歴代の先祖に起こった出来事には原理が示されている。
그리고 그 역대의 조상들에게 일어난 사건에는 원리가 나타나고 있다.

それらの出来事を通して、堕落した人類をイエスにまで導き、復帰しようとされたのである。
그 사건들을 통해서 타락한 인류를 예수까지 인도하여 복귀하려고 하신 것이다.

イエスの先祖の血統は、純粋な血統ではなく、様々な女性たちが関わってきた。
예수의 조상의 혈통은 순수한 혈통이 아니고 여러 여성들이 관련되어 왔다.

その代表的な女性は、タマル、ラハブ、ルツ、バテシバなどであるが、神様は、理由があって、このようにされたのである。
그 대표적인 여성은 다말, 라합, 룻, 밧세바 등이지만 하나님은 이유가 있어서 이렇게 하신 것이다.

人々をサタンの血統から本来の血統に復帰するためには、サタンに汚された原理を立て直す必要があった。
사람들을 사탄의 혈통으로부터 본래의 혈통으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사탄이 더럽힌 원리를 다시 세울 필요가 있었다.

そのため、サタンが神様から人を奪ったように、神様もサタンから人を奪って、その原理を立て直そうとされたのである。
그러므로 사탄이 하나님으로부터 사람을 빼앗은 것과 같이 하나님도 사탄으로부터 사람을 빼앗고 그 원리를 다시 세우려고 하신 것이다.

こうして、その女性たちが、汚れた女性のような立場で、従順、信仰、奉仕を成したときに、み旨が成就し、イエスの先祖になる資格が与えられるようになっていた。
이리하여 그 여성들이 더럽혀진 여성과 같은 입장에서 순종(順從), 신종(信從), 시봉(侍奉)을 이루었을 때에 뜻이 성취되어 예수의 조상이 되는 자격이 주어지게 되어 있었다.

このような原理を成立させることが、神様のみ意であった。
이러한 원리를 성립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つまり、イエスがメシアとして降臨することができたのは、その血統に関わった女性たちが、従順、信仰、奉仕を成したからである。
즉 예수가 메시아로서 강림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혈통에 관련된 여성들이 순종, 신종, 시봉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ヤコブがエサウから奪った長子の権利は、ユダ(ヤコブと妻レアとの第四子)が受け継いだ。
야곱이 에서로부터 빼앗은 장자의 권리는 유다(야곱과 아내 레아와의 넷째 아들)가 계승했다.

それゆえ、ユダの長子が、その権利を受け継が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그러므로 유다의 장자가 그 권리를 계승해야 했다.

それは、ユダの支族を通して、神様のみ旨が展開されるということであるが、そのみ旨を初めに成就させたのが、ペレツとゼラであった。
그것은 유다의 지파(支派)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전개된다는 것이지만 베레스와 세라가 그 뜻을 처음으로 성취시킨 것이다.

つまり、神様は、タマルに双子を与えられたが、その双子、ペレツとゼラは、エサウとヤコブのように、胎内にいた時から争っていた。
즉 하나님은 다말에게 쌍동이를 주셨지만 그 쌍동이 베레스와 세라는 에서와 야곱과 같이 복중에 있었을 때부터 싸우고 있었다.

このようにして、み旨が立てられていたことには大きな意義がある。
이렇게 하여 뜻이 세워지고 있었던 것에는 큰 의의가 있다.

では、タマルがとった行動から調べてみよう。
그러면 다말이 취한 행동으로부터 알아 보자.

タマルは、神様のみ旨を中心とするユダの血統を、自分の息子に継承させなければならない立場であった。
다말은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하는 유다의 혈통을 자기 아들에게 계승시켜야 하는 입장이었다.

しかし、ユダの息子によっては、自分の息子を得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のである。
그러나 유다의 아들에 의해서는 자기의 아들을 얻을 수 없었던 것이다.

創世記38章6節から16節には次のように記されている。
창세기 38장 6절부터 16절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ユダは長子エルのために、名をタマルという妻を迎えた。しかしユダの長子エルは主の前に悪い者であったので、主は彼を殺された。そこでユダはオナンに言った。「兄の妻の所にはいって、彼女をめとり、兄に子供を得させなさい。」しかしオナンはその子が自分のものとならないのを知っていたので、兄の妻の所にはいった時、兄に子を得させないために地に洩らした。彼のした事は主の前に悪かったので、主は彼をも殺された。そこでユダはその子の妻タマルに言った。「わたしの子シラが成人するまで、寡婦(かふ)(未亡人)のままで、あなたの父の家にいなさい。」彼は、シラもまた兄弟たちのように死ぬかもしれないと、思ったからである。それでタマルは行って父の家におった。日がたってシュアの娘ユダの妻は死んだ。その後、ユダは喪を終ってその友アドラムびとヒラと共にテムナに(のぼ)り、自分の羊の毛を切る者のところへ行った。時に、ひとりの人がタマルに告げて、「あなたのしゅうとが羊の毛を切るためにテムナに(のぼ)って来る」と言ったので、彼女は寡婦の衣服を脱ぎすて、被衣(かつぎ)(女性が外出時に頭からかぶる衣服)で身をおおい隠して、テムナへ行く道のかたわらにあるエナイムの入口にすわっていた。彼女はシラが成人したのに、自分がその妻にされないのを知ったからである。ユダは彼女を見たとき、彼女が顔をおおっていたため、遊女だと思い、道のかたわらで彼女に向かって言った。「さあ、あなたの所にはいらせておくれ。」彼はこの女がわが子の妻であることを知らなかったからである。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취하니 그 이름은 다말이더라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의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형에게 아들을 얻게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그 일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유다가 그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비 집에 있어서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 아비 집에 있으니라 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은지라 유다가 위로를 받은 후에 그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서 자기 양털 깎는 자에게 이르렀더니 혹이 다말에게 고하되 네 시부가 자기 양털을 깎으려고 딤나에 올라왔다 한지라 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면박으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을 인함이라 그가 얼굴을 가리웠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길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가로되 청컨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 자부인줄 알지 못하였음이라"

このように、タマルは、恥じらいも死も顧みず、神様のみ旨を成就させるために行動したのである。
이와 같이 다말은 부끄러움도 죽음도 뒤돌아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행동한 것이다.

つまり、タマルは、ユダの血統の価値を知っていたため、やむを得ず、義理の父であるユダによって、自分の息子を得ようと、覚悟を決めていたのである。
즉 다말은 유다의 혈통의 가치를 알고 있었으므로 할 수 없이 시아버지인 유다에 의해 자기의 아들을 얻으려고 각오를 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こうして、身ごもったのが、ペレツとゼラであった。
이리하여 잉태된 아이가 베레스와 세라였다.

このような、非倫理的なことが、ユダとタマルの間にあったのである。
이러한 비윤리적인 일이 유다와 다말 사이에 있었던 것이다.

こうして、タマルは、非倫理的に血統を守った存在となった。
이리하여 다말은 비윤리적으로 혈통을 지킨 존재가 되었다.

このタマルの行動は、何を意味しているのか。
이 다말의 행동은 무엇을 뜻하고 있는가?

エバは、サタンに貞操を奪われ、非原理的な血統を継承させた者となった。
해와는 사탄에게 정조(貞操)를 빼앗겨 비원리적인 혈통을 계승시킨 자가 되었다.

こうして、人々は堕落したのである。
이리하여 사람들은 타락한 것이다.

しかし、それとは反対に、タマルは、神様の側に立って、血統を継承させた。
그러나 그것과는 반대로 다말은 하나님 측에 서서 혈통을 계승시켰다.

これは、神様のみ旨を失ってしまったエバのような存在が後に現れて、タマルのように、み旨を中心として行動するということを示している。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잃어 버린 해와와 같은 존재가 나중에 나타나서 다말과 같이 뜻을 중심으로 하여 행동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それゆえ、堕落したこの世では、神様のみ旨を成就させることのできる女性が、タマルのように、非倫理的な行動をしながらも、サタン的なこの世に順応せず、神様に順応する者として、血統を継承させることになる。
그러므로 타락한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킬 수 있는 여성이 다말과 같이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면서도 사탄적인 이 세상에 순응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응하는 자로서 혈통을 계승시키게 된다.

このような事実があることを示したのが、タマルであった。
이러한 사실이 있는 것을 보여 준 존재가 다말이었다.

それゆえ、タマルのように、サタンに属するこの世の女性が、神様に属する夫を迎えなければならないエバとして現れ、新婦となるのである。
그러므로 다말과 같이 사탄에게 속하는 이 세상의 여성이 하나님께 속하는 남편을 맞이해야 하는 해와로서 나타나 신부가 되는 것이다.

この世では非倫理的に見えるが、命を惜しまず、み旨を果たそうと準備をする女性がいなければならない。
이 세상에서는 비윤리적으로 보이지만 목숨을 아끼지 않고 뜻을 다하려고 준비하는 여성이 있어야 한다.

タマルは、そのような女性を象徴する存在であった。
다말은 그러한 여성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このようなタマルは、神様の愛する血統を守った、とても尊い先祖である。
이러한 다말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혈통을 지킨 매우 귀한 조상이다.

イエスが来られ、このような女性を探し出して、神様のみ旨を成就させるということが、暗示的に示されていたのである。
예수가 오시고 이러한 여성을 찾아내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킨다는 것이 암시적으로 나타내지고 있었던 것이다.

タマルのように、み旨を果たそうと努力するならば、サタンの圏内から神様の圏内へと移ることができる。
다말과 같이 뜻을 다하려고 노력하면 사탄 권내에서 하나님 권내에 옮겨 갈 수 있다.

タマルは、このような路程があることを示したのである。
다말은 이러한 노정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ユダは、神様を象徴していたのであり、タマルは、神様が取り戻さなければならないエバを象徴していた。
유다는 하나님을 상징하고 있었고, 다말은 하나님이 되찾아야 하는 해와를 상징하고 있었다.

このような関係による血統の継承は、み旨の中心となるイエスの先祖として、原理上、許されたのである。
이러한 관계에 의한 혈통의 계승은 뜻의 중심이 되는 예수의 조상으로서 원리상 허락된 것이다.

タマルが、夫となる存在を離れ、義理の父の懐に入ったように、エバとしてのみ旨を果たそうとする女性は、夫となる存在を離れ、神様の懐に入ってこそ、神様がサタンからエバを取り戻すというかたちが完成し、根本的な復帰を果たすことができる。
다말이 남편이 되는 존재를 떠나 시아버지의 품에 들어간 것과 같이 해와로서의 뜻을 다하려고 하는 여성은 남편이 되는 존재를 떠나 하나님의 품에 들어가야 하나님이 사탄으로부터 해와를 되찾는다는 양식이 완성되어 근본적인 복귀를 다할 수 있다.

そのため、神様は、以上のような路程を示されたのである。
그러므로 하나님은 상기와 같은 노정을 보여 주신 것이다.

タマルから生まれた双子、ペレツとゼラは、本来、一人であるべき存在が、二人になったことを示している。
다말로부터 태어난 쌍동이 베레스와 세라는 본래 한 사람이어야 할 존재가 두 사람이 된 것을 보여 주고 있다.

これは、神様に属する者と、サタンに属する者がいるということである。
이것은 하나님께 속하는 자와 사탄에게 속하는 자가 있다는 것이다.

堕落が無かったならば、何の問題も無く、最初に生まれた子が長子となるが、この双子は、互いに長子になろうとして胎内で争っていた。
타락이 없었으면 아무런 문제도 없이 처음에 태어난 아이가 장자가 되지만 이 쌍동이는 서로 장자가 되려고 복중에서 싸우고 있었다.

このようになったのは、堕落の血を受け継いだために、神様側とサタン側に分立された双子が、互いに、長子の権利を得ようとしていたからである。
이렇게 된 것은 타락의 피를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측과 사탄 측에 분립된 쌍동이가 서로 장자의 권리를 얻으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エサウとヤコブのときは、弟のヤコブが、兄のエサウから長子の権利を奪った。
에서와 야곱 때는 남동생인 야곱이 형인 에서로부터 장자의 권리를 빼앗았다.

ペレツとゼラのときは、先に生まれた子が、長子の権利を得て、み旨を継承することになっていた。
베레스와 세라 때는 먼저 태어난 아이가 장자의 권리를 얻고 뜻을 계승하게 되어 있었다.

そのために、ペレツとゼラは胎内で争っていたが、先に生まれようとするゼラを退けて、ペレツが先に生まれ、長子の権利を得たのである。
그렇기 때문에 베레스와 세라는 복중에서 싸우고 있었지만 먼저 태어나려고 하는 세라를 물리치고 베레스가 먼저 태어나서 장자의 권리를 얻은 것이다.

こうして、タマルは、神様のみ旨を成就させた者の母となった。
이리하여 다말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킨 자의 어머니가 되었다.

以上のことは、将来、怨讐のこの世にイエスが来られ、長子になろうとするサタンと直接戦って勝利し、長子の権利を得ることを示したのである。
이상은 장래 원수(怨讐)인 이 세상에 예수가 오셔서 장자가 되려고 하는 사탄과 직접 싸워서 승리하여 장자의 권리를 얻을 것을 보여 준 것이다.

上述のタマルのように、ラハブやルツもやはり、神様のみ旨を子に継承させるために、非倫理的な行動を許された。
상기의 다말과 같이 라합이나 룻도 역시 하나님의 뜻을 아들에게 계승시키기 위해서 비윤리적인 행동이 허락되었다.

つまり、この世の常識から外れた行動をとったのである。
즉 이 세상의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취한 것이다.

次は、バテシバについて調べてみよう。
다음은 밧세바에 관하여 알아 보자.

バテシバには、ウリヤという夫がいた。
밧세바에는 우리아라는 남편이 있었다.

ダビデ王は、家来であるウリヤ、即ち、バテシバの夫を戦場の最前線に送って死なせ、バテシバをウリヤから奪ったのである。
다윗왕은 부하인 우리아, 즉 밧세바의 남편을 전장의 최전선에 보내고 죽게 하여 밧세바를 우리아로부터 빼앗은 것이다.

こうして、バテシバは、ダビデ王の妻となり、ソロモンの母親となった。
이리하여 밧세바는 다윗왕의 아내가 되고 솔로몬의 어머니가 되었다.

つまり、バテシバは、自分の夫を殺した者と結婚したのである。
즉 밧세바는 자기의 남편을 죽인 자와 결혼한 것이다.

これは、この世では許されない非行であったと言える。
이것은 이 세상에서는 허락되지 않는 비행(非行)이었다고 할 수 있다.

しかし、何故それが許され、バテシバが、栄光の王であるソロモンの母親となり、イエスの先祖となったのか。
그러나 왜 그것이 허락되어 밧세바가 영광의 왕인 솔로몬의 어머니가 되고 예수의 조상이 되었는가?

その理由はこうである。
그 이유는 이렇다.

エバには、夫となるアダムがいた。
해와에는 남편이 될 아담이 있었다.

サタンは、それを知りながら、エバを奪ったのである。
사탄은 그것을 알면서 해와를 빼앗은 것이다.

原理としては、そのエバを奪い返さなければならない。
원리로서는 그 해와를 되찾아야 한다.

つまり、ダビデ王はアダムを象徴し、バテシバはエバを象徴し、ウリヤは天使長ルーシェル(サタン)を象徴していた。
즉 다윗왕은 아담을 상징하고, 밧세바는 해와를 상징하고, 우리아는 천사장 루시엘(사탄)을 상징하고 있었다.

それゆえ、イエスが神様と共に成すべき使命は、ダビデ王がウリヤの妻バテシバを奪ったように、サタンの妻のような女性をエバとして、サタンから取り戻すことであった。
그러므로 예수가 하나님과 함께 이루어야 할 사명은 다윗왕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은 것과 같이 사탄의 아내와 같은 여성을 해와로서 사탄으로부터 되찾는 것이었다.

このような神様のみ旨が示されていたのである。
이러한 하나님의 뜻이 나타내지고 있었던 것이다.

また、ダビデ王は、み旨の通りにウリヤを死なせ、サタンがウリヤのような立場に置かれることを示したため、神様は、ダビデ王を愛し、その息子ソロモンを栄光の王とされた。
또한 다윗왕은 뜻대로 우리아를 죽게 하여 사탄이 우리아와 같은 입장에 처하게 되는 것을 보여 주었으므로 하나님은 다윗왕을 사랑하고 그 아들 솔로몬을 영광의 왕으로 하셨다.

このようにして、み旨を成就させることによって、イエスに栄光を享受させようとする目的があったために、バテシバのような女性が、イエスの先祖となったのである。
이렇게 하여 뜻을 성취시킴으로써 예수에게 영광을 누리게 하려고 하는 목적이 있었으므로 밧세바와 같은 여성이 예수의 조상이 된 것이다.


13-12 イエスの母マリアはみ旨に従うことができなかった
13-12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뜻을 따를 수 없었다

イエスは、未婚の処女であるマリアから生まれたが、これは、未婚の処女であるエバがサタンに奪われ、堕落させられたため、神様も、マリアがヨセフと結婚する前に、マリアをヨセフから奪って、第二アダムであるイエスが生まれるようにされたのである。
예수는 미혼의 처녀인 마리아로부터 태어났지만 이것은 사탄이 미혼의 처녀인 해와를 빼앗고 타락시켰으므로 하나님도 마리아가 요셉과 결혼하기 전에 마리아를 요셉으로부터 빼앗고 제2 아담인 예수가 태어나도록 하신 것이다.

このようにして、神様は、霊的にマリアを奪ったが、イエスは、肉的にマリアをエバとして復帰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이렇게 하여 하나님은 영적으로 마리아를 빼앗았지만 예수는 육적으로 마리아를 해와로서 복귀해야 했다.

しかし、マリアは、それに従うことができず、み旨を成就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ため、イエスは、苦難の路程、即ち、3年の公生涯の路程を行かざるを得なくなったのである。
그러나 마리아는 그것을 따를 수 없고 뜻을 성취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예수는 고난의 노정, 즉 3년의 공생애 노정을 가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そのため、マリアは、イエスにとって、怨讐的な存在となった。
그렇기 때문에 마리아는 예수에게 있어서 원수적인 존재가 되었다.

それゆえ、イエスは、母親に対して、「婦人よ、あなたは、わたしと、なんの係わりがありますか」(ヨハネによる福音書2章4節)と言われたのである。
그러므로 예수는 어머니에 대하여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요한복음 2장 4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神様とイエスは、人間的には理解できない原理を立てようとされていたが、サタンが一番恐れていた、この根本的な歴史の基盤を立て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のである。
하나님과 예수는 인간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원리를 세우려고 하셨지만 사탄이 가장 두려워했던 이 근본적인 역사의 기반을 세울 수 없었던 것이다.

これは、サタンが、いつでもイエスと対立できるということを、再び認識せざるを得ない事実となった。
이것은 사탄이 언제든지 예수와 대립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인식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 되었다.

このような、想像もできない路程があったのである。
이러한 상상도 할 수 없는 노정이 있었던 것이다.

こうして、イエスには、貴い命に代えてでも完成させなければならない課題が残ってしまった。
이리하여 예수에게는 귀한 생명과 바꾸더라도 완성시켜야 하는 과제가 남아 버렸다.

人間的に考えることによって、神様のみ旨を成就させることのできなかったヨセフとマリアは、イエスとは関係の無い生活を送った。
인간적으로 생각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킬 수 없었던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와는 관계 없는 생활을 보냈다.

この時、イエスの弟子となるべきであった洗礼ヨハネと、その一派も、イエスには、何の助けにもならなかった。
이때 예수의 제자가 되어야 했던 세례 요한과 그 일파도 예수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こうして、イエスは、荒野生活を始められたのである。
이리하여 예수는 광야 생활을 시작하신 것이다.


13-13 イエスの荒野40日路程と三大試練の意義
13-13 예수의 광야 40일 노정과 3대 시련의 의의

イエスは、ヨセフの家で、大工として働いていた。
예수는 요셉 집에서 목수로서 일하고 있었다.

そして、様々な神様のみ旨を心に抱きながら、それらを成就させ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内的な準備をしていた。
그리고 여러가지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품으면서 그것들을 성취할 수 있도록 내적인 준비를 하고 있었다.

しかし、イエスは、母マリアの内的な協力を受け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그러나 예수는 어머니 마리아의 내적인 협조를 받을 수 없었다.

そのため、家を出て、新しい第二次のみ旨を立てようとされたのである。
그러므로 집을 떠나서 새로운 제2차의 뜻을 세우려고 하신 것이다.

イエスが、その時代に貴い存在であったということは、洗礼ヨハネがヨルダン川で宣布した通りである。
예수가 그 시대에 귀한 존재였던 것은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선포한 대로다.

しかし、その後、洗礼ヨハネは、自分の使命を果たすことができず、イエスのみ旨に対する外的な障害となってしまった。
그러나 그 후 세례 요한은 자기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예수의 뜻에 대한 외적인 장해가 되어 버렸다.

内的にはヨセフの家庭、外的には洗礼ヨハネが、イエスの路程を、あまりにも困難なものとした。
내적으로는 요셉 가정, 외적으로는 세례 요한이 예수의 노정을 너무나 곤란하게 만들었다.

こうして、イエスは、単独で怨讐サタンと戦うことになり、荒野において、40日の断食を始めたのである。
이리하여 예수는 단독으로 원수 사탄과 싸우게 되었기 때문에 광야에서 40일 금식을 시작한 것이다.

この40日路程は、イエスに与えられた路程というよりも、神様が失った様々な条件を、サタンから取り戻すための路程であった。
이 40일 노정은 예수에게 주어진 노정이라고 하는 것 보다도 하나님이 잃어 버린 여러가지 조건을 사탄으로부터 되찾기 위한 노정이었다.

つまり、イエスは、旧約時代に示された神様の責任分担摂理路程を手本として、イエス自身の責任分担摂理路程を行か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が、その前に、神様の責任分担摂理路程において、石板や岩に侵入したサタンが、実体のイエスに侵入することを防が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즉 예수는 구약 시대에 나타난 하나님의 책임 분담 섭리 노정을 본보기로 삼고 예수 자신의 책임 분담 섭리 노정을 가야 했지만 그전에 하나님의 책임 분담 섭리 노정에 있어서 석판이나 반석에 들어간 사탄이 실체의 예수에게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했다.

それを成すための路程が、この40日路程であった。
그것을 이루기 위한 노정이 이 40일 노정이었다.

イエスは、第二アダムであり、神様の体として来られた。
예수는 제2 아담이며 하나님의 몸으로서 오셨다.

出エジプト時代に、モーセが十戒の記された2枚の石板を壊した事実と、水を出すために岩を二度打った事実は、イエスの体を打ち、さらに、神様を象徴する岩までも打ったということを意味していた。
출애굽 시대에 모세가 십계가 적혀진 두 장의 석판을 깨 버린 사실과 물을 내기 위해서 반석을 두 번 친 사실은 예수의 몸을 치고 게다가 하나님을 상징하는 반석까지도 쳐 버린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これは、前述の通りである。
이것은 전술한 바와 같다.

このように、神様を象徴する岩が打たれたことによって、サタンがその岩に侵入したということが、イエスの体にサタンが侵入することのできる根本的な原因となってしまったのである。
이와 같이 하나님을 상징하는 반석을 침으로써 사탄이 그 반석에 들어갔다는 것이 예수의 몸에 사탄이 들어갈 수 있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こうして、人々が再び、不信仰、不従順、不奉仕となるのを、サタンが待ち望んでいたところ、イエスは内外で失敗し、人々が、不信仰、不従順、不奉仕となったため、以前、サタンが、神様を象徴する岩に侵入して、その岩を自分の所有としたように、今度は、その岩の実体であるイエスの体にまで侵入して、イエスを屈服させようとしたのである。
이리하여 사람들이 다시 불신(不信)하는 자, 불순(不順)하는 자, 모시지 않는 자가 되는 것을 사탄이 고대하고 있었을 때, 예수는 내외로 실패하고 사람들이 불신하는 자, 불순하는 자, 모시지 않는 자가 되었기 때문에 이전에 사탄이 하나님을 상징하는 반석에 들어가서 그 반석을 자기 소유로 한 것과 같이 이번은 그 반석의 실체인 예수의 몸에까지 들어가서 예수를 굴복시키려고 한 것이다.

これが、サタンの試練であった。
이것이 사탄의 시련이었다.

サタンは、イエスに試練を与えることで、神様のみ旨を破壊しようとした。
사탄은 예수에게 시련을 줌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파괴하려고 했다.

このように、サタンには、イエスに試練を与えることのできる重大な理由があったのである。
이와 같이 사탄에게는 예수에게 시련을 줄 수 있는 중대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サタンは、イエスに試練を与えたが、イエスは、その時、神様のみ旨を成就させることのできる立場であったため、サタンの試練に勝利することができた。
사탄은 예수에게 시련을 주었지만 예수는 그때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수 있는 입장이었으므로 사탄의 시련에 승리할 수 있었다.

もし、サタンに、その目的を達成することのできる基盤があったならば、イエスにとっては大事であったが、サタンはイエスをどうすることもできなかったのである。
만약 사탄에게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기반이 있었으면 예수에게 있어서는 큰일이었지만 사탄은 예수를 어떻게 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こうして、サタンは去っていき、天使がイエスに仕えるようになった。
이리하여 사탄은 떠나가 천사가 예수를 모시게 되었다.

イエスは、自身の全目的をかけて、サタンの試練に臨ま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예수는 자신의 모든 목적을 걸고 사탄의 시련에 대해야 했다.

サタンは、イエスの重要な目的を見据えて誘惑し、試練を与えたのであり、もしサタンが勝てば、イエスの全目的を破壊することができたのである。
사탄은 예수의 중요한 목적을 판별해서 유혹하고 시련을 준 것이고, 만약 사탄이 이기면 예수의 모든 목적을 파괴할 수 있었을 것이다.

イエスは、神様の責任分担摂理路程、即ち、旧約の路程を、実体として完成させ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예수는 하나님의 책임 분담 섭리 노정, 즉 구약의 노정을 실체로서 완성시켜야 했다.

イエスが、その責任を果たそうとすれば、モーセが失敗した部分を取り戻す必要があった。
예수가 그 책임을 다하려고 하면 모세가 실패한 부분을 되찾을 필요가 있었다.

サタンは、それを知っていたため、その重要な部分に対して、試練を与えたのである。
사탄은 그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 중요한 부분에 대하여 시련을 준 것이다.

その初めの試練が、石に関することであった。
그 첫째 시련이 돌에 관한 것이었다.

神様がイエスに40日の断食を要求されたのは、洪水審判が40日であったように、モーセが石板を壊し、岩を二度打ったことに対しても、40日の苦によって、その失敗を取り戻さ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からである。
하나님이 예수에게 40일의 금식을 요구하신 것은 홍수 심판이 40일이었던 것과 같이 모세가 석판을 깨고 반석을 두 번 친 것에 대해서도 40일의 고통에 의해 그 실패를 되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サタンが、空腹のイエスのところに来て、「もしあなたが神の子であるなら、これらの石がパンになるように命じてごらんなさい」(マタイによる福音書4章3節)と言ったのは、モーセが岩を二度打った原因が、イスラエル民族の飲食に対する不満によるものであったため、イエスを彼らと同様の立場に立たせようとして、「あなたも食べなさい」という意味で言ったのである。
사탄이 굶주리고 있는 예수에게 와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태복음 4장 3절)라고 한 것은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친 원인이 이스라엘 민족의 음식에 대한 불만으로 인한 것이었으므로 예수를 그들과 같은 입장에 서게 하려고 해서 "너도 먹으라"라는 의미로 말한 것이다.

この時、イエスは、「『人はパンだけで生きるものではなく、神の口から出る一つ一つの(ことば)で生きるものである』と書いてある」(マタイによる福音書4章4節)と言われた。
이때 예수는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태복음 4장 4절)라고 말씀하셨다.

こうして、イエスは、神様のみ意通りに、この試練に勝利して、石板と岩に対するモーセの失敗を取り戻すことができたのである。
이리하여 예수는 하나님의 뜻대로 이 시련에 승리하고 석판과 반석에 대한 모세의 실패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しかし、試練は、まだ残っていた。
그러나 시련은 아직 남아 있었다.

イエスは、神殿を象徴する存在でありながら、神殿の主人でもあったため、これに関する試練があった。
예수는 성전을 상징하는 존재이면서 성전의 주인이었으므로 이것에 관한 시련이 있었다.

これは、イエスの全目的に関わることであった。
이것은 예수의 모든 목적에 관계되는 것이었다.

サタンは、その全目的をかけるに相応しい内容を示して、次のような試練をイエスに与えたのである。
사탄은 그 모든 목적을 걸 만한 내용을 보이고 다음과 같은 시련을 예수에게 준 것이다.

それから悪魔は、イエスを聖なる都に連れて行き、宮の頂上に立たせて、言った。「もしあなたが神の子であるなら、下へ飛びおりてごらんなさい。『神はあなたのために御使(みつかい)たちにお命じになると、あなたの足が石に打ちつけられないように、彼らはあなたを手でささえるであろう』と書いてありますから。」イエスは彼に言われた。「『主なるあなたの神を試みてはならない』とまた書いてある。」(マタイによる福音書4章5節から7節)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마태복음 4장 5절부터 7절)

サタンがイエスを宮の頂上に立たせたのは、イエスが神殿の主人であるため、そのようにしたのであり、「下へ飛びおりてごらんなさい」と言ったのは、神殿の主人の立場から降りて、「平民のようになれ」ということであった。
사탄이 예수를 성전 꼭대기에 서게 한 것은 예수가 성전의 주인이므로 그렇게 한 것이고 "뛰어내리라"라고 한 것은 성전의 주인의 입장에서 내려서 "평민과 같이 되라"라는 의미였다.

そのようになれば、サタンが神殿の主管者となるため、サタンが神様のような立場になる。
그렇게 되면 사탄이 성전의 주관자가 되므로 사탄이 하나님과 같은 입장이 된다.

しかし、サタンは神様の体ではない。
그러나 사탄은 하나님의 몸이 아니다.

従って、神様の体であるイエスの他に、神殿の主人はいないのである。
따라서 하나님의 몸인 예수 이외에 성전의 주인은 없는 것이다.

また、「主なるあなたの神を試みてはならない」というみ言は、サタンが神様に試練を与えることはできず、イエスが主人であることは変わらないという意味であった。
또한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라는 말씀은 사탄이 하나님께 시련을 줄 수는 없고 예수가 주인인 것은 바뀌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このように、イエスは、この試練に勝利し、完成した神殿としての立場を表すことができた。
이와 같이 예수는 이 시련에 승리하고 완성된 성전으로서의 입장을 나타낼 수 있었다.

こうして、サタンを退け、人々を神殿として繁殖させることのできる基盤を築いたのである。
이리하여 사탄을 물리치고 사람들을 성전으로서 번식시킬 수 있는 기반을 쌓은 것이다.

最後に、イエスは、次の試練で一大勝利を挙げたのである。
마지막으로 예수는 다음 시련으로 일대 승리를 거둔 것이다.

次に悪魔は、イエスを非常に高い山に連れて行き、この世のすべての国々とその栄華とを見せて言った。「もしあなたが、ひれ伏してわたしを拝むなら、これらのものを皆あなたにあげましょう。」するとイエスは彼に言われた。「サタンよ、退け。『主なるあなたの神を拝し、ただ神にのみ仕えよ』と書いてある。」そこで、悪魔はイエスを離れ去り、そして、御使(みつかい)たちがみもとにきて仕えた。(マタイによる福音書4章8節から11節)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마태복음 4장 8절부터 11절)

この試練によって、イエスが至高の存在であることが示された。
이 시련에 의해 예수가 지고(至高)의 존재인 것이 밝혀졌다.

つまり、サタンがイエスを連れて非常に高い山に登らせたのは、イエスが神様のみ旨において最も貴く、万国においても最も高い存在であり、この世の栄華の全てがイエスのものになるということを知っていたからである。
즉 사탄이 예수를 데리고 대단히 높은 산에 오르게 한 것은 예수가 하나님의 뜻에 있어서 가장 귀하고 만국에 있어서도 가장 높은 존재며 이 세상의 모든 영광이 예수의 것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それゆえ、サタンは、「もしあなたが、ひれ伏してわたしを拝むなら、これらのものを皆あなたにあげましょう」と言ったのである。
그러므로 사탄은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라고 한 것이다.

これに対して、イエスが「サタンよ、退け」と言われたのは、これらが、原理的には、元々イエスに属していたからである。
이것에 대하여 예수가 "사단아 물러가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것들이 원리적으로는 원래 예수에게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また、サタンが言った「ひれ伏してわたしを拝め」という言葉は、サタンの本性が露呈したものであり、これは絶対に容認することのできない言葉であった。
또한 사탄이 말한 "내게 엎드려 경배하라"라는 말은 사탄의 본성이 나타난 것이며 이것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말이었다.

それゆえ、「主なるあなたの神を拝し、ただ神にのみ仕えよ」と言われたのである。
그러므로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それは、「私が仕えるのは神様だけであり、あなたも本来は、その方を敬拝する者ではないのか」という意味であった。
그것은 "내가 모시는 것은 하나님 뿐이며 너도 본래는 그 분께 경배하는 자가 아닌가"라는 의미였다.

このように、イエスとサタンは、原理的に戦ったのである。
이와 같이 예수와 사탄은 원리적으로 싸운 것이다.

その結果、イエスが原理的に大勝利を収め、この勝利をもって、次の路程へと出発することができたのである。
그 결과 예수가 원리적으로 대승리를 거두고 이 승리를 가지고 다음 노정으로 출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サタンが去ったため、人々も、イエスと一つになることによって、サタンの試練を乗り越え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
사탄이 떠났으므로 사람들도 예수와 하나가 됨으로써 사탄의 시련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つまり、人々も、神殿を完成した者として、旧約の完成者となり、確固たる道を行く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のである。
즉 사람들도 성전을 완성한 자로서 구약의 완성자가 되고 확고한 길을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その後、イエスは、12弟子と70門徒(しちじゅうもんと)を選抜された。
그 후에 예수는 12제자와 70문도(門徒)를 선발하셨다.

これは、モーセのときの12部族と70人の長老を手本としたのである。
이것은 모세 때의 12지파와 70명의 장로를 본받은 것이다.

断食の期間が40日となったのは、前述の通り、洪水審判が40日だったからである。
금식 기간이 40일로 된 것은 전술한 바와 같이 홍수 심판이 40일이었기 때문이다.

しかし、その元の原因はアダムにある。
그러나 그 원래의 원인은 아담에게 있다.

これは、モーセの40日断食も同様である。
이것은 모세의 40일 금식도 마찬가지다.

つまり、全人類の苦痛は、アダムの堕落から始まった。
즉 전인류의 고통은 아담의 타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従って、第二アダムとして来られたイエスには、40日断食の期間に、堕落によって失った全てを取り戻し、40日の苦難を清算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責任があった。
따라서 제2 아담으로서 오신 예수에게는 40일 금식 기간에 타락으로 인해 잃어 버린 모든 것을 되찾고 40일의 고난을 청산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モーセが40日断食をしたのは、み言を求めるためであったが、み言を成就したイエスが40日断食をされたのは、40日の苦難を清算するためであった。
모세가 40일 금식을 한 것은 말씀을 찾기 위해서였지만 말씀을 성취한 예수가 40일 금식을 하신 것은 40일의 고난을 청산하기 위해서였다.

ここで付け加えたいことは、イエスがヨルダン川で洗礼を受け、川から上がってくる時に、聖霊がハトのようにイエスの上に降りたが、これは、どのような意味であったのかということである。
여기서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은 예수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강에서 올라왔을 때에 성령이 비둘기와 같이 예수 위에 내렸지만 이것은 어떤 의미였던 것인가 하는 것이다.

イエスは、神様がアブラハムに約束されたことを成就することのできる中心的存在であった。
예수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성취할 수 있는 중심적 존재였다.

つまり、アブラハムの供え物にサタンが侵入したため、サタンは離れずに付いてきたが、イエスは、サタンに奪われた裂かなかったハトを取り戻し、その目的を完成させ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즉 아브라함의 제물에 사탄이 들어갔기 때문에 사탄은 떨어지지 않고 따라왔지만 예수는 사탄에게 빼앗긴 찢지 않았던 비둘기를 되찾고 그 목적을 완성시켜야 했다.

そのため、イエスは、蘇生を表す供え物、即ち、ハトとして示された旧約時代を完成させ、それを基盤として、新約時代である長成期の羊の時代に入り、本来果たすべきみ旨を始め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그러므로 예수는 소생을 나타내는 제물, 즉 비둘기로서 보여 준 구약 시대를 완성시켜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신약 시대인 장성기(長成期)의 양(羊)의 시대에 들어가고 원래 다해야 할 뜻을 시작해야 했다.

これを示すために、ハトのように聖霊が降りてきたのである。
이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비둘기와 같이 성령이 내려온 것이다.


13-14 イエスは弟子を通して割礼の条件を立てようとされた
13-14 예수는 제자를 통해서 할례의 조건을 세우려고 하셨다

前述のように、イエスは、荒野生活を終えて、旧約時代の全てを取り戻された。
전술한 바와 같이 예수는 광야 생활을 마치고 구약 시대의 모든 것을 되찾으셨다.

そして、次の路程の第一歩を踏み出すために、ほうぼうを回り、弟子を探された。
그리고 다음 노정의 첫걸음을 내딛기 위해서 각처를 돌고 제자를 찾으셨다.

こうして、12弟子を選び、イスラエル民族に福音を宣布されたのである。
이리하여 12제자를 택하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복음을 선포하신 것이다.

これは、旧約時代の信仰である律法による行義の路程から、新約時代の信仰である信義の路程に転換し、福音を成就させることが目的であった。
이것은 구약 시대의 신앙인 율법에 의한 행의(行義)의 노정으로부터 신약 시대의 신앙인 신의(信義)의 노정으로 전환하고 복음을 성취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また、イエスは、アブラハムの供え物の目的を完成させるため、雌牛(めうし)として表される存在、即ち、完成したエバとなる女性を探さ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또한 예수는 아브라함의 제물의 목적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암소로 표현되는 존재, 즉 완성된 해와가 될 여성을 찾아야 했다.

洗礼ヨハネは、イスラエル民族がイエスを信じるように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が、その使命を果たすことができなかった。
세례 요한은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를 믿도록 해야 되었지만 그 사명을 다할 수 없었다.

そのため、イエスは、弟子たちを選ぶことに対して、どこか不安があった。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제자들을 택하는 것에 대하여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それゆえ、イエスは、弟子たちを選んだ後、自分を信じさせるために、奇跡を起こして、自分がメシアであることを宣布されたのである。
그러므로 예수는 제자들을 택하신 후에 자신을 믿게 하기 위해서 기적을 일으키고 자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선포하신 것이다.

その後のイエスの路程においては、イスラエル民族の結束が先決問題であった。
그 후의 예수의 노정에 있어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결속이 선결문제였다.

それゆえ、イエスの手本である旧約の路程において、パロに対抗したモーセが、奇跡を見せて、イスラエル民族を結束させたように、イエスも奇跡によって、イスラエル民族を結束させようとされたのである。
그러므로 예수의 본보기인 구약의 노정에 있어서 바로에게 대항한 모세가 기적을 보이고 이스라엘 민족을 결속시킨 것과 같이 예수도 기적에 의해 이스라엘 민족을 결속시키려고 하신 것이다.

神様は、パロのところに行く途中のモーセを殺そうとされた。
하나님은 바로에게 가는 도중에 있었던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다.

その時、モーセの妻と息子が一つになって、割礼が成就した。
그때 모세의 아내와 아들이 하나가 되어 할례가 성취되었다.

その後、モーセは、積極的にパロに対抗し、イスラエル民族を3日間の路程をもって、荒野に導くことができた。
그 후 모세는 적극적으로 바로에게 대항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3일간의 노정으로 광야에 인도할 수 있었다.

このように、イエスも母親と一つになり、割礼の条件を立てるべきであったが、それができなかったため、それを別のところで成就させようと、弟子を選んで出発されたのである。
이와 같이 예수도 어머니와 하나가 되어 할례의 조건을 세워야 했지만 그것을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다른 곳에서 성취시키려고 제자를 택하여 출발하신 것이다.

この条件を立てることができなければ、積極的にサタンに対抗することができないため、それこそがイエスにとって重大な問題であった。
이 조건을 세울 수 없으면 적극적으로 사탄에게 대항할 수 없으므로 그것이야말로 예수에게 있어서 중대한 문제였다.

つまり、イエスは、割礼の条件を立ててこそ、3日間の荒野路程を出発でき、その3日間を乗り越えることができたのであるが、その時は、割礼の条件がまだ立っていなかったため、イエスは弟子たちを連れて行き、福音を伝えながら、その条件を立てようとされたのである。
즉 예수는 할례의 조건을 세워야 3일간의 광야 노정을 출발할 수 있고 그 3일간을 넘어갈 수 있었지만 그때는 아직 할례의 조건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는 제자들을 데려가 복음을 전하면서 그 조건을 세우려고 하신 것이다.


13-15 イスカリオテのユダの裏切り
13-15 가룟 유다의 배신

イエスの愛する弟子たちの中に、イスカリオテのユダがいた。
예수가 사랑하는 제자들 중에 가룟 유다가 있었다.

イエスは、このユダの協力を得て、割礼の条件を立てようとされた。
예수는 이 유다의 협조를 얻어 할례의 조건을 세우려고 하셨다.

つまり、ユダの愛人であり、イエスに絶対的に従順であったマグダラのマリアをエバとして立て、サタンがエバをアダムに構わず奪ったように、イエスがユダの愛人を奪って原理を取り戻し、その後、イスカリオテのユダに、マグダラのマリアを与えようとされたのである。
즉 유다의 애인이며 예수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했던 막달라 마리아를 해와로서 세워 사탄이 해와를 아담과 상관없이 빼앗은 것과 같이 예수가 유다의 애인을 빼앗아서 원리를 되찾고 그 후 가룟 유다에게 막달라 마리아를 주려고 하신 것이다.

サタンにとって、これは重大な問題であった。
사탄에게 있어서 이것은 중대한 문제였다.

そのため、サタンは、律法学者やパリサイ人などに騒ぎを起こし、彼らとイエスを対立させた。
그러므로 사탄은 서기관이나 바리새인 등에게 소동을 일으키고 그들과 예수를 대립시켰다.

その時、ユダだけでも、イエスを全面的に信じていたならば、み旨の基盤を立てることができた。
그때 유다 만이라도 예수를 전면적으로 믿고 있었으면 뜻의 기반을 세울 수 있었다.

しかし、神様のみ旨を理解できなかったユダは、不満を抱き、自分の先生であるイエスを銀貨30枚で売ったのである。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던 유다는 불만을 품고 자신의 선생님인 예수를 은 삼십으로 판 것이다.

このように、ユダは、イエスを裏切り、怨讐たちと結託するに至った。
이와 같이 유다는 예수를 배신하고 원수들과 결탁하게 되었다.

こうして、サタン側の彼らは、イエスを十字架にかけよと、イエスに従わない者たちに向かって訴え始めたのである。
이리하여 사탄 측의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라고 예수를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 호소하게 된 것이다.

イエスは、彼らを避けることのできない立場となった。
예수는 그들을 피할 수 없는 입장이 되었다.

イエスが、「モーセが荒野でヘビを上げたように、人の子もまた上げられなければならない」(ヨハネによる福音書3章14節)と言われたのは、不信仰と不従順によって、サタンが侵入したことを示されたのであり、また、ヘビに噛まれて死にそうになった者が、モーセの作った青銅のヘビを仰ぎ見ることによって死を免れたように、イエスのときにも同様の事が起きると予告されたのである。
예수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한복음 3장 14절)라고 말씀하신 것은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인해 사탄이 들어간 것을 지적하신 것이고, 또한 뱀에게 물려 죽을 것 같은 자가 모세가 만든 놋뱀을 쳐다봄으로써 죽음을 면한 것과 같이 예수 때에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예고하신 것이다.

モーセのときは、民がモーセを信じなかったために、ヘビを上げることになった。
모세 때는 백성들이 모세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뱀을 올리게 되었다.

イエスのときも、これと同様に、彼らがイエスを信じなかったために、イエスは十字架にかけられることになったのである。
예수 때도 이것과 같이 그들이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된 것이다.

つまり、上記のみ言は、十字架にかかってでも、み旨を成就させ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イエスの内心を表している。
즉 상기의 말씀은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어도 뜻을 성취시켜야 한다는 예수의 속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ユダが外部の人々と結託することによって、イエスを殺すための工作が展開されたということは、この上もなく恐ろしい事実だと言わざるを得ない。
유다가 외부의 사람들과 결탁함으로써 예수를 죽이기 위한 공작이 전개되었다는 것은 지극히 두려운 사실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イエスにとって、十字架の路程は、既定の路程ではなく、不信仰と不従順による非原理的な路程であった。
예수에게 있어서 십자가의 노정은 기정적인 노정이 아니고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인한 비원리적인 노정이었다.

それゆえ、ヨハネによる福音書3章12節から14節には、次のように記されている。
그러므로 요한복음 3장 12절부터 14절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わたしが地上のことを語っているのに、あなたがたが信じないならば、天上のことを語った場合、どうしてそれを信じるだろうか。天から下ってきた者、すなわち人の子のほかには、だれも天に(のぼ)った者はいない。そして、ちょうどモーセが荒野(あらの)でヘビを上げたように、人の子もまた上げられなければならない。」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このようになったのは、ただ信じられず、従えなかったからである。
이렇게 된 것은 단지 믿을 수 없고 따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イエスが、ユダのことを、「その人は生まれなかった方が、彼のためによかったであろう」(マルコによる福音書14章21節)と言われたのは、不信仰と不従順によって、み旨を破壊した存在が、イスカリオテのユダだったことを示されたのである。
예수가 유다를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뻔하였느니라"(마가복음 14장 21절)라고 말씀하신 것은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인해 뜻을 파괴한 존재가 가룟 유다였던 것을 지적하신 것이다.


13-16 律法学者やパリサイ人たちに対する七つのわざわいのみ言
13-16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대한 일곱 가지 화(禍)의 말씀

イエスは、律法学者やパリサイ人たちに向かって、「ヘビよ、まむしの子らよ」(マタイによる福音書23章33節)と言われ、彼らが不従順の血を受け継いだ者たちであることを指摘された。
예수는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에 대하여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마태복음 23장 33절)라고 하시고 그들이 불순종의 피를 계승한 자들인 것을 지적하셨다.

このように、彼らの先祖をヘビに例えられたのは、的確な表現であったと言える。
이와 같이 그들의 조상을 뱀으로 비유하신 것은 적확한 표현이었다고 할 수 있다.

ヨハネによる福音書8章44節に、「あなたがたは自分の父、すなわち、悪魔から出てきた者であって、その父の欲望どおりを行おうと思っている」と記されているように、彼らの父が、ヘビに象徴されるサタンであると言われたのである。
요한복음 8장 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라고 적혀 있는 대로 그들의 아버지가 뱀으로 상징되는 사탄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律法学者やパリサイ人たちが、不信仰、不従順、不奉仕の立場で、ヘビの行いをしていることに対し、イエスは、七つのわざわいのみ言(マタイによる福音書23章13節から36節参照)をもって、彼らを叱責された。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이 불신(不信)하는 자, 불순(不順)하는 자, 모시지 않는 자의 입장에서 뱀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예수는 일곱 가지 화(禍)의 말씀(마태복음 23장 13절부터 36절 참조)으로 그들을 질책하셨다.

イエスは、この時、既に山の上でモーセとエリヤに会い、後に自分がエルサレムで死を迎えることを聞いていた。(ルカによる福音書9章30節から31節参照)
예수는 이때 이미 산 위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서 그 후에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을 듣고 있었다. (누가복음 9장 30절부터 31절 참조)

こうして、イエスは、自分の果たすべきことを知り、十字架を覚悟された。
이리하여 예수는 자신이 다해야 할 것을 알고 십자가를 각오하셨다.

それは、神様のみ旨を成就させ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からである。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イエスが、律法学者やパリサイ人たちを、七つのわざわいのみ言で叱責された時、その心中はこうであった。
예수가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을 일곱 가지 화(禍)의 말씀으로 질책하셨을 때 그 속마음은 이랬다.

「あなたがたの先祖たちは、サタンと一つになるための基盤を固めてきたが、私に対してまでも、怨讐としての行動をとるのか。あなたがたの中には、神様の悲しむ刑罰を免れることのできない歴史的な結実がある。」
"너희들의 조상들은 사탄과 하나가 되기 위한 기반을 다져왔지만 나에 대해서도 원수로서의 행동을 취하는가? 너희들 속에는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형벌을 면할 수 없는 역사적인 결실이 있다."

彼らの罪の内容を見れば、不信仰、不従順、不奉仕によってサタンが侵入し、その結果が現在にまで至っていることは明らかである。
그들의 죄의 내용을 보면 불신(不信), 불순(不順), 모시지 않음으로 인해 사탄이 들어가고 그 결과가 현재까지 이르고 있는 것은 명확하다.

サタンの侵入は、アダムから始まったが、その影響は、子孫を通して引き継がれてきた。
사탄이 들어가는 것은 아담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그 영향은 자손을 통해서 계승되어 왔다.

つまり、神様側のアベルを殺したカインの行為が、イエスの路程にも現れたのである。
즉 하나님 측의 아벨을 죽인 가인의 행위가 예수의 노정에도 나타난 것이다.

このように、罪の始まりは、カインからであり、アダムは、その根であった。
이와 같이 죄는 가인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아담은 그 뿌리였다.

サタンは、アダムからカインを通して、人類に侵入した。
사탄은 아담으로부터 가인을 통해서 인류에게 들어갔다.

その順序を追ってみると、アダム、カイン、ハム、アブラハム、モーセ(石板と岩)、ヨセフとマリア、イエスの怨讐となった者たち、となっている。
그 순서를 따라 보면 아담, 가인, 함, 아브라함, 모세(석판과 반석), 요셉과 마리아, 예수의 원수가 된 자들로 되어 있다.

また、サタンが侵入した原因は、不信仰、不従順、不奉仕などの行為であった。
또한 사탄이 들어간 원인은 불신(不信), 불순(不順), 모시지 않음 등의 행위이었다.

それを指摘したのが、マタイによる福音書23章に記されている七つのわざわいのみ言である。
그것을 지적한 것이 마태복음 23장에 적혀 있는 일곱 가지 화(禍)의 말씀이다.

では、そのみ言の意義を調べてみよう。
그러면 그 말씀의 의의를 알아 보자.

最初のみ言は、次の通りである。
첫째 말씀은 다음과 같다.

「偽善な律法学者、パリサイ人たちよ。あなたがたは、わざわいである。あなたがたは、天国を閉ざして人々をはいらせない。自分もはいらないし、はいろうとする人をはいらせもしない。」(マタイによる福音書23章13節)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마태복음 23장 13절)

このみ言によって、次のように叱責されたのである。
이 말씀에 의해 다음과 같이 질책하신 것이다.

「やはり、あなたがたの行動は、見せかけの行動である。
"역시 너희들의 행동은 외식(外飾)하기 위한 행동이다.

つまり、神様のみ意に従わなければならない立場でありながら、そうではない立場で、神様のみ意に従っているかのように行動している。
즉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하는 입장이면서 그렇지 않는 입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あなたがたは間違いなく、あなたがたの先祖であり罪を犯した者、即ち、カインと同じ血統を受け継いでいる。
너희들은 틀림 없이 너희들의 조상이며 죄를 범한 자, 즉 가인과 똑같은 혈통을 계승하고 있다.

そのカインは、神様のみ意とは別のところにいながら、み意の中に立っている者のようにしたが、それが成就しなかったため、アベルを殺したのである。
그 가인은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곳에 있으면서 뜻 안에 있는 자처럼 했지만 그것이 성취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벨을 죽인 것이다.

あなたがたも、そのカインと同じように、み意とは別のところにいながら、み意の中に立っているかのようにして、アベルのような私イエスと向き合っている。
너희들도 그 가인과 같이 뜻과는 다른 곳에 있으면서 뜻 안에 있는 것처럼 하여 아벨과 같은 나 예수와 마주 대하고 있다.

カインは、自分の行動によって、全ての人々が入ろうとする天国の門を閉ざしたが、あなたがたも、それと同じような行動をとろうとするのか。
가인은 자기 행동에 의해 모든 사람들이 들어가려고 하는 천국의 문을 닫았지만 너희들도 그것과 같은 행동을 취하려고 하는가?

カインは、み意から外れた行動をとって、アベルを殺したが、あなたがたも、そのカインと同じような立場に立って、私イエスの血を求めるのか。
가인은 뜻에서 벗어난 행동을 취하여 아벨을 죽였지만 너희들도 그 가인과 같은 입장에 서서 나 예수의 피를 노리는가?

あなたがたは、やはり、カインの血を受け継いだ者たちであり、彼の罪を結実させようとする者たちである。
너희들은 역시 가인의 피를 계승한 자들이며 그의 죄를 결실시키려고 하는 자들이다.

罪を犯したカインは、善しとされない立場に立ったが、あなたがたも、彼と同じ立場に立つことになるのである。
죄를 범한 가인은 선(善)이 아닌 입장에 섰지만 너희들도 그와 같은 입장에 서게 될 것이다.

今、私は、天国の門を開こうとしているが、あなたがたは、その門を閉ざし、他の人たちまで入らせないようにしようとしている。
지금 나는 천국의 문을 열려고 하고 있지만 너희들은 그 문을 닫고 다른 사람들까지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고 하고 있다.

正にサタンのような、み意の破壊者である。」
정말로 사탄과 같은 뜻의 파괴자다."

二つ目のみ言は、次の通りである。
둘째 말씀은 다음과 같다.

「偽善な律法学者、パリサイ人たちよ。あなたがたは、わざわいである。あなたがたはひとりの改宗者をつくるために、海と陸とを巡り歩く。そして、つくったなら、彼を自分より倍もひどい地獄の子にする。」(マタイによる福音書23章15節)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태복음 23장 15절)

このみ言によって、次のように叱責されたのである。
이 말씀에 의해 다음과 같이 질책하신 것이다.

「洪水審判後、サタンは、海と陸を隅々まで回りながら、自分の思いに合う者を探し、見つけたら、彼らを自分のものとして、地獄の子を増やしていった。
"홍수 심판후 사탄은 바다와 육지를 구석구석까지 다니면서 자기 생각에 맞는 자를 찾고, 찾으면 그들을 자기의 것으로 하여 지옥의 자식을 늘려갔다.

あなたがたも、それと同じような行動をとっているのであるから、ハムの子孫であることに間違いはない。
너희들도 그것과 같은 행동을 취하고 있으므로 함의 자손인 것에 틀림이 없다.

あなたがたは、ハムがサタンの喜ぶ行動をとったように、自らサタンの基盤を築き、他の兄弟たちにまで、サタンの思いに協力させようとするのか。
너희들은 함이 사탄이 기뻐하는 행동을 취한 것과 같이 스스로 사탄의 기반을 쌓고 다른 형제들에게까지 사탄의 생각에 협조시키려고 하는가?

あなたがたは、地獄の子を増やそうとしたハムの子孫であり、彼の結実である。
너희들은 지옥의 자식을 늘리려고 한 함의 자손이며 그의 결실이다.

あなたがたは、自分の思い通りに行なって、サタンの求める罪の量を満たすがよい。
너희들은 자기 생각대로 행하여 사탄이 요구하는 죄의 양을 채우라.

私のところに来れば、地獄を避けることができるのに、私のところに来ようとする人まで止めようとするのか。」
나에게 오면 지옥을 피할 수 있는데 나에게 오려고 하는 사람까지 오지 못하게 하는가?"

三つ目のみ言は、次の通りである。
세째 말씀은 다음과 같다.

「盲目な案内者たちよ。あなたがたは、わざわいである。あなたがたは言う、『神殿を指して誓うなら、そのままでよいが、神殿の黄金(こがね)をさして誓うなら、果たす責任がある』と。愚かな盲目な人たちよ。黄金と、黄金を神聖にする神殿と、どちらが大事なのか。」(マタイによる福音書23章16節から17節)
"화 있을찐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찌라 하는도다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마태복음 23장 16절부터 17절)

この次に記されているみ言も、同様の意味を持つ重複した内容である。
이 다음에 적혀 있는 말씀도 같은 의미를 가진 중복된 내용이다.

では、上記のみ言は、どのような意味を表しているのか。
그러면 상기의 말씀은 어떤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가?

それは、信仰の父であるアブラハムの供え物は、彼の失敗によって、誓いとはならず、意味の無いもののようになったが、イサクの燔祭(はんさい)によって、神様に誓いを立てることができたということを指摘され、このように、神殿の黄金(供え物)によって誓うことは、意味の無いものとなり得るが、神殿(祭壇)のようなイエスによって誓うことは、意味の無いものとはなり得ないと言われたのである。
그것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제물은 그의 실패로 인해 맹세가 되지 않고 의미 없는 것 같이 되었지만 이삭의 번제에 의해 하나님께 맹세할 수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시고 이렇게 성전의 금(제물)에 의해 맹세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질 수 있지만 성전(제단)과 같은 예수에 의해 맹세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질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言い換えれば、旧約の礼式は、廃することができるが、イエスのみ言は、廃す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ことである。
바꿔 말하면 구약의 예식은 폐할 수 있지만 예수의 말씀은 폐할 수 없다는 것이다.

もし、アブラハムが、供え物に失敗しなければ、イサクにまで手をかける必要はなかったが、その時、供え物に失敗したことで、サタンが侵入し、その後も子孫にサタンが侵入し得るようになった。
만약 아브라함이 제물에 실패하지 않았으면 이삭에게까지 손을 댈 필요는 없었지만 그때 제물에 실패함으로써 사탄이 들어가고 그 후에도 자손에게 사탄이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つまり、モーセが岩を二度打って失敗したのは、エジプトの生活を通して、イスラエル民族にサタンが侵入したからである。
즉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쳐서 실패한 것은 애급 생활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사탄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それゆえ、供え物は、神様のみ意通りにすべきだとして、次のように指摘されたとも言えるのである。
그러므로 제물은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한다고 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하셨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アブラハムが供え物のハトを裂か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ように、あなたがたも、今、そのような立場に立っている。
"아브라함이 제물의 비둘기를 쪼개야 했던 것과 같이 너희들도 지금 그러한 입장에 서 있다.

あなたがたもアブラハムの子孫であるが、アブラハムのように、神様のみ意をいいかげんに受け止めれば、私イエスにまで手をかけることになるであろう。
너희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지만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적당히 받아들이면 나 예수에게까지 손을 대게 될 것이다.

天と地を分別して、天のみ意に従うべきであるが、それができなければ、アブラハムと同じ結果になるであろう。」
하늘과 땅을 분별하여 하늘의 뜻을 따라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아브라함과 같은 결과가 될 것이다."

四つ目のみ言は、次の通りである。
네째 말씀은 다음과 같다.

「偽善な律法学者、パリサイ人たちよ。あなたがたは、わざわいである。はっか、いのんど、クミンなどの薬味の十分の一を宮に納めておりながら、律法の中でもっと重要な、公平とあわれみと忠実とを見のがしている。それもしなければならないが、これも見のがしてはならない。盲目な案内者たちよ。あなたがたは、ブヨはこしているが、らくだはのみこんでいる。」(マタイによる福音書23章23節から24節)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마태복음 23장 23절부터 24절)

このみ言によって、次のように叱責されたのである。
이 말씀에 의해 다음과 같이 질책하신 것이다.

「モーセが2枚の石板を壊したのは、十戒のみ言を授かって来たが、人々が、それとは関係の無い立場で、神様のみ意に反していたため、既に十戒の意味が無くなったと考えたからである。
"모세가 두 장의 석판을 깬 것은 십계의 말씀을 받아 왔지만 사람들이 그것과는 관계가 없는 입장에서 하나님의 뜻에 반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십계의 의미가 없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あなたがたも同様に、十戒の本体のような私イエスを望んではいない。
너희들도 이와 같이 십계의 본체와 같은 나 예수를 바라고 있지 않다.

ほんの十分の一の枝葉のような取るに足りないもので、神様のみ旨が全て成就すると言っている者たちよ。
그저 지엽과 같은 십일조(十一條) 등의 쉬운 것으로 하나님의 모든 뜻이 성취된다고 하는 자들아.

その結果は、神様のみ旨に反するものとなり、私イエスにまで手をかけることになるであろう。
그 결과는 하나님의 뜻에 반한 것으로 되어 나 예수에게까지 손을 대게 될 것이다.

み旨を知らず、それを信奉できないために、失敗するのである。
뜻을 모르고 그것을 신봉할 수 없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이다.

あなたがたの行動は、依然として、十戒を授かったモーセの前にいた人々のようである。
너희들의 행동은 여전히 십계를 받은 모세 앞에 있었던 사람들과 같다.

あなたがたも同様に、神様を離れ、サタンの相棒となるのか。
너희들도 똑같이 하나님을 떠나서 사탄의 짝이 되는가?

結局は、モーセが2枚の石板を壊したときと同じようになるであろう。」
결국은 모세가 두 장의 석판을 깼을 때와 같이 될 것이다."

五つ目のみ言は、次の通りである。
다섯째 말씀은 다음과 같다.

「偽善な律法学者、パリサイ人たちよ。あなたがたは、わざわいである。杯と皿との外側はきよめるが、内側は貪欲(どんよく)放縦(ほうじゅう)とで満ちている。盲目なパリサイ人よ。まず、杯の内側をきよめるがよい。そうすれば、外側も清くなるであろう。」(マタイによる福音書23章25節から26節)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마태복음 23장 25절부터 26절)

このみ言によって、次のように叱責されたのである。
이 말씀에 의해 다음과 같이 질책하신 것이다.

「モーセが、岩から水を出して与えた時、表面上では、神様とイスラエル民族が喜んでいるかのように見えたが、イスラエル民族の内面は、貪欲と不義とで満ちていた。
"모세가 반석에서 물을 내어 먹였을 때 겉에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이 기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스라엘 민족의 내면은 탐욕과 불의로 가득 차 있었다.

そのため、その結果が、神様のみ意に反するものとなったのである。
그러므로 그 결과가 하나님의 뜻에 반하게 된 것이다.

イスラエル民族が、内面を清め、神様のみ意と一つになっていれば、神様は喜ばれたのである。
이스라엘 민족이 내면을 맑게 하여 하나님의 뜻과 하나가 되어 있었으면 하나님은 기뻐하셨을 것이다.

しかし、神様のみ意を離れて行動したため、不義とされた。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행동했기 때문에 불의(不義)로 하신 것이다.

こうして、民族の汚れが神様を汚し、地の汚れが天を汚したのである。
이리하여 민족의 더러움이 하나님을 더럽히고, 땅의 더러움이 하늘을 더럽힌 것이다.

かつてイスラエル民族が、神様のみ意を離れて、モーセが岩を二度打ったように、あなたがたも、神様のみ意を離れて、私イエスを打ち、杯と皿を汚す者になろうとするのか。
예전에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친 것과 같이 너희들도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나 예수를 치고 잔과 대접을 더럽히는 자가 되려고 하는가?

あなたがたは、天と地に対して、罪を犯すことになるであろう。」
너희들은 하늘과 땅에 대하여 죄를 범하게 될 것이다."

このように叱責しながら、十字架まで背負うことになったと明かされたのである。
이와 같이 질책하면서 십자가까지 지게 되었다고 밝히신 것이다.

六つ目のみ言は、次の通りである。
여섯째 말씀은 다음과 같다.

「偽善な律法学者、パリサイ人たちよ。あなたがたは、わざわいである。あなたがたは白く塗った墓に似ている。外側は美しく見えるが、内側は死人の骨や、あらゆる不潔なものでいっぱいである。このようにあなたがたも、外側は人に正しく見えるが、内側は偽善と不法とでいっぱいである。」(マタイによる福音書23章27節から28節)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태복음 23장 27절부터 28절)

このみ言によって、次のように叱責されたのである。
이 말씀에 의해 다음과 같이 질책하신 것이다.

「ヨセフとマリアは、自分たちの体面を保とうとした。
"요셉과 마리아는 자기들의 체면을 유지하려고 했다.

その行動は、神様のみ意に反するものであり、結局、サタンの喜ぶ結果となった。
그 행동은 하나님의 뜻에 반한 것이며 결국 사탄이 기뻐하는 결과가 되었다.

こうして、サタン側の基盤ができたのである。
이리하여 사탄 측의 기반이 만들어진 것이다.

このような結果になったのは、私がこの世に受け入れられていなかったからである。
이러한 결과가 된 것은 이 세상이 나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あなたがたが怨讐サタンと一つになって行動するのは当然である。
너희들이 원수 사탄과 하나가 되어서 행동하는 것은 당연하다.

あなたがたの望む通りにするがよい。」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행하라."

最後のみ言は、次の通りである。
마지막 말씀은 다음과 같다.

「偽善な律法学者、パリサイ人たちよ。あなたがたは、わざわいである。あなたがたは預言者の墓を建て、義人の碑を飾り立てて、こう言っている、『もしわたしたちが先祖の時代に生きていたなら、預言者の血を流すことに加わってはいなかっただろう』と。このようにして、あなたがたは預言者を殺した者の子孫であることを、自分で証明している。あなたがたもまた先祖たちがした悪の枡目(ますめ)を満たすがよい。ヘビよ、マムシの子らよ、どうして地獄の刑罰をのがれることができようか。それだから、わたしは、預言者、知者、律法学者たちをあなたがたにつかわすが、そのうちのある者を殺し、また十字架につけ、そのある者を会堂でむち打ち、また町から町へと迫害して行くであろう。こうして義人アベルの血から、聖所と祭壇との間であなたがたが殺したバラキヤの子ザカリヤの血に至るまで、地上に流された義人の血の報いが、ことごとくあなたがたに及ぶであろう。よく言っておく。これらのことの報いは、みな今の時代に及ぶであろう。」(マタイによる福音書23章29節から36節)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 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마태복음 23장 29절부터 36절)

このみ言によって、次のように叱責されたのである。
이 말씀에 의해 다음과 같이 질책하신 것이다.

「律法学者やパリサイ人たちが、歴史的な血統を継承してきた者たちであることに間違いはない。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이 역사적인 혈통을 계승해 온 자들인 것은 틀림이 없다.

だから、預言者と義人の墓を飾り立てるのか。
그래서 선지자와 의인의 무덤을 장식하는가?

結局、私イエスに対しても、このような行動をとるのか。
결국 나 예수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행동을 취하는가?

そうしながら、自分たちの行動が、最高の善行であるかのように見せかけ、サタンの血統を受け継いできた目的を果たそうとするのか。
그렇게 하면서 자기들의 행동이 최고의 선행(善行)인 것처럼 외식하고 사탄의 혈통을 계승해 온 목적을 다하려고 하는가?

あなたがたの行動は、サタンが求めている悪の量を、全て満たそうとする行動である。
너희들의 행동은 사탄이 요구하는 악의 양을 다 채우려고 하는 행동이다.

だから、私は、あなたがたの要求に応じて、罪の量を全て満たしてあげよう。
그래서 나는 너희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의 양을 다 채워주마.

これからも、あなたがたは、預言者と義人の血を流すであろう。
앞으로도 너희들은 선지자와 의인의 피를 흘리게 할 것이다.

しかし、これらの罰は、あなたがたが受けるのである。」
그러나 이들의 벌은 너희들이 받을 것이다."

このように、律法学者やパリサイ人たちに対して、最終的な宣言をしながら叱責されたのであり、また、「サタンと合意した最高の目的を達成したければしてみよ」という決意を示されたのである。
이와 같이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에 대하여 최종적인 선언을 하면서 질책하신 것이고, 또한 "사탄과 합의한 최고의 목적을 달성하고 싶으면 해봐라"라는 결의를 밝히신 것이다.

このように、彼らの罪を結実させるため、十字架まで覚悟し、歴史を通して侵入してきたサタンの悪を満たすようにされた。
이와 같이 그들의 죄를 결실시키기 위해서 십자가까지 각오하여 역사를 통해서 들어왔던 사탄의 악을 다 채우게 하셨다.

そして「あなたがたは、七つのわざわいのみ言が根拠となり、歴史的な義人の血の代価を、誰よりも受けるであろう」と、イエスがこの上なく大きな事件の渦中に立っていることを示されたのである。
그리고 "너희들은 일곱 가지 화(禍)의 말씀이 근거가 되어 역사적인 의인의 피의 대가를 누구보다도 받을 것이다"라고 예수가 지극히 큰 사건의 와중에 서고 있는 것을 밝히신 것이다.

七つのわざわいのみ言は、律法学者やパリサイ人たちが、堕落の血統を継承してきた者たちであることを次々と指摘し、彼らのそれまでの罪の行動と、イエスに対する罪の行動が、堕落の血統による行動であると断言して、叱責されたものである。
일곱 가지 화(禍)의 말씀은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이 타락의 혈통을 계승해 온 자들인 것을 차례로 지적하고 그들의 그때까지의 죄의 행동과 예수에 대한 죄의 행동이 타락의 혈통으로 인한 행동이라고 단언하여 질책하신 것이다.

この叱責こそ、イエスの十字架の路程が、そう遠くない将来にあることを念頭に置いた、律法学者やパリサイ人たちに対する最後の叱責であった。
이 질책이야말로 예수의 십자가 노정이 그리 멀지 않는 장래에 있는 것을 염두에 둔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에 대한 마지막 질책이었다.

心中では、「結局、あなたがたの先祖の血統を結実させようとするのか」と思いながら、「あなたがたもまた先祖たちがした悪の枡目(ますめ)を満たすがよい」(マタイによる福音書23章32節)と言われたのである。
마음 속에서는 "결국 너희들의 조상의 혈통을 결실시키려고 하는가?"라고 생각하면서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마태복음 23장 32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これは、「あなたがたは、私を殺して、罪を結実させよ」という意味である。
이것은 "너희들은 나를 죽이고 죄를 결실시켜라"라는 의미다.

つまり、この時のイエスの目的は、十字架で殺されることによって、彼らの罪の量を満たすようにすることであった。
즉 이때의 예수의 목적은 십자가로 죽음을 당함으로써 그들의 죄의 양을 채우게 하는 것이었다.

その後、彼らはイエスを殺して、罪の量を満たしたのである。
그 후 그들은 예수를 죽이고 죄의 양을 채운 것이다.

こうして、罪の目的であるイエスの体を彼らに取らせた。
이리하여 죄의 목적인 예수의 몸을 그들에게 넘겼다.

結局、この十字架の路程によって、彼らの罪は結実したのである。
결국 이 십자가 노정에 의해 그들의 죄는 결실한 것이다.

サタンは、取るものを完全に取ったため、未練を残すことはなかった。
사탄은 취해야 할 것을 완전히 취했으므로 미련을 남길 일은 없었다.

それ以前は、モーセが石板を壊し、岩を二度打ったという行動が、イエスの肉身を取ることのできる条件となっていたため、サタンは、自分の持っている条件に未練があった。
그 이전에는 모세가 석판을 깨고 반석을 두 번 친 행동이 예수의 육신을 취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 있었으므로 사탄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조건에 미련이 있었다.

つまり、イエスの十字架によって、サタンの持っていた条件が、清算されたのである。
즉 예수의 십자가에 의해 사탄이 가지고 있었던 조건이 청산된 것이다.


13-17 十字架以降の路程
13-17 십자가 이후의 노정

神様は、イエスを送り、み旨を果たそうとされたが、サタンは、そのみ旨の道をふさごうとしてきた。
하나님은 예수를 보내고 뜻을 다하려고 하셨지만 사탄은 그 뜻 길을 가로막으려고 해 왔다.

結局、神様は、サタンにイエスの肉身を殺すことを許され、サタンは、それを実行した。
결국 하나님은 사탄에게 예수의 육신을 죽이는 것을 허락하시고 사탄은 그것을 실행했다.

しかし、それには、神様のみ意があった。
그러나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

サタンは、自分が取ることのできる最高のもの、即ち、イエスの肉身を取った。
사탄은 자기가 취할 수 있는 최고의 것, 즉 예수의 육신을 취했다.

しかし、ここからは、神様がサタンから人々を取ることのできる路程となった。
그러나 여기서부터는 하나님이 사탄으로부터 사람들을 취할 수 있는 노정이 되었다.

これが、イエスの十字架以降の路程である。
이것이 예수의 십자가 이후의 노정이다.

神様は、サタンから人々を取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イエスと聖霊によって、人々を清め、善なる存在とするための摂理を始めようとされていた。
하나님은 사탄으로부터 사람들을 취할 수 있도록 예수와 성령에 의해 사람들을 맑게 하여 선한 존재로 하기 위한 섭리를 시작하려고 하신 것이다.

これが、サタンにイエスの肉身を取らせた理由である。
이것이 사탄에게 예수의 육신을 취하게 하신 이유다.

このように、イエスは、十字架の路程によって、サタンに終局を迎えさせるための犠牲となられたのである。
이와 같이 예수는 십자가 노정에 의해 사탄에게 종국을 맞이하게 하기 위한 희생이 되신 것이다.

このイエスの犠牲と同時に、善側の攻撃が始まった。
이 예수의 희생과 동시에 선(善) 측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それまでは、サタンがイエスを攻撃してきたが、イエスの十字架以降は、イエスが攻撃を始め、サタンが守勢に回るようになった。
그때까지는 사탄이 예수를 공격해 왔지만 예수의 십자가 이후는 예수가 공격을 시작하고 사탄이 수세로 몰리게 되었다.

つまり、イエスは、十字架の路程によって、原理的な条件を立て、新しい路程を出発したということである。
즉 예수는 십자가 노정에 의해 원리적인 조건을 세워 새로운 노정을 출발했다는 것이다.

これは、モーセが原理的な起点に立って、3日路程を出発したことと同様である。
이것은 모세가 원리적인 기점에 서서 3일 노정을 출발한 것과 같다.

こうして、聖徒の信仰生活が始まった。
이리하여 성도의 신앙생활이 시작되었다.

それは、荒野生活のようであったが、神様によって、勝利することのできる路程であった。
그것은 광야 생활인 것 같았지만 하나님에 의해 승리할 수 있는 노정이었다.

次に、罪の根を切る段階に入ると、イエスは、サタンを屈服させるため、世界に信義の信仰を立てられた。
그 다음에 죄의 뿌리를 끊는 단계에 들어가면 예수는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해서 세계에 신의(信義)의 신앙을 세우셨다.

つまり、信じる者を神様側とし、不信仰、不従順、不奉仕なる者をサタン側として、人々を分立するための分岐を確立された。
즉 믿는 자를 하나님 측으로 하고, 불신(不信)하는 자, 불순(不順)하는 자, 모시지 않는 자를 사탄 측으로 하여 사람들을 분립하기 위한 분기를 확립하셨다.

このようにして判決を下すことが、イエスの福音の歴史的な使命である。
이렇게 하여 판결을 내리는 것이 예수의 복음의 역사적인 사명이다.

ある人が、その判決によって、神様側に属せば、その人からサタンが離れるという原理になっている。
어떤 사람이 그 판결에 의해 하나님 측에 속하면 그 사람으로부터 사탄이 떠난다는 원리가 되어 있다.

ここに、勝利するための基本的な原理がある。
여기에 승리하기 위한 기본적인 원리가 있다.

本来、全ての人々は、神様側に属し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
원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측에 속하고 있어야 한다.

それゆえ、神様は、それを実現しようとされた。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것을 실현하려고 하셨다.

しかし、サタンは、人々を奪われないよう、神様に抵抗してきた。
그러나 사탄은 사람들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나님께 저항해 왔다.

そのため、神様とサタンは、歴史的に対立するようになったのである。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탄은 역사적으로 대립하게 된 것이다.

こうして、人類は、神様に属する者と、サタンに属する者とに分立されてきた。
이리하여 인류는 하나님께 속하는 자와 사탄에게 속하는 자로 분립되어 왔다.

その記録が、人類の闘争の歴史である。
그 기록이 인류의 투쟁 역사다.

もし、イスカリオテのユダをはじめ、律法学者やパリサイ人たちが、イエスを信じ、従っていたならば、このような事は起こらず、人々はイエスを守り、サタンに攻勢をかけながら、勝利することができたのである。
만약 가룟 유다를 비롯해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믿고 따르고 있었으면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고 사람들은 예수를 지키고 사탄에게 공세를 걸면서 승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13-18 イエスと聖霊のはたらき
13-18 예수와 성령의 역할

イエスは、「わが父よ、もしできることでしたらどうか、この杯をわたしから過ぎ去らせてください」(マタイによる福音書26章39節)と祈られた。
예수는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태복음 26장 39절)라고 기도하셨다.

これを見ても、十字架の路程が、既定の路程ではなかったと言える。
이것을 보아도 십자가 노정이 기정의 노정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しかし、その時は、既に肉身ではみ旨を成就させることのできない立場であったため、十字架で死んで、霊的な路程となっても、み旨を成就させて、サタンに勝利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그러나 그때는 이미 육신으로는 뜻을 성취시킬 수 없는 입장이었으므로 십자가로 죽어 영적인 노정이 되더라도 뜻을 성취시켜 사탄에게 승리해야 했다.

このような使命があったため、霊になっても、エバの存在を取り戻すことのできる道を開いて、十字架に向かわれたのである。
이러한 사명이 있었으므로 영(靈)이 되어도 해와의 존재를 되찾을 수 있는 길을 열고 십자가를 향하신 것이다.

つまり、イエスは新郎、信徒は新婦として、み旨成就の基盤を築いた上で、イエスは十字架に向かわれ、モーセの3日路程のような路程を、死をもって出発されたのである。
즉 예수는 신랑으로서, 신도는 신부로서 뜻 성취의 기반을 쌓은 뒤에야 예수는 십자가를 향하시고 모세의 3일 노정과 같은 노정을 죽음을 가지고 출발하신 것이다.

今まで神様は、摂理を通して、エバを取り戻そうとされてきた。
지금까지 하나님은 섭리를 통해서 해와를 되찾으려고 해 오셨다.

それゆえ、イエスは、霊になった後も、信徒を新婦とする世界的なみ旨に向かっていかれたのである。
그러므로 예수는 영(靈)이 된 후에도 신도를 신부로 하는 세계적인 뜻을 향해 가신 것이다.

イエスが昇天された後に、聖霊の降臨があった。
예수가 승천하신 후에 성령의 강림이 있었다.

イエスが送られた聖霊は、エバの神である。
예수가 보내신 성령은 해와의 하나님이다.

エバの神は、イエスが夫であることをよく知っている。
해와의 하나님은 예수가 남편인 것을 잘 알고 있다.

それゆえ、エバの神である聖霊が人の心に入ると、人は感動し、イエスを夫のように思い慕うようになるのである。
그러므로 해와의 하나님인 성령이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면 사람은 감동하고 예수를 남편과 같이 생각하여 사모하게 되는 것이다.

こうして、人が、天の霊的なイエスと一つになったとき、人に霊的生命が注入されるようになる。
이리하여 사람이 하늘의 영적인 예수와 하나가 되었을 때 사람에게 영적 생명이 주입되게 된다.

しかし、根本的に、罪を犯したのはエバであるため、罪を清算する直接的な役割は、エバの神である聖霊が果たさなければならない。
그러나 근본적으로 해와가 죄를 범했으므로 죄를 청산하는 직접적인 역할은 해와의 하나님인 성령이 다해야 한다.

そのため、聖霊は、人の心に作用するのである。
그러므로 성령은 사람의 마음에 작용하는 것이다.

イエスと聖霊の基本的な役割は、このようにして、世界の人々を、堕落する前のアダムとエバの基準にまで引き上げることである。
예수와 성령의 기본적인 역할은 이렇게 하여 세계의 사람들을 타락하기 전의 아담과 해와의 기준까지 끌어 올리는 것이다.

また、聖書に「聖霊をけがす者は、いつまでもゆるされず、永遠の罪に定められる」(マルコによる福音書3章29節)と記されているのは、エバの神である聖霊が、弱い神だからである。
또한 성경에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마가복음 3장 29절)라고 적혀 있는 것은 해와의 하나님인 성령이 약한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我々は、イエスの生命要素を受けながら、怨讐と戦い、カナン福地のような天国を目指して、自分自身を神殿として完成させなければならない。
우리는 예수의 생명 요소를 받으면서 원수와 싸우고 가나안 복지와 같은 천국을 향해 자기 자신을 성전으로서 완성시켜야 한다.

このように、神様に仕えることを目的として、今まで歩んできたのである。
이와 같이 하나님을 모시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지금까지 걸어 온 것이다.

もし、イスカリオテのユダが、イエスを信じ、ユダの愛人であるマグダラのマリアが、イエスと向き合うことのできる基準にまで上がっていたならば、聖霊が降臨し、イエスはアダムとして、マグダラのマリアはエバとして、一体になる理想を実現することができたのである。
만약 가룟 유다가 예수를 믿고 유다의 애인인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와 마주 대할 수 있는 기준까지 올라가 있었으면 성령이 강림하여 예수는 아담으로서, 막달라 마리아는 해와로서 일체가 되는 이상(理想)을 실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このように、イエスを信じていれば、神様のみ旨を成就させることができたのであり、ここで、サタンを根本的に屈服させることのできる条件が成立するはずであった。
이와 같이 예수를 믿고 있었으면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킬 수 있었을 것이고 여기서 사탄을 근본적으로 굴복시킬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될 것이었다.

しかし、今までは、それが霊的にのみ成立していた。
그러나 지금까지는 그것이 영적으로만 성립되고 있었다.

その理由は、イエスが肉身によって、み旨を成就させ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からである。
그 이유는 예수가 육신에 의해 뜻을 성취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それゆえ、再臨することによって、み旨を完全に成就させることにして、昇天されたのである。
그러므로 재림함으로써 뜻을 완전히 성취시키기로 하고 승천하신 것이다.

従って、必ず肉身をもって再臨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
따라서 반드시 육신을 가지고 재림하셔야 한다.

今、2千年の歴史が、繰り返しの起点に戻ろうとしている。
지금 2천년의 역사가 반복의 기점에 되돌아가려고 하고 있다.

この2千年の期間を無駄にしたのは、ユダがイエスを信じずに、従わなかったことが原因となって、パリサイ人たちが不信仰、不従順、不奉仕に陥り、あってはならない失敗をしたからである。
이 2천년의 기간을 헛되게 한 것은 유다가 예수를 믿지 않고 따르지 않은 것이 원인이 되어 바리새인들이 불신(不信), 불순(不順), 모시지 않음에 빠지고, 있어서는 안 되는 실패를 했기 때문이다.


13-19 イエスの死と復活の意義
13-19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의의

前述のように、出エジプトの路程は、イエスの基本路程の手本となっていたが、そこで、石板と岩にサタンが侵入したことにより、サタンは、イエスの体にまで手をかけ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
전술과 같이 출애굽 노정은 예수의 기본 노정의 본보기가 되어 있었지만 거기서 석판과 반석에 사탄이 들어갔음으로써 사탄은 예수의 몸에까지 손을 댈 수 있게 되었다.

結果的に、イエスは、十字架を背負うことで、その条件を清算されたのである。
결과적으로 예수는 십자가를 짐으로써 그 조건을 청산하신 것이다.

サタンは、イエスの体が目的で、神様のみ旨に反抗していた。
사탄은 예수의 몸을 목적으로 하여 하나님의 뜻에 반항하고 있었다.

つまり、イエスの十字架は、サタンが持っている全ての条件、即ち、全ての罪の結実であった。
다시 말하면 예수의 십자가는 사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조건, 즉 모든 죄의 결실이었다.

別の見方をすれば、イエスが生きている限り、その罪は、効力を有していることになるため、イエスは、死をもって、その罪の効力を失わせる蕩減(とうげん)(罪の清算)を果たして、サタンの思いを成就させることのできる基盤を無くすために、十字架を背負われたのである。
다른 시점에서 보면 예수가 살아 있는 한 그 죄는 효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되므로 예수는 죽음으로써 그 죄의 효력을 잃게 하는 탕감을 다하여 사탄의 생각을 성취시킬 수 있는 기반을 없애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また、神様がイエスを復活させることによって、み旨を継承させることができたのは、神様が最高権限を行使されたからである。
또한 하나님이 예수를 부활시킴으로써 뜻을 계승시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최고 권한을 행사하셨기 때문이다.

これは、サタンが干渉することのできない生命に対する神様の権能である。
이것은 사탄이 간섭할 수 없는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권능이다.

サタンができることは、殺すことまでであり、生かすことは、神様にしかできない。
사탄이 할 수 있는 것은 죽이는 것까지이며 살리는 것은 하나님 밖에 할 수 없다.

つまり、イエスの十字架による死は、サタンの最大の力を示すものであった。
즉 예수의 십자가에 의한 죽음은 사탄의 최대의 힘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しかし、サタンは、イエスを復活させた神様の権能の前に居場所を失い、神様から離れざるを得なかった。
그러나 사탄은 예수를 부활시킨 하나님의 권능 앞에 자기 자리를 잃고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これが、イエスの復活の摂理であった。
이것이 예수의 부활의 섭리였다.


13-20 イエスが信義の信仰を立てられた意義
13-20 예수가 신의(信義)의 신앙을 세우신 의의

イエスが、十字架によって、信義の信仰を立てられたということは、神様の新たな摂理が始まったということである。
예수가 십자가에 의해 신의(信義)의 신앙을 세우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새로운 섭리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アダムとエバは、この信義の信仰を立てることができずに堕落したのである。
아담과 해와는 이 신의의 신앙을 세우지 못해서 타락한 것이다.

サタンの本質は、信義ではなく、不信であるため、信義の立場に立った人々は神様側となる。
사탄의 본질은 신의가 아니고 불신이므로 신의의 입장에 선 사람들은 하나님 측이 된다.

これは、前に述べた通りである。
이것은 이미 논한 바와 같다.

第二アダムとして来られたイエスは、堕落以前のアダムの立場であったため、人々が信義の立場に立ち、イエスのみ言に従うことによって、堕落以前のアダムの位置にまで向上することができる。
제2 아담으로서 오신 예수는 타락 이전의 아담의 입장이었으므로 사람들이 신의의 입장에 서서 예수의 말씀을 따름으로써 타락 이전의 아담의 위치까지 향상될 수 있다.

堕落とは、不信によって、その位置から落ちたということであるが、イエスの立てられた信義の信仰が、その位置にまで向上することのできる基盤となったのである。
타락이란 불신으로 인해 그 위치에서 떨어졌다는 것이지만 예수가 세우신 신의의 신앙이 그 위치까지 향상될 수 있는 기반이 된 것이다.

このような原理的復帰によって、人々がアダム以上の立場となれば、天国の生命が注入されるということを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
이러한 원리적 복귀에 의해 사람들이 아담 이상의 입장이 되면 천국의 생명이 주입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信義は、イエスを通して神様につながることのできる生命の基礎である。
신의는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께 연결될 수 있는 생명의 기초다.

この基礎が、確固たるものになってこそ、神様のみ旨を成就させることができる。
이 기초가 확고한 것이 되어야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킬 수 있다.

それゆえ、イエスは、信義の立場に立っている人々を愛そうとされる。
그러므로 예수는 신의의 입장에 서고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려고 하신다.

この愛によって、その人々に生命が注入されるのである。
이 사랑에 의해 그 사람들에게 생명이 주입되는 것이다.

ただし、聖霊のはたらきによって、イエスを思い慕うようになってこそ、その生命を受けることができる。
단 성령의 작용에 의해 예수를 사모하게 되어야 그 생명을 받을 수 있다.

アダムとエバは、神様の希望を成就させ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희망을 성취시킬 수 없었다.

それゆえ、信義の信仰生活の中で、神様は我々に希望を与え、我々によって、その希望を成就しようとされるのである。
그러므로 신의의 신앙생활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우리에 의해 그 희망을 성취하려고 하시는 것이다.


13-21 十字架による勝利の意義と信仰者の路程
13-21 십자가에 의한 승리의 의의와 신앙자의 노정

ところで、イエスは、十字架によって、何を勝利されたのか。
그런데 예수는 십자가에 의해 무엇을 승리하셨는가?

人々は、サタンの霊的な血を受けることによって、神様から離れてしまった。
사람들은 사탄의 영적인 피를 받음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버렸다.

イエスは、サタンの霊的な血を受ける道を遮断し、人々に霊的な生命の血を与えるため、復活後に昇天されたのである。
예수는 사탄의 영적인 피를 받는 길을 가로막고 사람들에게 영적인 생명의 피를 주기 위해서 부활 후에 승천하신 것이다.

ここに、全ての人々を霊的に取り戻そうとする神様のみ旨があることを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
여기에 모든 사람들을 영적으로 되찾으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もし、十字架の路程が必要なかったならば、イエスは、霊と肉を合わせて、み旨を成就させることができたのである。
만약 십자가의 노정이 필요 없었으면 예수는 영(靈)과 육(肉)에 대한 뜻을 함께 성취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それができていたならば、再臨は必要ではなかった。
그것이 잘되어 있었으면 재림은 필요하지 않았다.

しかし、人々がサタンと一つになっていたため、そのようにはならず、サタンを分立して、人々を霊的に取り戻さなければならなくなった。
그러나 사람들이 사탄과 하나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았고, 사탄을 분립하여 사람들을 영적으로 되찾을 수밖에 없어졌다.

今までイエスは、神様の愛によって、その役割を果たされてきたため、美的存在の立場を取ってきたのである。
지금까지 예수는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그 역할을 다하고 오셨으므로 미적(美的) 존재의 입장을 취하여 오신 것이다.

それが、キリスト信仰におけるイエスの姿である。
그것이 기독 신앙에 있어서의 예수의 모습이다.

サタン側は、不信仰、不従順、不奉仕の立場を取り、神様側は、信仰、従順、奉仕の立場を取ってきた。
사탄 측은 불신(不信), 불순(不順), 모시지 않는 입장을 취하고, 하나님 측은 신종(信從), 순종(順從), 시봉(侍奉)의 입장을 취해 왔다.

歴史の中で、このような分かれ道が与えられたため、イエスの十字架以降、サタンは衰退していったのである。
역사 속에서 이러한 갈림길이 주어졌기 때문에 예수의 십자가 이후 사탄은 쇠퇴해 간 것이다.

十字架以降の信仰生活は、旧約の出エジプトからカナンまでの路程を、霊的に歩む路程となった。
십자가 이후의 신앙생활은 구약의 출애굽에서 가나안까지의 노정을 영적으로 가는 노정이 되었다.

これは、イエスが霊的路程を出発することのできる条件を満たしたからである。
이것은 예수가 영적 노정을 출발할 수 있는 조건을 채웠기 때문이다.

つまり、モーセが、二度目に手を懐に入れたとき、神様が、らい病を治されたように、第二アダムであるイエスは、天のヘビとして、また、生命の道として、この世の人々に、霊的な生命の血を与え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のであり、さらに、イエスと聖霊が一つになったため、人々に、その霊的な生命の血を受けさせ、人々を霊的に引き上げ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のである。
즉 모세가 손을 다시 품에 넣었을 때 하나님이 문둥병을 낫게 하신 것과 같이 제2 아담인 예수는 하늘의 뱀으로서, 또한 생명의 길로서 이 세상 사람들에게 영적인 생명의 피를 줄 수 있게 된 것이고, 더 나아가 예수와 성령이 하나가 되었으므로 사람들에게 그 영적인 생명의 피를 받게 하고 사람들을 영적으로 끌어 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こうして、イエスは、信徒と共に出発した。
이리하여 예수는 신도와 함께 출발했다.

このように、天を信じて、信仰生活の路程を出発しようとするときには、モーセとパロとの戦いのような、神様側とサタン側の対立があり、これに最後まで耐えて勝利し、条件を満たしてこそ、出発することができるのである。
이와 같이 하늘을 믿고 신앙생활 노정을 출발하려고 할 때에는 모세와 바로와의 싸움과 같은 하나님 측과 사탄 측의 대립이 있고, 이것을 끝까지 견디어서 승리하여 조건을 채워야 출발할 수 있는 것이다.

つまり、旧約の歴史に示された事実に従うことによって、信仰生活の路程を出発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ている。
즉 구약의 역사에 나타난 사실을 따름으로써 신앙생활 노정을 출발할 수 있게 되어 있다.

そして、その路程において、信仰が絶対的であれば、万事を勝利できるが、そうでなければ、イスラエル民族のような道を行くことになるのである。
그리고 그 노정에 있어서 신앙이 절대적이라면 만사를 승리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エジプトを出発したイスラエル民族は、紅海を前にして怨讐に追われ、その後、荒野で苦難の生活をし、また、アマレクの攻撃に遭い、さらに、ヘビに襲われることなどもあった。
애굽을 출발한 이스라엘 민족은 홍해를 앞두고 원수에게 쫓겨, 그 후 광야에서 고난 생활을 하고, 또한 아말렉의 공격을 당하고, 게다가 뱀에게 물리는 일 등이 있었다.

このように、信仰の試される出来事を越えていくのが、我々信仰者の路程である。
이와 같이 신앙의 시험을 넘어가는 것이 우리 신앙자의 노정이다.

これが、自分の十字架を背負って、荒野路程を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理由である。
이것이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광야 노정을 가야 하는 이유다.

それゆえ、イエスは、弟子たちに次のように言われた。
그러므로 예수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自分の十字架をとってわたしに従ってこない者はわたしにふさわしくない。」(マタイによる福音書10章38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마태복음 10장 38절)

このみ言に歓喜する者だけが、弟子にふさわしいと宣言されたのである。
이 말씀에 환희하는 자 만이 제자로서 합당하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13-22 誰よりもイエスを愛さなければならない
13-22 누구보다도 예수를 사랑해야 한다

不信仰の世界から信仰の世界へと出発しようとすれば、誰よりもイエスを愛さなければならない。
불신앙의 세계에서 신앙의 세계로 출발하려고 하면 누구보다도 예수를 사랑해야 한다.

これは、どの程度の愛であるのか。
이것은 어느 정도의 사랑인가?

マタイによる福音書10章34節から39節には、次のように記されている。
마태복음 10장 34절부터 39절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地上に平和をもたらすために、わたしがきたと思うな。平和ではなく、つるぎを投げ込むためにきたのである。わたしがきたのは、人をその父と、娘をその母と、嫁をそのしゅうとめと仲たがいさせるためである。そして家の者が、その人の敵となるであろう。わたしよりも父または母を愛する者は、わたしにふさわしくない。わたしよりもむすこや娘を愛する者は、わたしにふさわしくない。また自分の十字架をとってわたしに従ってこない者はわたしにふさわしくない。自分の命を得ている者はそれを失い、わたしのために自分の命を失っている者は、それを得るであろう。」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このみ言は、イエスの時代においても、また、その後の時代においても、人々が容認することのできない一大革命的な宣布であった。
이 말씀은 예수의 시대에 있어서도, 또한 그 후의 시대에 있어서도 사람들이 용인할 수 없는 일대 혁명적인 선포였다.

今まで人々の家庭は、サタンの思いと理想を実現させるための手段となっていた。
지금까지 사람들의 가정은 사탄의 생각과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이 되어 있었다.

そのため、神様のみ旨を成就させ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のである。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それゆえ、神様にとって、家庭は、憎むべき生活の舞台であった。
그러므로 하나님께 있어서 가정은 미워할 수밖에 없는 생활의 무대였다.

それまで愛してきた父母、兄弟、妻子は、サタンの喜ぶ存在だったのである。
지금까지 사랑해 온 부모, 형제, 처자는 사탄이 기뻐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このように、神様は、サタンに属する家庭を愛することができないため、サタンから離れることのできない家庭を顧みられず、神様に属することのできる家庭を準備したうえで、善なる義を立てようとされるのである。
이와 같이 하나님은 사탄에게 속하는 가정을 사랑할 수 없으므로 사탄을 떠날 수 없는 가정을 뒤돌아볼 수 없고, 하나님께 속할 수 있는 가정을 준비한 뒤에 선(善)한 의(義)를 세우려고 하시는 것이다.

今まで皆は、普通に家庭生活をしてきたかも知れないが、イエスを信じてからは、自分の家庭よりも、イエスを愛さなければならない。
지금까지 모두 일반적인 가정생활을 해 왔을 지도 모르지만 예수를 믿고 나서는 자기의 가정보다도 예수를 사랑해야 한다.

例えば、この世の愛を10程度とするならば、イエスを10程度で愛しても、それは以前、サタンに属していたときと同じ程度の愛である。
예를 들면 이 세상의 사랑을 10정도로 하면 예수를 10정도로 사랑해도 그것은 이전에 사탄에게 속해 있었을 때와 같은 정도의 사랑이다.

もし、それ以上の愛が無ければ、神様は、サタンの基盤を超えられない立場で、み旨を始めざるを得ない。
만약 그 이상의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은 사탄의 기반을 넘을 수 없는 입장에서 뜻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つまり、神様の基盤が、サタンの基盤を超えるためには、皆が10を超える愛で、イエスを愛さ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る。
즉 하나님의 기반이 사탄의 기반을 넘기 위해서는 모두가 10을 넘는 사랑으로 예수를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このような愛を理解するのは、難しいことかも知れない。
이러한 사랑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別の言い方をすれば、サタンに与えた10の愛を、善なる10の愛で帳消しにしても、神様には何も残らないため、神様は10よりも上の愛を要求されるということである。
바꿔 말하면 사탄에게 준 10의 사랑을 선한 10의 사랑으로 지워도 하나님께는 아무 것도 남지 않으므로 하나님은 10보다도 많은 사랑을 요구하신다는 것이다.

そして、10の愛を超えれば、神様は、その超えたところに、ご自身の愛を注入しようとされる。
그리고 10의 사랑을 넘으면 하나님은 그 넘은 곳에 자신의 사랑을 주입하려고 하신다.

この神様の愛が注入されることによって、人は霊的に復活し、生まれ変わるのである。
이 하나님의 사랑이 주입됨으로써 사람은 영적으로 부활하여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人が神様の愛を求めると、サタンは、それに激しく反対し、家族と対立するようにさせる。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요구하면 사탄은 그것에 격렬하게 반대하여 가족과 대립시키려고 한다.

つまり、神様とサタンは、人を通して対立するのであり、家族を仲たがいさせると言われたのは、このような原理に因るのである。
즉 하나님과 사탄은 사람을 통해서 대립하는 것이고, 가족을 불화하게 하려고 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이러한 원리로 인한 것이다.

しかし、これを問題とはせず、十字架にかけられようとも、最後まで諦めず、命をかけて勝利しなければならない。
그러나 이것을 문제로 삼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승리해야 한다.

「家族を愛する者は、わたしにふさわしくない」というみ言は、家族の反対を乗り越えていか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宣言だったのである。
"가족을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라는 말씀은 가족의 반대를 극복해야 한다는 선언이었던 것이다.

このような信仰観をもって、み旨を成就させようとした信仰者が何人いただろうか。
이러한 신앙관을 가지고 뜻을 성취시키려고 한 신앙자가 몇 명 있었을까?

イエスは、自分の思いが人々に受け入れられることを願わずにいられない立場にあって、どれほど辛い思いをされただろうか。
예수는 자신의 생각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서 얼마나 괴로우셨을까?

我々は、み旨を成就させるために、また、サタンを敗北させるために、如何なる十字架をも背負って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
우리는 뜻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또한 사탄을 패배시키기 위해서 어떤 십자가라도 지고 가야 한다.

そして、イエスの新婦となるために、各自がイエスを愛さなければならない。
그리고 예수의 신부가 되기 위해서 각자가 예수를 사랑해야 한다.

イエスは、我々に、これらのことを期待しておられるために、「家族を愛する者は、わたしにふさわしくない」という宣布をされたのである。
예수는 우리에게 이것들을 기대하고 계시므로 "가족을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라는 선포를 하신 것이다.


13-23 イエスの地獄伝道の意義
13-23 예수의 지옥 전도(傳道)의 의의

本来、地獄は無かった。
원래 지옥은 없었다.

しかし、人がサタンに誘惑され、その後、神様側とサタン側の分岐が生じたため、非原理的な地獄ができたのである。
그러나 사람이 사탄에게 유혹받고 그 후에 하나님 측과 사탄 측의 분기가 생겼기 때문에 비원리적인 지옥이 생긴 것이다.

人が、神様の怨讐であるサタンと結託すれば、その報いとして、霊人となったときには、地獄に行くことになる。
사람이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과 결탁하면 그 보복으로서 영인(靈人)이 되었을 때에는 지옥으로 가게 된다.

しかし、本来は、そのように創造されていなかった。
그러나 본래는 그렇게 창조되어 있지 않았다.

つまり、地獄とは、堕落して神様を離れた霊人、即ち、不従順な霊人を処罰するところである。
다시 말하면 지옥이란 타락해서 하나님을 떠난 영인, 즉 불순종한 영인을 처벌하는 곳이다.

地獄に行った霊人たちは、地上の堕落した世界から行ったのである。
지옥으로 간 영인들은 지상의 타락한 세계에서 간 것이다.

たとえ、人々が未熟で、そのようになったとしても、その原因は、アダムが最初に堕落を防ぐことができなかったことにある。
가령 사람들이 미숙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해도 그 원인은 아담이 최초에 타락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従って、アダムが、地獄に行った霊人たちの責任を負わなければならない。
따라서 아담이 지옥으로 간 영인들의 책임을 져야 한다.

それゆえ、第二アダムとして来られたイエスが、その責任を負うことになった。
그러므로 제2 아담으로서 오신 예수가 그 책임을 지게 되었다.

地獄に行った霊人たちは、本来、神様に属し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存在であるため、彼らにも、生命要素を受けることのできる道を開かなければならない。
지옥으로 간 영인들은 본래 하나님께 속해 있어야 하는 존재이므로 그들에게도 생명 요소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そのため、イエスは、地獄にまで行き、伝道せざるを得なくなったのである。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지옥까지 가서 전도할 수밖에 없어진 것이다.

このように、イエスは、十字架以降、地上の人々だけではなく、地獄にいる霊人たちまでも、蘇生することのできる道を開くために、この上ない苦しみと闘いながら、救援復帰路程を出発し、途方もない期間を経てきたということを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
이와 같이 예수는 십자가 이후 지상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지옥에 있는 영인들까지도 소생할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해서 지극한 괴로움과 싸우면서 구원 복귀 노정을 출발하고 엄청난 기간을 지내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人々の犯した罪は、自分たちの荷となり、とげとなっている。
사람들이 범한 죄는 자기들의 짐이 되고 가시가 되어 있다.

そのため、その荷を降ろして、清めてこそ、遠い光を望みながら、成長することのできる特赦の路程を出発することができるのである。
그러므로 그 짐을 내리고 맑게 해야 먼 빛을 바라보면서 성장할 수 있는 특사(特赦)의 노정을 출발할 수 있는 것이다.

イエスの地獄伝道には、以上のような意義があることを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
예수의 지옥 전도에는 상기와 같은 의의가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霊人の世界では、善に対する感性は鋭いが、悪に対しては感性が鈍いため、霊人たちから悪を分立させることが難しい。
영인의 세계에서는 선(善)에 대한 감성은 예리하지만 악에 대해서는 감성이 둔하므로 영인들로부터 악을 분립시키는 것이 어렵다.

しかし、長い期間を要しても、いつかは成長して善に向かうことができる。
그러나 긴 기간이 걸려도 언젠가는 성장해서 선(善)을 향할 수 있다.

人は、肉身生活では、罪に対する感性が鋭いため、善の方向に早く成長することができる。
사람은 육신 생활에서는 죄에 대한 감성이 예리하므로 선의 방향으로 빨리 성장할 수 있다.

しかし、霊人の世界は、そうではないため、周期的に善に向かうことのできる機会を得たときに、生命要素を受け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ている。
그러나 영인의 세계는 그렇지 않으므로 주기적으로 선을 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을 때에 생명 요소를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다.

こうして、地獄に行った霊人たちも、善なる生命要素によって、悪より善が成長するように助けられるのである。
이리하여 지옥으로 간 영인들도 선한 생명 요소에 의해 악보다 선이 성장할 수 있게 도움을 받는 것이다.

イエスの生命要素は、地獄の霊人たちを蘇生させることのできる要素ではあるが、それは、善の行いがあってこそ、それ相応に受けることができる。
예수의 생명 요소는 지옥의 영인들을 소생시킬 수 있는 요소이지만 그것은 선의 행동이 있어야 그에 상응하게 받을 수 있다.

イエスの十字架以降、地獄でも、このような恩恵を受け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のである。
예수의 십자가 이후 지옥에서도 이러한 은혜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サタンは、イエスの地獄伝道に対して、反対できる立場ではなかった。
사탄은 예수의 지옥 전도에 대하여 반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何故なら、生命を蘇生させるのは、神様の権限だからである。
왜냐하면 생명을 소생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이기 때문이다.

ペテロの第一の手紙3章19節から20節には、次のように記されている。
베드로전서 3장 19절부터 20절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こうして、彼は獄に捕らわれている霊どものところに(くだ)って行き、宣べ伝えることをされた。これらの霊というのは、むかしノアの箱舟が造られていた間、神が寛容をもって待っておられたのに従わなかった者どものことである。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また、ペテロの第一の手紙4章6節には、次のように記されている。
또한 베드로전서 4장 6절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死人にさえ福音が宣べ伝えられたのは、彼らは肉においては人間としてさばきを受けるが、霊においては神に従って生きるようになるためである。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

これらのみ言を見れば、地獄の霊人たちに、特別な恩赦を与えることが、イエスのみ旨であったと理解できる。
이러한 말씀을 보면 지옥의 영인들에게 특별한 사면을 주는 것이 예수의 뜻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このようにして、地獄を撤廃してこそ、神様のみ旨が完全に成就されるのである。
이렇게 하여 지옥을 철폐해야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성취되는 것이다.

果たして、それは、いつになるのであろうか。
과연 그것은 언제가 될 것인가?


13-24 イエスの使命は人々を堕落前の段階に引き上げること
13-24 예수의 사명은 사람들을 타락 전의 단계까지 끌어 올리는 것이다

もし、アダムとエバが、堕落せずに完成していたならば、二人は神様の体となり、地上を天国のようにしていたであろう。
만약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완성되어 있었으면 두 사람은 하나님의 몸이 되어 지상을 천국과 같이 만들었을 것이다.

しかし、二人は完成段階にまで至らず、途中の過程で堕落したため、後退の一途をたどることになった。
그러나 두 사람은 완성 단계까지 이르지 않고 도중의 과정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후퇴의 일로를 걷게 되었다.

こうして、非原理的な子女が繁殖し、神様から憎まれる世界となったのである。
이리하여 비원리적인 자녀가 번식되어 하나님께 미움받는 세계가 된 것이다.

神様が、その世界を取り戻すためには、世界の人々を、アダムとエバが堕落する前の段階にまで向上させなければならない。
하나님이 그 세계를 되찾기 위해서는 아담과 해와가 세계의 사람들을 타락하기 전의 단계까지 향상시켜야 한다.

そうしてこそ、神様がみ旨を展開し、人々を完成段階に進めることができる。
그렇게 해야 하나님이 뜻을 전개하여 사람들을 완성 단계에 올릴 수 있다.

この目的を果たすために、第二アダムであるイエスが来られたのである。
이 목적을 다하기 위해서 제2 아담인 예수가 오신 것이다.

結局、イエスは、十字架によって、この基盤を立てざるを得なかった。
결국 예수는 십자가에 의해 이 기반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人々を堕落前の位置にまで向上させ、次の完成段階へ進めるためには、神様を中心とするアダムとエバ(イエスと聖霊)が、人々の中に隠れている罪とサタンを取り除かなければならない。
사람들을 타락 전의 위치까지 향상시켜 다음 완성 단계까지 올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아담과 해와(예수와 성령)가 사람들 속에 숨어 있는 죄와 사탄을 제거해야 한다.

アダムとエバが堕落した段階は、生命級(長成期)であった。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단계는 생명급(장성기)이었다.

生命級とは、霊人の成長段階を示すものである。
생명급이란 영인의 성장 단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イエスに残された使命は、旧約時代を通して基礎を固めた霊人に、生命要素を注入し、新約的な生命級にまで引き上げることであった。
예수에게 남겨진 사명은 구약 시대를 통해서 기초를 다진 영인들에게 생명 요소를 주입하여 신약적인 생명급까지 끌어 올리는 것이었다.

イエスが昇天された後、まず、天にいる聖徒たちがイエスを迎えた。
예수가 승천하신 후 우선 하늘에 있는 성도들이 예수를 맞이했다.

そして、イエスは、天の霊人たちを生命級にまで上が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された。
그리고 예수는 하늘의 영인들이 생명급까지 오를 수 있게 하셨다.

これと同様に、地上にいる人々の霊人を生命級にまで引き上げることができれば、アダムが堕落する前の段階にまで挽回することができる。
이와 같이 지상에 있는 사람들의 영인을 생명급까지 끌어 올릴 수 있으면 아담이 타락하기 전의 단계까지 만회할 수 있다.

これを成そうとするイエスに、聖霊(エバの神)が協力して、キリスト教が発展したのである。
이것을 이루려고 하는 예수에게 성령(해와의 하나님)이 협조하고 기독교가 발전된 것이다.

今まで、天にいる聖徒たちは、地上の人々の霊人を、早く生命級にまで復帰して、み旨を成就させようと、総動員で地上を支援してきた。
지금까지 하늘에 있는 성도들은 지상의 사람들의 영인을 빨리 생명급까지 복귀하고 뜻을 성취시키려고 총동원해서 지상을 지원해 왔다.

これに対して、サタンは、地上の人々を通して、み旨に反対し、天と対立してきたが、サタンが敗れたため、その勢力は衰退し、み旨が前進したのである。
이에 대하여 사탄은 지상의 사람들을 통해서 뜻에 반대하고 하늘과 대립해 왔지만 사탄이 졌으므로 그 세력은 쇠퇴하고 뜻이 진전된 것이다.


13-25 義人たちの血が悪の血を清めてきた
13-25 의인들의 피가 악의 피를 맑게 해 왔다

サタンは、歴史を通して、キリスト教信徒を迫害してきた。
사탄은 역사를 통해서 기독교 신도들을 박해해 왔다.

つまり、サタンは、先に主権国家を立て、その主権機関が、キリスト教信徒を虐殺するなどして、反対してきたのである。
즉 사탄은 먼저 주권 국가를 세워서 그 주권 기관이 기독교 신도들에 대하여 학살 등을 하고 반대해 온 것이다.

その主権が、悪の側から天の側に移行していくまでに、大勢の義人が殺害された。
그 주권이 악 측에서 하늘 측에 옮겨질 때까지 많은 의인들이 살해 당했다.

それは、神様がそのようにされたのである。
그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다.

その義人たちの血が、悪の血で汚された世界を清めるという、身代わりの蕩減(とうげん)(罪の清算)をすることで、歴代の血を清めてきたのであり、イエスの血と合わせて、今まで世界を清めてきたのである。
그 의인들의 피가 악의 피로 더럽혀진 세계를 맑게 한다는 대신의 탕감(죄의 청산)을 함으로써 역대의 피를 맑게 해 온 것이고 예수의 피와 합쳐서 지금까지 세계를 맑게 해 온 것이다.

このようにして、神様は、み旨を成就させることのできる時期を、待ち望んでこられたのであるが、そのために、イエス、聖霊、天の聖徒たち、地上の聖徒たちが、準備をしてきたのである。
이렇게 하여 하나님은 뜻을 성취시킬 수 있는 시기를 고대하고 오셨지만 그것을 위해서 예수, 성령, 하늘의 성도들, 지상의 성도들이 준비를 해 온 것이다.

こうして、世界の暗闇を清算して清める時期が来れば、それが、再臨前の審判時代であるということを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
이리하여 세계의 어두움을 청산해서 맑게 하는 시기가 오면 그것이 재림 전의 심판 시대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13-26 子羊の婚宴
13-26 어린 양의 혼인 잔치

神様は、この地に、新郎新婦の理想を実現しようとされたが、アダムとエバは、神様を中心として愛し合うことのできる夫婦とな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하나님은 이 땅에 신랑 신부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하셨지만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여 서로 사랑할 수 있는 부부가 될 수 없었다.

また、イエスと聖霊も、肉身をもって、み意にかなった夫婦とな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또한 예수와 성령도 육신을 가지고 뜻에 맞는 부부가 될 수 없었다.

その理想は、地上再臨の時から実現されるのである。
그 이상은 지상 재림의 때부터 실현되는 것이다.

それゆえ、地上の信徒に、歴史をかけて成すべき新郎新婦の理想が示される。
그러므로 지상의 신도들에게 역사를 걸어서 이루어야 할 신랑 신부의 이상이 명시된다.

この理想を実現し、世界の暗闇を取り除くのである。
이 이상을 실현시켜 세계의 어두움을 없애는 것이다.

従って、それを果たすことが、我々の目的である。
따라서 그것을 다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다.

この時期は、天と地が共に完成することのできる重要な出発点となる。
이 시기는 하늘과 땅이 함께 완성될 수 있는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それゆえ、神様は、天と地の全ての聖徒が一つになり、その目的が成就されることを待ち望んでおられるのである。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성도가 하나가 되어 그 목적이 성취되는 것을 고대하고 계시는 것이다.

この時期に、堕落せずに完成した創造理想の夫婦、即ち、神様の体として、神様と一つになった夫婦が現れる。
이 시기에 타락하지 않고 완성된 창조이상의 부부, 즉 하나님의 몸으로서 하나님과 하나가 된 부부가 나타난다.

地上の信徒たちは、その夫婦を人類の祖先として迎え、その夫婦の養子として、間接的な跡継ぎの立場に立つことができる。
지상의 신도들은 그 부부를 인류의 조상으로서 맞이하고 그 부부의 양자(養子)로서 간접적인 후계자의 입장에 설 수 있다.

その夫婦によって行われる婚宴が、子羊の婚宴である。
그 부부에 의해 행해지는 혼인 잔치가 어린 양의 혼인 잔치다.

それゆえ、その夫婦、即ち、人類の祖先となる父と母を迎える最初の日が、再臨成就の重要な日となる。
그러므로 그 부부, 즉 인류의 조상이 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맞이하는 첫날이 재림 성취의 중요한 날이 된다.

こうして、この地に創造された人類の祖先を、ようやく迎えることができるのである。
이리하여 이 땅에 창조된 인류의 조상을 드디어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これが、神様の創造理想であり、この理想が実現されることによって、天国生活が始まるということを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이상이며 이 이상이 실현됨으로써 천국 생활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今まで神様は、天の父として居られたのであり、天の母がいなかったことを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
지금까지 하나님은 하나님 아버지로서 계셨던 것이고, 하나님 어머니가 없었던 것을 알아야 한다.

このような事を考えもしなかった人々を見るときに、天の父の心中は、いかばかりであっただろうか。
이러한 것을 생각조차 못했던 사람들을 볼 때에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この問題は、未だに解決されていないのである。
이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天の父母が成立してこそ、子女の家庭組織を築くことができる。
하늘의 부모가 성립되어야 자녀의 가정 조직을 만들 수 있다.

それが実現されることを、天は長い間待ち望んできたのである。
그것이 실현되는 것을 하늘은 오랫동안 고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地上において、そのみ旨を成就しなければならない存在が再臨主であるため、この方が地上に居られるとしても、天では再臨主夫妻を父母として仕えなければならない。
지상에 있어서 그 뜻을 성취시켜야 할 존재가 재림주이므로 이 분이 지상에 계신다고 해도 하늘에서는 재림주 부부를 부모로서 모셔야 한다.

そうしてこそ、今まで成就できなかったこと、即ち、父母に仕えるということを、地上の聖徒たちが、天の聖徒たちの代わりに果たすことができる。
그렇게 해야 지금까지 성취할 수 없었던 것, 즉 부모를 모신다는 것을 지상의 성도들이 하늘의 성도들 대신에 다할 수 있다.

それゆえ、天の聖徒たちは、父母に仕えるために、我々と一つになろうとするのである。
그러므로 하늘의 성도들은 부모를 모시기 위해서 우리와 하나가 되려고 하는 것이다.

天の人も、地の人も、根本となる父母に仕えなければならない。
하늘의 사람들도 땅의 사람들도 근본이 되는 부모를 모셔야 한다.

そうしてこそ、地上から永遠の生活が始まり、地上の夫婦は、天でも夫婦として、永遠の家庭を築くことができるのである。
그렇게 해야 지상에서부터 영원한 생활이 시작되고 지상의 부부는 하늘에서도 부부로서 영원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このような時代に、再臨主は、父として来られる。
이러한 시대에 재림주는 아버지로서 오신다.

イエスと聖霊は、この時が早く来るように、努力してこられたのである。
예수와 성령은 이때가 빨리 오게 노력해 오신 것이다.

つまり、再臨の基台を立てるために、イエスは、昇天後も摂理をしてこられたのであり、第二アダムであるイエスが果たすことのできなかった目的を果たすために、再臨主は、第三アダムとして来られるのである。
즉 재림의 기대(基臺)를 세우기 위해서 예수는 승천 후도 섭리를 해 오신 것이고, 제2 아담인 예수가 다할 수 없었던 목적을 다하기 위해서 재림주는 제3 아담으로서 오시는 것이다.

そして、再臨主は、み旨を成就して夫婦となり、新しい天国の家庭を築くために、血統を転換する聖婚式を全世界に伝え、新郎新婦たちに、神様の体の一部分(生霊(せいれい)体)を分配して、霊人を完成させるのである。
그리고 재림주는 뜻을 성취하여 부부가 되고 새로운 천국의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혈통을 전환하는 성혼식을 전세계에 알리고 신랑 신부들에게 하나님의 몸의 일부분(생령체)을 분배하고 영인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このようにして、理想へと向かう道が、再臨主に仕える道であり、その目的は、全天宙と一つになることである。
이렇게 하여 이상으로 향하는 길이 재림주를 모시는 길이고, 그 목적은 전천주(全天宙)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この時期に、イエスと聖霊によって成長し、堕落前のアダムの段階、即ち、生命級に至った者たちは、必ず、アダム、エバとされる存在に出会うことになる。
이 시기에 예수와 성령에 의해 성장하여 타락 전의 아담의 단계, 즉 생명급에 이른 자들은 반드시 아담, 해와가 되는 존재를 만나게 된다.

それゆえ、現時点において、「夫婦を成せる資格のある者」だと啓示を受ける信徒が、多く存在し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
그러므로 현시점에 있어서 "부부를 이룰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자"라고 계시를 받는 신도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

根本となる人類の祖先、即ち、父である再臨主を迎えるための準備は、既に世界の各地で始まっているのである。
근본이 되는 인류의 조상, 즉 아버지인 재림주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는 이미 세계 각지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13-27 準備された者は再臨主を迎えなければならない
13-27 준비된 자는 재림주를 맞이해야 한다

イエスと同じ段階の生命級(長成期)に至れば、「あなたは主である」と啓示を受ける者がいる。
예수와 같은 단계의 생명급(장성기)에 이르면 "당신은 주님이다"라고 계시를 받는 자가 있다.

そのため、終わりの日になれば、あちらこちらで、「私は主である」という者が、多く現れるようになる。
그러므로 끝날이 되면 여기저기서 "나는 주님이다"라고 하는 자가 많이 나타나게 된다.

しかし、それらの根は一つのところにある。
그러나 그들의 뿌리는 한곳에 있다.

そこは、全天宙に潜む神様の全てが一つになっているところであり、啓示は、そこから伝えられるべき人々に伝えられる。
거기는 전천주(全天宙)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있는 곳이고, 계시(啓示)는 거기서부터 전해져야 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そして、準備された者は、天の家庭を築くために、その機会をつかまなければならない。
그리고 준비된 자는 하늘의 가정을 이루기 위해 그 기회를 잡아야 한다.

そうしてこそ、その子女たちによって、神様を中心とする世界が始まるのである。
그렇게 해야 그 자녀들에 의해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こうして、生霊体まで完成すれば、理想の人体構造として完全なものとなる。
이리하여 생령체까지 완성되면 이상적인 인체 구조로서 완전한 것이 된다.

これを果たすためには、再臨主を迎えなければならない。
이것을 다하기 위해서는 재림주를 맞이해야 한다.

そうしてこそ、世界は復帰されるのである。
그렇게 해야 세계는 복귀되는 것이다.

ここで、「人の子が天の雲に乗って来るのを、人々は見るであろう」(マタイによる福音書24章30節)という聖句の意味を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
여기서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태복음 24장 30절)라는 성구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人の子とは、再臨主のことであり、天の雲とは、再臨主を迎える信徒たちのことである。
인자란 재림주를 뜻하는 것이고, 구름이란 재림주를 맞이하는 신도들을 뜻하는 것이다.

では、イエスは、どのような立場になるのかと言えば、全ての人々の長子として、また、中心として、再臨主を迎える立場となる。
그러면 예수는 어떤 입장이 되는가 하면 모든 사람들의 장자로서, 또한 중심으로서 재림주를 맞이하는 입장이 된다.

従って、後に来られる再臨主が、根本的な存在であることは言うまでもない。
따라서 나중에 오시는 재림주가 근본적인 존재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再臨主を中心として、地と天のみ旨が始まり、6千年の歴史の完成へ、また、神様の目的の達成へと向かうのである。
재림주를 중심으로 하여 땅과 하늘의 뜻이 시작되어 6천년의 역사가 완성으로, 또한 하나님의 목적의 달성으로 향하는 것이다.

これは、地の喜びであり、天の喜びである。
이것은 땅의 기쁨이며 하늘의 기쁨이다.

このような時代が来てこそ、神様の全てのみ旨を成就させることができるのであり、二度と嘆息(たんそく)することの無い世界へと、その第一歩を踏み出すことができるのである。
이러한 시대가 와야 하나님의 모든 뜻을 성취시킬 수 있는 것이고, 두 번 다시 탄식할 일이 없는 세계로 그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것이다.

マタイによる福音書16章27節には、「人の子は父の栄光のうちに、御使(みつかい)たちを従えて来るが、その時には、実際のおこないに応じて、それぞれに報いるであろう」と記されている。
마태복음 16장 27절에는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리라"라고 적혀 있다.

このように、再臨主は、父として来られるということを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
이와 같이 재림주는 아버지로서 오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以上のような原理を知るときに、霊となる我々は、神様にとって、どのような存在であるのか。
상기와 같은 원리를 알게 될 때에 영이 될 우리는 하나님께 있어서 어떤 존재인가?

この問題を解くことは、各自に任せることにしよう。
이 문제를 푸는 것은 각자에게 맡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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